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가 소위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장기부진 상황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물가하락 속에서 수요가 감소하고 임금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면서 올해 춘투 임금인상률은 대기업의 경우 5%대에 달하고 중소기업도 4%를 넘는다.

물론 일본은 저출생 인구감소 문제에 고전하고 있으며, 잠재성장률이 실질기준으로 여전히 1% 내외 수준을 크게 벗어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명목경제성장률은 2% 이상으로 회복되면서 재정수입 임금 기업이익이 늘어나기 쉬운 상황으로 호전했다. 이에 힘입어 일본 주가도 지난 1989년 말에 기록한 버블경제 붕괴 이전의 최고 수준을 회복하는 호조세를 보였다.

‘잃어버린 30년’에서 부활하는 일본경제

일본의 부활은 과거 미국 패권에 도전할 수 있었던 만큼의 경제적 활력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일본의 위상 변화도 주목된다. 미국이 아시아의 전략적인 파트너로서 일본을 중시하면서 미일 간 첨단산업 협력도 강화될 조짐이다.

4월 11일에 있었던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그린 이노베이션 협력과 함께 우주 반도체 AI 양자기술 등의 공동연구, 공급망 협력 방침이 합의되었다. 이는 단순한 선언적인 의미 이상의 효과가 추구되고 있다. 구체적인 미일 협력 사업이 합의된 것이다. 예를 들면 양국 대학의 첨단기술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양국 기업이 1조1000억달러의 자금을 실제로 갹출하고 새로운 미일 공동연구 추진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일본의 장기불황 초기는 미국과 구소련의 냉전이 종식되면서 미일 관계가 경제전쟁이라고 할 만큼 긴장되었던 시기였다. 이러한 전략적 구도의 변화가 일본경제에도 중요한 영향을 주었던 것을 고려하면 최근 미일 동맹체제의 강화 및 첨단산업 협력 고도화는 일본경제의 부상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게다가 일본정부는 국제정세의 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경제 및 산업의 강점을 기반으로 한 경제회생을 전략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장기불황기에도 일본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는 계속 강점을 유지해 왔으며, 일본은 차세대 첨단산업 육성, 미일협력, 외국기업 유치 등에 이러한 강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 사실 AI를 뒷받침하는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은 주요 장비의 30%, 주요 소재의 50% 정도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그 위력은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9년에 있었던 일본의 ‘반도체 소부장 수출규제 조치’로 실감한 바 있다.

차세대 디지털 혁신의 흐름을 바꾸게 될 것으로 보이는 양자컴퓨터는 미국 중국이 주도하고 있으나 이를 위한 초전도 관련 소부장의 40% 정도를 일본기업이 공급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으로서는 소부장의 경쟁력을 기반으로 국내외 첨단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강화된 미일 동맹 협력관계를 활용해 산업의 그린화 디지털화 바이오화라는 4차산업혁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경제를 부흥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정세 변화에 대응하는 국가전략 추진해

지난 1990년대의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은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응해 국가적 전략을 강구하는 데 미숙했던 것이 경제의 장기적 침체를 촉진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이제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과거 미국도 세계의 공장으로 도약한 후 1929년 대공황으로 주가가 대폭락하고 이를 회복하는 데 25년이나 소요되었으며, 제2차세계대전을 계기로 기존의 고립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글로벌 패권국가로서의 전략 추진체제를 정비해 경제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

우리로서도 국제정세 및 국내 여건 변화에 맞게 강점 분야를 중심으로 한 경제와 외교 전략을 한묶음으로 추진하는 국가적 차원의 전략을 지속적으로 고민해 일관되게 추진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특임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