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드러나

당론 위배땐 공천 등 징계 가능

공천 앞두고 선거법 등 표결 관심

공직선거법안과 사법개혁법안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양심이 먼저냐, 당론이 먼저냐는 원론적인 문제가 튀어나왔다. 국회의원들의 발은 헌법에서 말하는 '양심'과 '신념'보다는 '당론'으로 향했다. 공천권을 가진 지도부의 눈치를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패스트트랙 직전에 이뤄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만장일치'로 당론이 결정됐다. 금태섭 의원의 반론에 관심이 쏠렸다. 금 의원은 이 자리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법 반대입장을 명확히 하면서 "다수의원이 찬성하기 때문에 당론을 존중한다"고 했다. 논란은 패스트트랙이 지정된 이후에 나온 조응천 의원의 '양심선언'에서 불거졌다. 조 의원은 1일 페이스북에서 "검찰청법, 형사소송법개정안은 반대한다"면서 패스트트랙에 올린 검경수사권 조정에 대한 당론과 배치된 입장을 제시했다. 이는 당론이 정해진 뒤에 나온 것으로 지난달 11일에 내놓은 공수처 설치 반대입장과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

발언하는 손학규 |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민주당 당론결정 후 양심선언 = 여당내 많은 의원들이 공직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분리 등에 반대입장이 강하지만 말을 하지 않고 당론 채택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 중진 의원은 "원내지도부가 자유한국당과 싸우는데 반대할 수 있냐"면서 "어차피 본회의에 상정되거나 통과되기 어려운 법안들이라 당론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소신과 다른 입장인데도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에서도 당론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드러났다. 바른미래당의 사법개혁특위위원 사보임과 관련해 반대입장을 드러내려다 자신들의 '흑역사'를 들춰낸 것이다. 2017년 5월 김현아 의원이 당론과 달리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국토위에서 사보임해 줄 것을 당시 정세균 국회의장에 요구한 것이다. 정 의장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한국당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양심에 따라 투표하려는 바른미래당 의원에 대한 사보임을 승인해준게 국회법 위반이라는 점을 강조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거꾸로 자신들이 당론과 달리 투표한 국회의원을 징계하려 했다는 고백이 돼 버렸다.

바른미래당 내부에서도 과연 당에서 추인받은 사안과 달리 투표하는 게 맞는지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 12대 11로 패스트트랙 지정을 의결했으나 권은희, 오신환 의원이 소신에 따라 반대표를 던지려하자 김관영 원내대표가 직권으로 찬성쪽 의원인 채이배, 임재훈 의원으로 대체한 것이다. 정세균 전 의장은 "상임위가 아닌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지면 각 당은 특별한 사안에 대해서 그 당의 입장이 있다"며 특위 위원들은 당론에 따른 투표를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양심에 따라 당론 위배 가능, 그러나 징계사유 = 각 정당의 모습에는 당론이 '권고'가 아닌 '강제'임을 보여주는 대목이 많았다.

헌법은 제46조 2항은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하고 있다.

각 정당의 당헌과 당규를 보면 민주당은 과반출석 과반찬성으로 비교적 쉽게 당론을 정하도록 하고는 징계사유로 '당의 강령이나 당론에 위반하는 경우'를 명시해놨다. 한국당은 '과반 출석, 과반 찬성'을 의결조건으로 제시한 후 '당론변경은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으로 가능토록 했다. 또 "의원은 헌법과 양심에 따라 국회에서 투표할 자유를 가진다"고 하면서 '당론에 반대되는 투표를 했을 경우에 의원총회는 의결로서 그에 대한 소명을 들을 수 있는'규정도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정당한 이유없이 당명에 불복하고 당원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거나 당의 위신을 훼손했을 때'를 징계사유에 포함시켰다.

바른미래당 역시 당헌에는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으로 당론을 정하도록 하면서도 '국회 표결시 당론을 존중해야 한다. 다만, 당론이 개인의 양심에 반하는 경우 이에 구속되지는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당규인 징계사유엔 '당의 강령이나 당론을 위반한 경우'를 제시했다.

민주당 모 중진의원은 "국회의원은 당연히 소신에 따라 투표해야 하고 당론으로 정한다고 구속받을 필요는 없다"면서도 "당론에 위배된 투표를 했다고 해서 공개적으로 징계한 경우는 없지만 공천 등의 불이익이 있을 수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헌법은 양심을 말하고 당헌도 양심을 언급하지만 현실은 당론의 강제력이 과도하게 강하다"면서 "지도부 입장에서는 획일적으로 끌고 가고 싶겠지만 당론이 정해진 이후에도 의원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의원들 역시 아무리 양심선언을 하고 소신을 밝혀도 결국 표로 말하는 것"이라며 "당론과 같이 투표하든 반대로 하든 이에 따라 이해득실은 자신이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패스트트랙 법안들에 대한 반대입장이 적지 않은 가운데 이 법안들이 실제 본회의에 올라갈 경우 어떤 표결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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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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