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족' 모여 음식 나누고 건강 챙기고

고시촌 혼밥·혼술 1인가구 49% 질환 의심

"건강한 삶에 대한 사회적 기준 마련해야"

"의식주 가운데 가장 먼저 먹거리를 줄여요. 몸이 아파서 병원을 가야하니 한끼 굶고, 당장 뭔가 사야 할 게 있으면 또 한끼 굶고…. 주말에 모임이 있으니, 친구들하고 뷔페를 가기로 했으니 그때 가서 실컷 먹으면 되겠지 생각해요."

서울시가 청년 건강권에 새롭게 주목하고 있다. 밥상 나눔을 통해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챙기도록 하는 음식공동체 지원이 대표적이다. 자치구들도 '낭만'으로 포장되기 십상인 혼밥·혼술하는 청년들 식생활 개선과 사회성 향상에 적극 개입하는 추세다.

1주일에 5일 이상 혼자 밥먹는다 = 지난해 서울시 청년의회에서 문제제기를 했을 때만 해도 혼자 사는 청년 건강권은 낯선 주제였다. 차해영 당시 보건분과 의원은 "청년층에 결핵 B형간염 우울 골다공증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며 "건강하지 못한 식생활이 원인"이라고 꼽았다.

서울시 청년정책네트워크가 1인가구 대학생과 대학원생(19~34세) 15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독립생활자 식생활 실태' 조사에 따르면 규칙적인 식생활을 하는 청년은 7.1%에 불과하다. 대다수(76.6%)는 규칙적인 식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했다. 끼니를 거르지 않는 청년은 규칙적인 식생활을 하는 청년 절반 수준(3.9%)이다. 거의 모든 청년(96.1%)이 종종 밥을 굶거나(72.1%), 가끔(24.0%) 혹은 드물게(3.9%) 끼니를 거른다. 귀찮아서(66.9%), 습관적으로(37.7%), 굶기도 하지만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32.5%), 음식 만들 시간이 없어서(29.2%), 장 볼 시간이 없어서(18.8%), 굶는 경우도 상당수다(중복답변). 청년들 스스로도 '식생활 수준이 좋지 않다'(66.9%)고 평가할 정도다.

서울시와 자치구가 청년, 특히 혼자 사는 청년층 건강에 눈을 돌리고 있다. 장보기부터 밥상나눔까지 함께 하는 공유부엌은 청년층 건강을 챙기는 해법 중 하나. 금천구 청년 전용공간인 청춘삘딩에서 청년들이 요리를 함께 하고 있다. 사진 금천구 제공


최근 서울 관악구가 대학동 고시촌 1인가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혼밥이 건강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분석돼 주목된다. 20대 139명과 30대 73명을 포함해 총 240명 가운데 스스로를 혼밥족이나 혼밥·혼술족이라 생각하는 주민은 각각 135명(56.3%)과 75명(31.3%)인데 혼밥 횟수는 1주일에 평균 5.3회에 달한다. 10명 중 8명은 주 5일 이상 아침 혼밥, 7명 가량은 점심과 저녁 혼밥 횟수가 주 5일 이상이었다. 간단하고 빠르게 끼니를 때우기 위한 혼밥·혼술이 139명(57.9%)으로 가장 많고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혼밥·혼술을 한다는 주민도 10명(4.2%)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 위한 혼밥·혼술은 35명(14.6%)으로 상대적으로 적다.

조사 대상자 10명 중 8명 가량인 193명(80.4%)은 혼밥·혼술을 단순한 문화라고 생각한다지만 건강검진 결과는 달랐다. 혈압측정 혈액검사 흉부방사선촬영까지 한 결과 질환의심이 117명(48.7%)으로 절반에 달했다. 혈압(84명) 중성지방(54명) 간기능검사(39명) 순으로 비정상 소견이 많았다. 건강이 양호한 정상군과 예방조치가 필요한 정상군은 각각 93명(38.8%)과 30명(12.6%)이었다.


청년 식생활, 비정상을 정상으로 = 서울 강동구 암사동 암사종합시장 내 암사공동체마당. 매달 1·3주 월요일과 2·4주 화요일 저녁 7시를 전후해 동네 청년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평균 예닐곱명이 시장에서 장을 봐 요리를 하고 음식을 나눠먹으면서 마음 속 고민을 털어놓거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청년들의 음식공동체 청년식탁이다.

청년들이 스스로 건강을 지키기 위해 주목한 건 밥상. 혼자 대충 때우고 마는 끼니가 아니라 제대로 된 식사여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홀몸노인이나 저소득가구 지원처럼 반찬배달이나 음식은행 등 단순 지원 형태가 아니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청년들이 장보기부터 음식조리 식사까지 전체 과정을 공유하는 '공유부엌'이다. 균형 잡힌 식생활은 물론 정신적·사회적 건강을 챙기는 동시에 청년 건강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키울 수 있다. 지난해 마포구 연남동 망원시장과 연계한 공유부엌을 시작으로 은평구 청년허브 내 창문카페, 강동구 청년식탁, 금천구 무중력키친과 청춘삘딩 내 대대식당 등 청년이 모이는 곳에는 공동체밥상이 확산되고 있다.

암사시장을 비롯해 시흥동 대명시장 등 전통시장 활성화와 연계해 신선한 재료 구입방법을 서로에게 전수하는가 하면 1인가구가 쉽게 시도할 수 있는 요리법을 개발해 공유한다. 원보라 강동 청년식탁 대표는 "음식만 만들어 먹고 헤어지는 1회성 모임에 그치지 않으려고 2주에 한번은 함께 활동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며 "더디긴 하지만 사회문제나 지역사회에도 눈을 돌리는 변화의 싹이 보인다"고 전했다.

서울시는 곳곳에서 시도 중인 공유부엌 현황을 분석해 유형화하는 한편 온라인 연계망을 구축해 누구나 거주지 가까운 곳에서 이용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청년을 시작으로 결혼이주여성 노인 등 결식이나 혼밥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부엌 구축을 단계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청년들은 지역별 공유부엌 공동체밥상에 더해 비정상적으로 기운 청년 식생활을 돌려놓을 근본적 대책을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청년 1인가구 식생활 연구모임 '끼니를 다함께' 차해영 대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건강한 식생활을 위한 공간 구성이나 적정 식비 등 '건강한 삶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시혜적 복지로 접근하기보다 독립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청년 스스로 건강을 돌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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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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