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 17. 정권심판 이슈가 관통된 이번 총선에서 야권의 전국적 압승에도 불구하고 부산은 예외였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묻지마식 정서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작동했다. 총선 직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절반가량 선거구가 경합지로 분류되고 진보당에도 밀리는 지역이 생겼지만 위기감은 보수결집으로 이어졌다.

샤이보수들은 사전투표부터 본투표까지 투표장에 나갈 강력한 이유가 생겼고 결과적으로 역대 가장 싱거운 선거가 되고 말았다. 이들은 부산 정치 지형을 단번에 2008년 18대 총선 당시 수준으로 되돌려 놓았다. “대통령을 찍은 손모가지를 부러뜨리고 싶었다”면서도 “죽은 표를 만들지 않기 위해 투표장에 모두 끌고 가겠다”고 말한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런데 꼭 이것 때문에 부산의 정치 지형이 16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 갔을까. 부산 시민들 사이에서 “엑스포 유치 실패로 울고 싶던 차에 산업은행이 뺨을 때렸다”는 말이 나온다. 산업은행 유치에 모르쇠로 일관한 더불어민주당에 쌓인 불만이 표심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민주당 내 중앙당과 부산시당의 엇박자가 일조한 측면도 있다. 부산시당은 이번 총선공약 제일 첫머리에 산업은행 본점 이전을 내세웠다. 하지만 중앙당 공약집에는 한줄 언급조차 없다.

‘수도권 1극체제 해소’ ‘남부수도권’을 외치던 이재명 대표지만 산업은행에 대해서만은 가타부타 입을 닫고 있다. 오죽하면 박형준 부산시장은 “국회 방문할 때마다 이 대표 면담을 신청했지만 만나주지를 않는다”고 하소연 할 정도다.

당연히 ‘외면’ ‘환심용 기만행위’ 등 비판이 잇따랐다. 부산 출마 민주당 후보들이 빈 공약으로 오해사기 딱 좋은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이런 것들이 부산의 민주당 심판 역풍에 한몫 거들었다는 게 마냥 억지논리는 아닌 듯싶다.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은 그나마 나오던 목소리마저 힘을 잃으며 더 요원해진 모양새다. 차질 우려를 넘어 신공항처럼 장기간 맴돌이하거나 최악의 경우 좌초되는 것은 부산 시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수다.

통큰 해결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민주당은 지역균형발전을 외쳐왔던 노무현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정부와 여당은 이럴 때일수록 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야당을 설득하고 협치해야 한다. 던져만 놓고 할 일 다 했다는 식이면 안된다.

부산 시민들이 이번은 민주당을 심판했지만 다음 차례는 국민의힘일 수 있다. 이번 총선 결과는 16년 전과 비슷하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당시 민주당 득표율은 10%대와 한자리수 득표가 수두룩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평균 45%를 얻었다. 국민의힘도 5%만 움직이면 모든 게 뒤바뀔 수 있다는 경고를 기억해야 한다.

곽재우 자치행정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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