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고민 나누고 행정과 접점 찾는 '청년정책네트워크'

시의회와 협업, 10대 정책 제안 … '시민 자존감'도 체감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좌절하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가능성이 있다' '실현될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낼 수 있고 만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인생을 굉장히 헛살았다고 느꼈습니다. 학교 가고 PC방 가고 술 먹고…. 그런데 많은 청년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학교생활 취업준비에 고정돼있던 청년들 시선이 서울을 향하면서 서울 정책이 바뀌고 있다. 일상 속 고민을 함께 나누는데서 출발해 행정과 접점을 찾아 정책화하는 '청년정책네트워크'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청년들은 '일상의 발견으로 서울의 변화를 만들다'는 기치를 넘어 스스로 다시 희망을 꿈꾸고 공동체를 돌아보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청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다 = 서울시 행정을 모니터링하는 암행어사가 출발이었다. 일자리 먹거리 살거리 등 청년과 연결고리가 있는 서울시 정책과 사업을 살피고 개선점은 없는지 정작 필요한 부분이 빠지지는 않았는지 제안하고 요구하는 형태였다. 청년 스스로 필요한 정책을 말하고 당사자들 논의·토론을 거쳐 정책으로 실현시키는 협의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청년정책에 관심이 있거나 사회참여를 원하는 사람, 일상에서 느낀 필요와 고민을 나누고 해결하기 위한 사회참여에 함께 할 청년들이 모여 '청년정책네트워크'(청정넷)를 구성했다.

일자리 일변도에서 청년 삶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형태의 청년정책을 제안하고 정책화한 주인공은 청년들 본인이다. 올해로 4기째인 청년정책네트워크 참여자들이 지난 4월 첫 캠프에서 자신들의 일상 속 고민을 행정에 담아내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청정넷 제공


사회참여가 오지랖 넓은 행위라는 뜻에서 청정넷 참여자 스스로를 '오지라퍼'라 명명했다. 2013년 8월 249명이 '청정비빔밥 발대식'으로 뭉쳤고 그해 10월 박원순 시장과 함께 청년정책 수립을 위한 정책 '이심전심 대회'를 진행했다. 오지라퍼는 일자리 주거 등 청년들이 당면한 문제는 물론 성평등 장애 등 주제별로 모둠을 꾸려 관심사를 다듬었다. 정책전문가와도 연계, 그해 말 35개 정책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으로 첫 활동을 마무리했다.

이듬해 여름부터 2015년까지 1년 반에 걸쳤던 2기 청정넷은 보다 구체화됐다. 창업 활동 주거 일자리노동 마을 교육 등 12개 영역을 나누어 참여자를 모집했고 총 위원 271명 가운데 150명이 오지라퍼를 자처했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별다른 의미 없이 지나쳤던 도심 내 빈 공간을 시민공간으로 돌려주자.' '버스노선을 서울시 지도와 일치시켜보자.' '여성을 대상으로 시행 중인 여성안심귀가제도가 오히려 시각장애인에 유용하다.'는 등 다양한 제안이 쏟아졌다.

일자리 중심 청년정책을 청년들 삶 전반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청년기본조례 틀을 마련했고 모둠별로 서울시 실국본부 간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정책을 논의했다. 무엇보다 서울시 정책을 청년이 발의하고 집행상황을 점검하는 청년의회를 구성, 단순한 자문기구에서 협치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 김희성(서울시 청년 명예시장) 청정넷 운영위원장은 "지난해 3기 청정넷 청년의회는 서울시의회 청년특별위원회와 공동 주최, 본회의장에서 시정질문을 하고 박원순 시장을 비롯한 간부들 답변을 들었다"며 "시민으로서 자존감을 체감하고 사회변화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청년, 참여하는 시민으로 = 청년들은 청정넷을 통해 자신들의 고민과 일상에 기반한 서울시 정책 개선안을 제시하고 기존 법·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찾아낸다. 지난해 분과별 논의를 거쳐 청년의회에서 최종 통과된 10대 정책제안이 대표적이다. 청년수당분과는 보건복지부와 갈등 속에서 어렵게 첫 발을 뗀 청년수당이 단순 취업지원이 아니라 사회참여를 위한 청년들 욕구와 필요를 다양하게 지원하는 정책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신지예 의원이 분과를 대표해 기조연설에 나서 "신청 자격기준을 청년들 현실에 맞게 완화하고 선정심사 기준과 지침을 공개하라"고 강조했다. 차해영 보건분과 의원은 서울시가 지정한 '건강한 숟가락·젓가락의 날'(9월 11일)을 예로 들며 1인 청년가구 건강증진을 위한 실태조사를, 박향진 주거분과 의원은 청년 세입자가 각종 주택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온라인 주거정보망 구축을 제안했다.

10개 분과에서 내놓은 15개 사업은 단순히 청년에 국한되지 않았다. 청년들은 장애인의 문화관광 분야 참여 확대나 서울자전거 따릉이 확대와 발맞춘 안전교육, 시민들이 주로 활동하는 공간으로 미세먼지 측정소 이전 등 '서울시민' 삶을 포괄하는 정책까지 눈을 돌렸다. 청년정책담당관을 비롯해 가족담당관 대기관리과 관광정책과 평생학습담당관 등 서울시 각 부서는 청년의원 제안을 검토, 14개에 대해 수용 혹은 부분수용 하기로 했다. 의회가 끝난 뒤에도 올해 소요 예산과 추진 계획을 마련해 청정넷에 전달했고 청년들은 그 이행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올해도 학생 직장인 활동가 취업준비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청년 316명이 서울시 정책과 사업을 청년이자 시민의 눈으로 살펴보겠다고 모였다. 4월 오지랖캠프 이후 의제별 17개 모임을 꾸렸고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청년정책이 실제 청년들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논의 중이다. 당장 9일 '청년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토론회'부터 7월과 9월 예정된 청년의회 청년주간에서는 서울시에서 한발 나가 전국 청년을 위한 고민을 나눌 계획이다.

청년들의 '시민력' 미래를 결정한다 = "법이나 정책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었는데 협치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됐습니다." "공동체에 뭔가 도움될 수 있다는 생각, 그 점에서 기쁨을 느끼고 활동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짧게는 1년 길게는 4년째 이어가는 청정넷 활동. 청년들은 다시 꿈을 꾸고 이웃에 눈을 돌리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운영사무국에서 청정넷을 지원하는 이해림씨는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길을 걸어볼 수 있었던 기회의 공간, 누군가는 상상만 했던 일들을 실현시키는 공간"이라며 "희망을 품는 것이 사치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새로운 내일에 대한 희망의 가능성을 품어보는 기회가 됐다"고 설명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걸음 나가 청년들의 지성 지식 지혜가 서울의 미래를 결정하는 힘이 되고 있다고 평했다. 당장 청년 현실에 맞게 제도를 바꾸고 무엇을 할지 당사자가 정한다는 원칙에 따라 새롭게 시도한 서울시 청년정책이 새정부 출범과 함께 전국화 가능성이 커졌다.

박원순 시장은 "청년들이 일상과 행정이 만나는 청년정책을 제안했다"며 "청년이 제안한 정책, 이를 통해 변화되는 풍경을 볼 때마다 '시민력'에 대한 확신이 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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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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