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감세, 기업 유보금만 늘렸다

백화점식 친재벌 규제완화 추진

재벌총수 사익편취규제 대폭완화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후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기업엔 대규모 감세와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시장약자인 근로자와 자영업자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은 축소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재벌총수일가의 사익편취 규제를 무력화하는 정책을 통해 수십년간 어렵게 쌓아온 경제민주화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세계시장 추세에 역행하는 감세 = 윤석열정부의 2022년 세법개정안의 키워드는 감세다. 이례적인 대규모다. 정부 분석에 따르면 윤석열정부 임기동안 13조원 규모다. 시민단체는 60조원 규모라고 주장한다.

증인 선서하는 공정거래위원장 | 국회에서 지난 7일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한기정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기획재정부는 세법개정안을 내면서 "법인세율 인하 등 조치로 투자 여력이 높아져서 투자·고용이 증가돼 경제 활력이 제고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면서 2016년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와 2017년 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를 인용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법인세 평균 실효세율을 1%p를 낮추면 투자율은 0.2%p 늘고 법인세율을 3%p 인상하면 투자는 0.7%, 고용 0.2%, GDP(국내총생산)는 0.3% 감소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요 선진국의 법인세 추세는 코로나19 발발 이후부터는 '인상 또는 동결'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도 지난 3월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안(21→28%)을 담은 올해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네덜란드는 지난해로 예정된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계획(25→21.7%)을 취소하고 기존 세율을 유지 중이다.

주요 선진국들이 법인세를 동결하거나 인상하는 이유는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재정적자가 늘자 세수 확보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감세를 추진했던 영국은 결국 감세철회와 총리사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감세로 투자 유도할 수 있을까 = 기업에 대한 대규모 감세가 기업투자를 유도하고 경제활력을 가져올 것이란 정부 설명도 근거가 부족하다.

재정전문가인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조세가 기업 투자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반박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기업의 투자는 경기 흐름과 이윤창출의 가능성에 달려 있다"면서 "현재와 같은 세계적 경기침체와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세금을 깎아준다고 기업이 투자를 늘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장 최근에 감세정책을 편 정부는 이명박정부다. 이명박정부는 2008년 낙수효과를 거론하며 법인세를 25%에서 22%로 인하했다. 하지만 세금을 감면받은 대기업들은 사내 유보금만 늘리고 실제 투자는 확대하지 않았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09년 국내 20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액수는 322조4490억원에서 2013년 588조9500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반면 이들 기업의 실물투자액은 같은 기간 33조30억원에서 9조6060억원으로 70% 이상 감소했다. 차기정부였던 박근혜정부가 기업 유보자금을 투자로 유도하기 위해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만든 배경이 되기도 했다.

정부가 대규모 감세를 단행했지만 고용사정도 좋아지지 않았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제출받은 '법인세와 청년층 고용률의 상관관계 분석'을 토대로 최근 20년간 법인세 명목 최고세율이 24.20%(지방소득세 포함)로 가장 낮았던 2009~2017년 동안 청년층(15~29세) 고용률이 가장 낮았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최고세율이 27.50%로 오른 2018년에는 청년 고용률이 42.7%로 상승했다.

◆취약계층에 치명타 될 수도 = 더 큰 문제는 정부의 부자감세 정책이 복합경제위기에 역행, 오히려 위기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 경기침체가 길어지면 가장 취약한 계층이 저소득자와 빚 많은 중산층이다. 복합위기는 높은 금리와 물가, 낮은 성장률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복합위기에 노출될 취약계층의 파국을 막기 위한 선제대응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법개정안 토론회에서 "법인세 대기업 감세, 부동산 자산 및 금융 자산계층 감세를 핵심으로 하고 있으며 소득세 하위 구간 감세는 자동으로 상위 구간에 더욱 큰 감세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부자 감세'"로 규정했다. 정 교수는 "현재 상황에서는 오히려 증세를 통해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이, 성장이나 분배 측면에서 더욱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경제위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재정여력을 위축시키는 (감세)정책은 정부의 대응능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제검찰 공정위는 무력화 = 경제민주화 후퇴의 또 다른 상징은 대기업 독점 폐해를 규제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무력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재벌총수일가의 사익 편취 규제를 무력화하는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 사익 편취란 재벌총수일가가 사익증진을 위한 내부 거래를 의미하며, 이들의 독점을 가능하게 하는 대표적 수단이다.

하지만 정부는 재벌총수일가의 친족범위를 축소해 3촌(인척) 또는 4촌(혈족) 이상의 관계는 총수일가가 아닌 것으로 해석, 더 많은 사익 편취가 가능하도록 허용했다.

또 △부당사익편취법 적용 예외 대상 확대 검토 △조사 과정에서 '이의제기'가 가능한 절차 신설 △형벌규정 폐지(사익을 편취한 재벌총수 일가에 대한 형사고발 무력화) 등을 통해 사익편취 규제기반을 허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 기반붕괴 우려 = 이와 함께 재벌 경제력 집중 규제를 위한 각종 정책과 제도 역시 무력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표적인 정책으로 △익금불산입 비율 제고 △중소벤처기업 대기업집단 계열 편입 유예 대상 확대 △대기업 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규제 및 금산분리 완화 등을 지목했다. 박상인 교수는 "이러한 정책들은 궁극적으로 재벌대기업의 독점을 더욱 가속화하고 중소기업의 기반이 붕괴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중소기업과 노동자, 자영업자 등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은 오히려 축소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그동안 노동계와 전문가들이 요구했던 '납품단가연동제'와 '플랫폼독점규제' 정책도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는 민간주도의 자율 규제로 대책을 제시, 사실상 중소기업을 육성하려는 의지가 없음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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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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