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기업성향 이명박정부 '실습다운 실습' 포기 … 최소한 학습권 보장하는 제도 필요

전공과 동떨어진 '나홀로 작업'을 하다 사망한 이민호군 사건을 계기로사고와 자살, 노동력 착취 논란이 끊이지 않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 개선에 힘이 실리고 있다. 현장실습 중심을 '취업'에서 '교육'으로 전환해 2008년 이명박정부가 무너트린 '실습다운 실습' 체제로 복귀하자는 것이다.

교육·시민단체들이 지난 7월 전국 시도교육청 앞에서 동시 다발로 '특성화고 현장실습 방치한 교육당국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서울시교육청 앞 기자회견 모습. 사진 추상철 기자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은 29일 현장실습 중 사망한 이민호군 사건을 계기로 후속 조치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도교육청은 기존 근로중심의 현장실습을 학습중심으로 바꾸고 실습기간도 6개월 이내에서 3개월 내외로 줄일 계획이다. 운영 형태는 조기취업 형태에서 취업 준비과정으로 개선하고 현장실습표준협약서 이외에 근로계약서 체결은 금지할 계획이다. 앞으로는 안전보건공단 등의 협조를 얻어 안전인증업체로 지정된 곳에 현장실습생을 보낼 방침이다.

결국 특성화고들의 집단반발로 적용시기가 유예된 교육부의 가이드라인 도입시기를 앞당기는 것으로 다른 시·도교육청으로 확산될지에 교육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제도는 1963년 도입됐다. 나라살림 형편상 학교에 직업교육용 기자재를 확보해 주지 못한 정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실제로 학교도 교육목적으로 학생들을 앞다퉈 파견한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현장실습은 도입 취지와 달리 '저임금 중노동' 업종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2006년 정상화 방안 발표 =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교육·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제도변화에 대한 요구가 커진다. 현장실습이 늘어나면서 사고와 질병은 물론 성폭력 피해사례가 함께 증가하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실업위원회와 참여연대 등이 실태조사에 나선다. 이를 계기로 교육인적자원부가 2003년 5월 '고등학교 현장실습 운영 개선 방안'을 발표한다. 이는 조기취업 형태를 규제하고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업에 한해 학생을 파견해야 한다는 내용이 중심이었다.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2006년 5월 '전문계고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을 발표한다. 정상화 방안은 △기업 파견형, 직업체험, 교내 실습 등으로 다양화 △기업 파견형의 경우 3학년 2학기 수업의 2/3를 이수한 이후 실시하되 졸업 뒤 해당 기업에 취업이 보장된 경우로만 한정 △경제적 목적의 아르바이트형 현장실습 금지 등의 내용이 핵심이다. 정부가 발표한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은 완전하지 않았지만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어 교육계의 지지를 받았다.

고 이민호군 사고 사과하는 이석 문 제주교육감│29일 제주도교육청 기자실에서 이석문 제주교육감이 도내 특성화고 3학년 고 이민호 군이 현장실습 도중 숨진 사고에 대해 애도를 표명하고 사과하며 고개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하지만 친기업성향인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자 상황은 급변한다.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는 2008년 4월 '그동안 법적 근거도 없는 규제가 양산돼 왔다'며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을 포함한 29개 지침을 폐기했다. 정상화 방안이 폐기되자 현장실습 행태는 2006년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질 낮은 취업으로 이어져 = 문제는 부작용이 질낮은 취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정부가 지나치게 특성화고 취업률을 강조하면서 현장실습 조기파견, 마구잡이 현장실습, 저임금 단순 아르바이트성 현장실습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최근 교육부는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일반고 직업반 등 직업계고등학교 올해 졸업생 10만9051명중 50.6%(5만4908명·4월 1일 현재)가 취업했다고 밝혔다. 고졸 취업률은 2009년 16.7%로 최저점을 찍은 뒤 상승세를 보인다. 하지만 일자리 질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실제로 중소기업청 자료에 따르면 특성화고 졸업생 중 고용보험에 가입된 일자리에 취업한 비율은 2012년 79.6%에서 2015년 58.8%로 줄었다. 취업률은 올랐지만 고용안정성, 직무환경, 임금과 같은 일자리의 질은 하락한 것이다.

현재 양질의 일자리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고용보험과 같은 사회보험 가입 여부다. 통계청도 고용보험 가입을 좋은 일자리 지표 중 하나로 활용한다. 최근 고졸 취업률 상승은 아르바이트, 임시직 증가 등으로 인한 것이란 판단이 가능한 대목이다. 교육계에 따르면 이는 유지 취업률 조사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유지취업률 조사를 위해서는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한데 개인정보보호법 강화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교육부 설명이다. 하지만 교육계 입장은 다르다. 서울지역 한 특성화고 교사는 "의지만 있다면 통계청과 함께 관련법을 손질하면 가능한 일"이라면서 "지난 정부가 일자리 질보다는 보여주기식 취업률 상승에 혈안이 됐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눈높이 맞춘 실습제도 필요 = 또한 교육계는 현장실습은 실습답게, 취업은 취업답게 운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인력부족을 이유로 산업체가 졸업 전 학생, 심지어 5월에 학생을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특성화고 학생들의 학습권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조성신 전교조 실업교육위원장은 "최소한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서는 10~11월까지는 정상 수업을 하고 12월에 현장실습을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발 더 나아가 '사회진출학기제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는 "3학년 2학기를 '사회진출학기제'로 전환해 학생 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현 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 추진위원장은 "교과수업과 평가로 이뤄진 일반적인 학기 운영에서 탈피해 학생들이 졸업 후 직업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탄력적 교육과정을 도입해야 한다"면서 "획일적인 실습이나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요구에 맞게 선택해 참여하는 것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잇단 사고, 특성화고 실습현장에 무슨 일이' 연재기사]
① 안전대책 요구 '촛불'든 특성화고생 2017-11-27
② 취업률 경쟁, 학생을 사지로 내몰아 2017-11-29
③ 취업서 교육으로 무게중심 옮겨야 2017-11-30
④ 직업계고 '조기취업 현장실습' 전면 폐지 2017-12-01

장세풍 한남진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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