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압박에 재판장 본인이 재배당 요청

'n번방' 사건으로 기소된 '태평양' 이 모군의 사건 재판부가 변경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등 국민 여론이 재판부마저 바꿨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군의 담당 재판부를 형사20단독에서 형사22단독으로 재배당했다고 30일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은 "국민청원 사건을 처리함에 있어 담당 재판장이 현저히 곤란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고, 담당 재판장이 그 사유를 기재한 서면으로 재배당 요구를 했다"며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에 따라 위 사건을 재배당했다"고 설명했다.

서로 다른 이름이 붙여진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서 여성들의 신상정보와 성 착취물을 올린 것이 이른바 n번방 사건이다. 조주빈은 '박사'라는 별명(닉네임)으로 '박사방'을 운영해 온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조씨에 앞서 기소된 이군은 박사방 운영진으로 출발해 검거 전까지 '태평양'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해왔다. 애초 16세라는 나이로 소년부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지만 사안이 심각해 소년부가 아닌 일반 형사부에 배당됐다.

애초 형사20단독 재판부에는 오덕식 부장판사가 재판장이지만, 여론은 오 부장판사의 교체를 거세게 요구해왔다. 오 부장판사를 n번방 사건 재판부에서 제외해달라는 요청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몰렸고 30일 오전에만 40만명이 넘어섰다.

재판장 교체 요구가 거세지자 오 부장 스스로 이군 사건을 다른 재판부에 재배당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부장판사는 고 장자연씨 성추행 혐의 사건과 고 구하라씨 사건 등에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여성계에서는 오 부장판사가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해 왔다.

법원에서 배당된 사건이 재배당되는 일은 종종 있다. 우선 사건 당사자나 대리인이 재판부 구성원과 가족이나 학연, 지연 등의 관계일 경우에는 판사 스스로가 재배당을 요구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현저히 곤란한' 이유가 있을 경우에도 재배당을 요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17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재판이다. 애초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로 배당됐지만 당시 재판장인 조의연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의 영장을 기각했다. 조 부장판사가 이를 이유로 재배당을 요구했고 서울중앙지법은 형사합의33부로 사건을 재배당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 형사33부 재판장의 장인이 과거 비선실세 최서원(개명전 최순실)씨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재판장인 이영훈 부장판사는 "재판 공정성에 조금의 의심이라도 생긴다면 재배당을 요청하는 게 합당하다"며 재배당을 요구했다. 결국 이 사건은 다른 재판부로 넘어갔다.

한편 태평양 이군은 이날 담당 재판부였던 오덕식 부장판사에게 처음으로 반성문을 제출했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반성문은 물론 탄원서도 모두 읽어본다"며 "다만 반성문의 질과 양이 양형을 줄이는데 비례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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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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