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비교는 소모적인 논란만 키워 … 정부는 기업들의 기술 개발 마중물 역할해야

[인터뷰] 허 탁 한국환경한림원장

허 탁 한국환경한림원장 | 건국대학교 화학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고와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리하이대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에서 연구처장, 산학협력단장, 대외협력부총장, 발전기금본부장과 교학부총장을 역임했다. 한국전과정평가(LCA)학회 회장과 한국환경한림원의 부회장(기획사업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투명한 기부문화의 정착과 모금의 전문성 및 윤리성을 전파하는 한국모금가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사진 이의종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제품 환경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업장 내의 환경성 문제와 달리 무역장벽이나 수출입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전세계적인 이슈가 될 수 있죠. 덩달아 전과정평가(LCA) 중요성도 커지고 있는데,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부분도 있어요. LCA는 기본적으로 자신과의 싸움이죠."

6일 건국대학교 연구실에서 만난 허 탁 한국환경한림원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국내에 LCA를 보급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그는 지난달 제 4대 한국환경한림원장으로 취임했다.

한국환경한림원(Korea Academy of Environmet Science, KAES)은 국내 환경 석학들이 모여 2011월 11월 출범했다. 환경을 보전하고 지속가능한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게 목표다. 환경보전에 기여를 한 우수 환경인을 발굴·우대하고 환경 분야 학술연구와 지원사업 및 국제교류를 한다.

제대로 된 환경성평가 기준 적용해야

LCA란 제품 생산 단계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뿐 아니라 유통·사용·폐기·재활용 등 제품의 전 생애주기를 통틀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기법이다. 한 예로 종이컵을 생산할 때 원부자재로 종이와 코팅용 폴리에틸렌(PE)필름 등이, 에너지는 주로 전기가 사용된다. PE필름 생산은 원유채취→나프타 생산→PE칩 생산 등의 공정 단계를 밟게 된다. 이런 흐름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일이 LCA다.

허 원장은 최근 LCA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잘못된 잣대로 평가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환경성 비교의 가장 근본은 '동일 기능'에 있어요. 우리는 어떤 제품을 사용할 때 기능을 부여하잖아요. 이 기능을 그대로 활용하되 어떻게 하면 환경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중점적으로 강구해야죠. 한 예로 우리가 전기를 만들 때 신·재생에너지냐 원자력이냐를 두고 고민을 하잖아요. 전기 없이는 살 수가 없으니까 어떤 방식이 제일 친환경적인지를 잘 판단해야죠. 평가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환경성을 잘못 파악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LCA 방법론은 ALCA(Attributional LCA)와 CLCA(Consequential LCA) 등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ALCA는 한 제품의 원료취득에서부터 제조 사용 폐기까지의 가치사슬(Value chain)을 따라서 발생되는 잠재적 환경 영향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현재 사실에 근거해 평가하는 전통적인 LCA 방법론이다.

반면 CLCA는 한 제품의 개발되어 시장에 대량으로 도입되면서 미래에 발생될 수 있는 환경 영향 변화까지 조사한다. 한 예로 CLCA는 전기차가 시장에 대량으로 도입될 때 일어나는 △전기 수요 변화 △그리드 및 발전시설의 변화 △기존의 내연기관 차를 대체함으로써 발생되는 화석연료 사용량의 변화 등을 평가한다. ALCA는 주로 개별 기업에서, CLCA는 정책 등을 결정할 때 많이 활용된다.

흑백논리에 빠지면 본디 취지는 사라져

"LCA는 꽤 오래전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어 왔어요. 시대별로 요구하는 부분에 따라 중점을 두는 영역이 달라졌을 뿐 많은 회사들이 LCA를 적용해 왔죠. 회사에서 신제품을 내놓기 전에 종전 제품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발전된 상품을 출시하는데 이러한 과정도 LCA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탄소에 방점이 찍혔을 뿐 우리가 꽤 오래전부터 해오던 일들이에요."

LCA를 거창하게 생각하거나 추가 비용부담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기업 내부에서 새로운 공정과정이나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기획 단계부터 환경성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던 일들이 LCA의 일환일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A와 B를 비교해서 '어떤 게 더 좋다'라는 답을 얻길 원하잖아요. 명료해보여서 좋을 순 있겠죠.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흑백논리의 오류에 빠질 수 있어요. LCA를 해서 A라는 제품이 모든 면에서 더 낫다는 결론을 얻는다면 고민을 할 필요가 없죠. 문제는 현실적으로 A라는 제품이 모든 면에서 더 낫다는 결과가 나올 확률이 적어요. A가 B에 비해 탄소배출량은 적지만 다른 환경성 저하를 일으킨다면 과연 B보다 환경성이 뛰어난 제품일까요? 요즘에야 탄소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어서 그렇지만 이렇게 억지로 평가를 내리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인간의 주관성이 들어가게 되는 거죠. 그러면 환경을 생각하는 취지에서 벗어나는 일들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허 원장은 LCA를 할 때 인간의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가는 걸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나치게 순위를 매기는 식의 평가도 지양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앞으로 더 한발자국 나가기 위해 LCA를 하는 겁니다. 'C라는 공정을 돌리다보니까 어떤 부분에서 온실가스가 많이 나오니까 해당 부분을 고치면 좋겠다'는 식으로 개선을 하는 게 목표죠. 지나치게 '뭐가 더 낫다'는 평가를 하려고 하면 불필요한 논쟁만 만들 수 있어요."

석학들의 모임, 대중과 소통 등 역할할 터

허 원장은 탄소중립 2050 달성을 위해서 과학 기술 혁신을 강조했다. 아껴쓰고 재활용하는 건 기본이다. 여기에 저탄소 기술까지 더해져야만 목표달성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기술 혁신은 기본적으로 기업이 주축이 돼서 하는 겁니다. 정부는 기업들이 좀더 편하게 기술 개발에 주력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거죠. 한 예로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CCUS·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산업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활용하거나 이를 저장하는 기술)이 좀더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정부가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변화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은 다양해요. 한국환경한림원도 탄소중립 2050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허 원장은 지난 10여년 동안 한국환경한림원이 기틀을 다졌다면 앞으로는 좀더 대중과의 접합점을 높일 단계라고 말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바로 우리 자신부터 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환경한림원은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석학들의 모임입니다. 때문에 어떤 특정 이슈에 대해서 통합된 생각을 가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의견은 다양하지만 사회에서 해야 할 역할은 분명히 있죠. 우선 요즘 온실가스에 대한 관심이 많잖아요. 이달 말에 여러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중에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 대한 내용을 전달하려 합니다.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분석을 하는 등 다양한 고급 정보들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를 하는 거죠. 앞으로 이런 자리를 많이 만들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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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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