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인력 30명 오수면 영농 해결사로

농촌은 이미 다국적 문화교류 정착 단계

저출산·고령화는 한국사회가 장기적으로 해결해야할 가장 큰 숙제다. 산업계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모든 업종에서 인력난이 심각하다.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중소기업 건설현장 농수산업 등이 멈출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들은 인구구조 변화로 바뀐 시장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내일신문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산업계 어려움을 살펴보고 업종 대표 기업들의 대응을 6차례에 걸쳐 싣는다.

9월 30일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암1길의 한 농장에서 베트남 근로자 10여명이 작약 뿌리를 능숙하게 손질하고 있다. 털어낸 흙과 잔뿌리를 제거한 작약이 톤백 마대에 차곡히 쌓여 이송될 준비를 마쳤다. 농장주 노석호씨는 오늘 마음이 급하다. 그동안 비가 와서 처리하지 못한 농작업을 끝내야 내일은 또 다른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전북 임실군 오수면의 지희농장에서 작약 수확작업을 하고 있는 베트남 근로자. 사진 김성배


노씨는 베트남 인력을 더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작약 수확철에 일손이 많이 필요한데, 계절근로제로 들어온 외국인 인력을 혼자만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날에는 비가 와서 실외 작업을 허탕친 일도 있다.

베트남인 30명은 농협에서 마련한 공공형 계절근로자로 임실에 왔다. 모두 친인척 남성으로 구성돼 이탈이나 사고 염려가 없어 농장주들이 선호한다. 특히 공공형 계절근로자는 농장주가 일당 10만원을 내고 가동할 수 있다. 점심식사와 간식비 등을 제외하고도 남자의 경우 4만원 이상 인건비가 절약된다. 노씨는 "베트남 사람들이 일을 잘하고 한국 문화와 잘 맞는 것 같아 좀더 많은 인원이 들어와 인력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씨는 작약은 물론 체리와 딸기도 재배하고 있다. 작약 농사가 끝나면 딸기를 파종할 때인데, 베트남 인력은 10월말 모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체리 농사도 수확철 상당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노씨는 베트남 계절근로자들이 돌아가면 내국인 인력을 공급하는 일명 '오야지'에게 다시 연락할 참이다. 노씨는 "최근 시설농업이 많기 때문에 특별히 농번기라고 따로 없다"며 "외국인근로자가 1년 365일 항시 공급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노씨는 공공형 계절근로자를 쓰기 전에 외국인 2명을 고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태국에서 온 근로자는 농장에서 1년 내내 먹고 자며 일했지만 장마시즌이나 폭염 때는 일하지 못했다. 실제 고용 외국인이 필요한 농번기를 제외하고는 잡일을 하는 수준이었다. 노씨는 농협이 운영 중인 공공형 계절근로가 가장 적합한 영농인력으로 보고 농협의 인력공급망을 계속 활용할 계획이다.

전북 임실군은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임실군 오수관촌농협 조합원 4418명 중 65세 이상이 2864명으로 65%를 차지하고 있다. 턱없이 부족한 농촌 인력은 인근 지역 내국인들이 팀을 짜서 움직이는 '브로커'들이 공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농장주들은 내국인보다 외국인을 더 선호한다. 정부에서 마련한 계절근로제도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숫자가 감소한데다 이탈자가 많은 허점이 있었다.

이를 보완해 임실군과 오수관촌농협은 베트남에서 30명의 인력을 수급해 6월부터 '공공형 외국인 계절근로자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문화가 다른 이질감으로 정착이 어려웠다. 지역 내 모텔을 빌려 생활하던 이들은 향신료 강한 모국 음식을 해먹으면서 사소한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오수관촌농협은 식문화 개선과 교류 사업을 지속 확대해 문화적 차이를 극복했다. 특히 하루 8시간 주 40시간 근로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있어 외국인 근로자로부터 호평을 받는다. 지금은 베트남 근로자들이 "내년에도 임실에 와서 일하고 싶다"는 뜻을 전할 정도다. 공공형 외국인 계절근로 사업을 총괄하는 엄진호 오수관촌농협 상무는 "베트남 근로자들이 삼겹살을 매우 좋아한다"며 "이들을 위해 삼겹살 파티를 준비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 외국인 영농인력 운영에 상당한 도움이 될 정도로 문화적 교류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실에 온 베트남 근로자는 성실 근로자로 꼽히고 있다. 이들에게는 매년 국내로 들어와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 비자 연장이나 지역 영주권리 등이 제도적으로 개선된다면 임실은 베트남과 민간교류의 교두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철석 오수관촌농협 조합장은 "공공형 외국인 근로자를 더 수용할 수 있는 숙소 건립과 통역 지원, 문화적 교류로 농촌 영농인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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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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