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출자구조 전면 개편 난항, 일감몰아주기 해소 우선할 듯

글로비스 오토에버 엔지니어링 지분 매각 … 실탄 마련 전망

현대자동차그룹 지배구조 개편방안은 몇 가지 시나리오가 제기돼 왔다. 올 초만 하더라도 '현대모비스 지주사 전환'(플랜A - 시나리오 2)이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꼽혔으나 최근 플랜B(시나리오 1)가 떠오르고 있다.

현재의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려면 기아와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각하는 게 가장 무난한 방법이다. 다만 이 지분을 어떻게 매각하고, 총수일가가 현대모비스 지분을 어떻게 취득하느냐가 관전 포인트다.


시나리오 1
순환출자구조 유지, 일부 지분변동


올해 안에 전면적인 순환출자 구조 해소가 어려워졌다는 전제 하에 예상되는 시나리오다.

지주회사 분할·합병 등 지배구조 개편을 하려면 현물출자 마무리 등 최종 단계까지 통상 9개월 이상 소요된다. △회사분할 이사회 △주주총회 △인적분할 △매매거래 정지 △신주 상장 △유상증자 이사회 결의 △공개매수 청약 △신주 상장 등이다.

이 일정대로라면 1분기 안에 구조개편에 대한 안이 마련됐어야 했다. 과거 이 과정을 거쳤던 현대중공업은 9개월, SK케미칼과 HDC는 각각 10개월이 소요됐다.

하지만 5월 현재 어떤 안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연내 대대적인 지배구조 개편이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다만 총수일가의 현대글로비스 주식처분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른 일감몰아주기 규제(총수 지분 30% → 20%)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14일 종가 기준 현대글로비스 시가총액은 약 7조원이다. 정의선 회장(23.29%)과 정몽구 명예회장(6.71%)이 보유한 지분 30%의 가치는 약 2조1000억원에 이른다. 이중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지분 10%를 처분한다면 총수일가는 약 7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또 현대오토에버 시가총액 약 3조원 중 정의선 회장 지분(7.33%)을 현금화할 경우 2200억원이 마련된다. 현대오토에버는 현대차(31.59%)와 현대모비스(20.13%), 기아(16.24%) 가 지분을 약 70% 가까이 갖고 있어 정 회장이 지분을 전량 매각해도 경영권 유지에 문제가 없다.

이와 함께 연내 상장 추진 중인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가치는 약 10조원으로 평가된다. 상장 후에도 이정도 규모의 시가총액을 형성한다면 정 회장은 1조원 이상(지분율 11.72%)을 손에 쥐게 된다.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현대오토에버 현대엔지니어링을 통해 2조원에 달하는 실탄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정도 자금을 확보한다면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전량 사들일 수 있다.

현대모비스 시총은 26조원, 이중 현대제철 보유 지분 5.81%를 매입하는데 약 1조5000억원이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정의선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은 6%대로 올라서고, 정몽구 명예회장 지분까지 소유한다면 13%가 넘는다. 현대차그룹 총수로서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 현대글로비스 지분 축소로, 일감몰아주기 규제도 해소하는 일거양득 효과다.


시나리오 2
현대모비스 인적분할후 지주사 전환


올 초까지만 해도 가장 유력하게 제기돼 온 시나리오는 현대모비스의 지주회사 전환이다. 여기에는 정의선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 등 총수일가가 현대모비스 지분을 취득하는 방안이 전제된다.

유안타증권은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4가지 절차를 전망했다.

우선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홀딩스와 사업회사)해 지주회사로 전환한다. 인적분할이란 회사의 일부 사업부문을 분리해 하나 이상의 독립된 회사를 설립하는 조직개편이다. 기존 회사 주주들은 지분율대로 신설법인 주식을 나눠 갖는다.

이어 현대모비스홀딩스는 기아와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사업회사 지분을 매입한다. 기아와 현대제철은 각각 17.33%, 5.81% 등 총 23.14%를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총수일가는 기아와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홀딩스 지분 23.14%를 확보한다. 이때 총수일가가 부담해야할 자금규모는 약 3조5000억~4조원으로 예상된다.

유안타증권은 "정의선 회장이 기아와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전체를 매입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라며 "하지만 분할을 통해 시가총액이 줄어든 현대모비스홀딩스 지분을 매입하는 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또 총수일가는 개인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현대차 현대모비스 사업회사 지분을 현대모비스홀딩스에 현물 출자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안은 연내 성사되지 못하면 실효성이 떨어진다. 내년부터는개정세법에 따라 지주회사 개편시 발생하는 양도차익에 대해 과세이연 특혜가 폐지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현대차그룹 총수는 막대한 양도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전면적인 구조개편 작업이 통상 9개월 이상 소요됨을 고려하면 물리적으로 올해 안에 결과물을 내놓기는 어려워졌다. 이 시나리오도 가치를 잃어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시나리오 3
현대글로비스를 최상위 지배회사로


현대글로비스를 최상위 지배회사로 두는 방안이다. 현대글로비스가 기아·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의 인수주체가 되는 것이다. 총수일가가 직접 지분을 인수하기에 자금여력이 부족한 점을 고려하면 타당성이 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현대글로비스의 자동차반조립(CKD) 사업부를 기아에 넘기고, 그 대가로 기아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인수한다. 기아는 현대모비스 지분 17.3%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 CKD 사업가치는 약 4조원으로 평가돼 기아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가치 4조4000억원과 거래할 만하다.

또 다른 방법은 현대모비스의 모듈·AS부품사업 부문을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한다. 이 안은 2018년 추진했던 지배구조 개편안과 비슷하다. 주주가치 훼손없는 합병비율 조정 여부가 관건이다. 하지만 한번 실패했던 안을 변형해 추진할 경우 양사의 주주총회 통과가 불투명해 보인다.

또 현대글로비스를 중심축으로 하는 이런 방식은 2022년 시행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중 일감몰아주기 금지 강화 항목이 걸림돌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규제대상이 되는 총수일가 지분을 기존 30%에서 20% 이상으로 낮추며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현재 정의선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은 30%로,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하려면 오히려 지분 10%를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나리오 4
현대차 기아 모비스 현대제철 인적분할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제철은 각각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을 단행한다. 이어 4개의 투자회사들끼리 합병을 추진한다. 합병된 투자회사가 현대차그룹의 지주회사가 된다. 이후 총수일가가 보유한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을 지주회사에 현물출자하면 일단락된다. 2017년 단행한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전환방식과 유사한 방식이다.

다만 이 시나리오를 성사시키려면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등 4개 사가 각각 주주총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 부담이다. 합병비율 등에 따라 각 주주들의 입장차이가 예상돼 불확실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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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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