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정책 국민에 직접 물어야' 90% 달하지만

강한 동의는 대의제 소외집단서 가장 높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취임 100일에 즈음해 가진 대국민보고 행사에서 "이제 국민들은 간접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평소에는 정치를 구경만 하다가 선거 때 한 표를 행사하는 간접민주주의의 결과 우리 정치가 낙후되었다고 국민들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촛불집회처럼 정치가 잘못할 때에는 직접 촛불을 들어서 정치적 의사표시를 하고, 정당의 권리당원으로 참여하거나 정부 정책에 직접 제안하고 반영해 줄 것을 요구하는 등 국민들이 직접민주주의를 원하고 있다는 게 문 대통령의 진단이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집단 지성과 함께 나가는 것이 국정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며 "국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해나가겠다"고도 했다.

실제 촛불집회를 경험하면서 정부 정책에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다.


내일신문과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가 촛불항쟁 이후 시민사회의 인식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기획조사한 결과를 보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는 국민의 의사를 직접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매우 찬성한다'는 응답이 29.5%, '찬성하는 편'이라는 답변이 60.6%로 90.0%가 찬성의견을 밝혔다.

이는 지난해 12월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같은 주장에 대한 찬성 응답률이 84.9%였던 것보다도 5.1%p 증가한 수치다.

이같은 결과만 보면 정책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나 국민소환 등 직접민주제 도입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커진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정치효능감'에 따라 응답자를 구분해 세부적으로 분석하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정치효능감은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뭐라고 얘기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의견에 대한 동의 정도로 구분했다. 동의가 강할수록 정치효능을 낮게 느낀다는 의미다.

분석 결과 '국가 중요 정책 결정시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에 강한 동의(매우 찬성) 의사를 밝힌 집단은 정치효능감이 가장 낮은 집단이었다. 지난해 12월 조사의 경우 정치효능감이 매우 낮은 집단에서 국민투표 실시에 매우 찬성한다는 응답률이 54.0%에 달했다. 다음으로는 정치효능감이 매우 높은 집단(46.5%)이었고 정치효능감이 낮은 집단(37.8%), 정치효능감이 높은 집단(37.3%) 순이었다.

이번 조사에서도 중요 정책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에 매우 찬성한다는 응답은 정치효능감이 매우 낮은 집단(48.1%)에서 가장 많았고 정치효능감이 매우 높은 집단(35.9%), 높은 편(24.7%), 낮은 편(21.0%) 순이었다.

자신의 요구가 정부 정책에 반영된 경험이 있어 정치효능감이 매우 높은 집단에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효능감이 가장 낮은 집단에서 직접민주주의에 대해 더 높은 요구가 발견되는 것은 정치에서 소외돼 있는 집단의 잠재적인 의사 대변 요구가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학력별로도 저학력일수록 국민투표 실시에 매우 찬성한다는 응답비중이 높았다. 중졸이하에서는 45.0%, 고졸 29.8%, 대학 재학 이상은 26.5%가 국민투표 실시에 매우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세부 분석 결과를 보면 기존 제도정치가 자신의 의사를 전혀 대변하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집단에서 직접민주주의 도입에 대한 요구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직접 민주제라는 제도보다는 중요정책에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의사반영 방식으로 직접민주제를 채택하지 않은 게 문제가 아니라 기존 대의제가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며 "기존 대의제를 정상적으로 작동시키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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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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