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윤 대통령-여당에 실망감 … 참모 탓하며 애써 회피

'보수기반 신당'엔 막연한 기대 … "저변엔 변화 요구 커"

1987년 이후 4차례의 정권교체로 더욱 견고해진 거대양당 체제. 상대가 못하기만 하면 집권, 당선이 가능한 정치가 오랫동안 정당을 변화가 없는 '섬'으로 고착화시켰다. 변화와 요구의 다양성이 존재하기 어려운 정당의 풍토는 정치를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었고 유권자는 선거 때마다 '선택을 강요당하는 고통'을 안게 됐다. 극단화된 유권자와 소수 국회의원의 주도로 움직이는 정당체제에 대한 '창조적 파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내일신문은 창간 29주년을 맞아 정치권 안팎에서 나오는 정당의 현주소와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3회에 걸쳐 찾아보려고 한다. <편집자 주>

보수정당 인사 1순위 방문지 대구 전통시장 | 국민의힘 등 보수정당 관계자들은 대구를 찾아 정치적 진로와 계획을 밝혀왔다. 7일 많은 대구 시민들이 서문시장을 찾았다. 김형선 기자

 

대구는 흔히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린다. 보수정당의 주요 정치인들은 정치적으로 중대 기로에 섰을 때마다 대구 지역을 찾아가 '기'를 받곤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율이 20%대로 곤두박질 친 지난 8월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시민들을 만나 힘을 얻었다.

윤 대통령은 서문시장에서 "어려울 때도 우리 서문시장과 대구 시민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당권을 노리는 당권주자들에게도 대구는 1순위 방문지다. 이들과 결을 달리하지만 여전히 국민의힘에 뿌리를 둔 이준석 전 당대표가 자신의 정견을 발표한 곳도 대구 김광석 거리였다. 이 전 대표는 지난 달 여기서 대구시민들이 죽비를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흔히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불리는 한국 정당정치에서 대구는 보수계열 정당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들이 '갈라파고스 정당'에 안주하게 하는 달콤한 덫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하락 후 정체기에 접어들고 이준석 사태 이후 신당창당설이 나오는 지금, 대구 민심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잘 좀 해얄낀데 … 싸우지들 말고" = 7일 대구 서문시장, 칠성시장 등지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윤 대통령에 대해 물으면 직접적으로 윤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참모 탓' 또는 '여당 탓'을 했다.

대구 칠성시장에서 만난 60대 주부 유 모씨는 최근 윤 대통령을 어떻게 보는지를 묻자 참모 이야기부터 꺼냈다. 유씨는 "(대통령) 참모들이 해도 해도 너무 못한다"고 말했다.

서문시장에서 양말장사를 하는 박 모(70·남)씨도 비슷한 톤이었다. 박 씨는 "대통령도 사람인데 실수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그럴 때 참모들이 직언도 하고 해야 하는데 그걸 안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 내 압도적 지지로 뽑은 윤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을 차마 드러나게 이야기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지지율이 하락한 윤 대통령이 잘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할 수 없는 당혹감이 감지됐다. 대구 지역은 지난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 후보에게 75.14%의 몰표를 줬다. 최근 대구·경북 지역의 윤 대통령에 대한 국정수행 지지도는 39%였다. (한국갤럽, 4~6일, 이하 모든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 탓'도 단골메뉴였다. "(국민의힘이) 잘 좀 해얄낀데 그죠? 싸우지들 말고." 서문시장에서 뜨개질집을 운영중인 김 모(59·여)씨의 이야기다.

김씨 점포에서 카키색 모자를 뜨고 있던 동갑내기 이 모씨는 "이준석이를 잘 써먹어야 하는데 왜 쫓아내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지지도 하락에 대한 질문에 대선 직후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국민의힘 내홍 탓을 한 셈이다.

◆연령대 내려갈수록 실망감 드러내 = 그렇다고 정작 국민의힘에 대해 물으면 여전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씨는 "그렇다고 저짝(민주당)을 찍을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어떻게하든 간에 (국민의힘이) 잘 뭉쳐서 나가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든 지지를 해줘서 끌고 가야지. 그거 아니면 죽도 밥도 안 된다"고 말했다.

다만 연령대가 내려갈수록 윤 대통령이나 국민의힘에 대한 실망감을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김씨네 가게에서 뜨개실을 산 김에 이틀째 뜨개질을 배워보고 있다는 40대 주부 윤 모씨는 "윤 대통령은 솔직히 막판에 데려온 사람 아니냐"면서 "잘 할 거라고 기대한 적도 없지만 맹하다고 할까 색깔이 없다고 할까 뭘 하려는지 잘 모르겠더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그 당도 좀 바뀌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법 어둑어둑해진 오후 시간대 동성로에서 만난 젊은이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다. 대학생이라고 밝힌 김 모씨는 "대선 때 윤석열을 찍긴 했는데 요즘 이준석 쫓아내는 거 보니까 대통령이 돼서 그렇게 할 일이 없나 싶다"고 말했다.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 후보는 이 전 대표를 내세워 젊은 층 지지세를 확보했지만 최근 20대 지지율은 전연령대 중에서도 하위권을 기록중이다. 한국갤럽의 지난 달 5주차 여론조사에서는 18~29세 청년층 지지율이 한 자릿수(9%)로 나와 충격파를 주기도 했다.

◆"이준석 쫓아내기 … 대통령 돼서 할 일이 그렇게 없나" = 여전히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대한 애정이 높은 대구지만 변화에 대한 요구도 저변에 흐르고 있다는 것이 지역인사들의 이야기다.

대구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로 꼽히는 한 인사는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대구 지역의 지지세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이 인사는 "이 전 대표가 김광석 거리에서 진행한 기자회견, 서문시장의 공개적인 자리에서 진행한 방송 인터뷰를 보면 누구도 뭐라 욕하지도 않고 오히려 응원한다고 하고 길게 줄 서서 사진 찍고 하더라"면서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아닌 다른 변화를 요구하는 민심이 이 전 대표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 근저에 흐르고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이 인사는 "특히 이 전 대표가 지역 정치인들에게 대구 시민들이 죽비를 들어달라고 했을 때 모인 관중들이 환호성을 지르더라"면서 "옆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죽비로 안 되고 육모방망이로 내려쳐야 한다 말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민심 중 하나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국민의힘 당 대표 1순위로 윤 대통령과는 정치적 대척점에 서 있는 유승민 전 의원이 꼽히는 점도 변화를 원하는 민심 지표 중의 하나로 주목할 만하다. 유 전 의원은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7주 연속 '당 대표 적합도 1위'를 기록했다. 넥스트위크리서치가 지난 4~5일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유 전 의원은 29.7%의 지지를 얻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지지율 1위였다. 양말가게 사장 박씨는 "윤 대통령이 이준석도 그렇고 유승민도 그렇고 다 버리는데 솔직히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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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최세호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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