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과 다른 기업에까지 파견 … 일부 학교, 기업 부당행위 적당히 '모른척'

제주도에서 산업체 현장실습을 하던 이 모군(19) 사망에 이어 이번에는 경기도 안산시 산업체 현장에서도 한 학생이 회사 옥상에서 투신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학생들과 교육·시민단체들은 잇단 사고의 주요한 원인으로 취업률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전공과 다른 분야로 학생을 내보내고, 기업의 부당행위를 적당히 눈감아주는 시도교육청과 학교를 지목한다.

'숨진 학생을 위한 묵념'│이상현 특성화고등학생 권리연합회 추진위원장이 28일 오후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현장실습 5대 쟁점과 대안' 브리핑을 하기에 앞서 지난 9일 작업 끝에 다치고 숨진 현장실습생 이 모군을 추모하기 위해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특성화고 학생들과 멘토들로 구성된 '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는 2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행 현장실습제도 아래서 학생들의 산업체 파견이 의무와 강요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일부 학교는 학생들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특정분야 업체를 강요해 실습을 내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안전대책 없는 실습업체와 관리 감독에 무책임했던 교육 당국이 현장실습생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강조했다.

고인이 된 이군은 학교에서 자연생명과(원예)에 재학 중이었다. 하지만 실습나간 업체에서 그가 담당한 업무는 지게차 운전과 기계정비 등이었다. 면허증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만 지게차 운전이 학습의 연장선상에서 진행하는 현장실습에 적합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노동계에서는 이군이 기계정비 작업을 담당했다는 것은 상식 밖이라고 지적한다. 이군은 기계정비 작업 중 두 번이나 안전사고를 당했다.

지난 1월 극심한 업무스트레스로 자살한 특성화고 실습생 홍 모씨(여)의 경우 학교서 애완동물 분야를 전공했지만 현장실습은 이동통신 관련업체로 나갔다. 그는 10여년 경력자들도 힘들어 꺼린다는 콜센터 '해지방지' 부서에 배치됐다. 근로조건은 학교가 참여해 체결한 실습계약서에 사인을 한 지 1주일 만에 근로계약서를 통해 변경됐다. 근무시간은 길어지고 급여는 깎였다. 기본 업무뿐만 아니라 상품 판매 목표도 예외 없이 배분됐고 실적을 못 채우면 퇴근 시간 이후 회사에 남아 전화를 돌려야 했다. 계속된 실적 압박은 끝내 홍씨를 자살로 내몰았다.

또 다른 현장실습생 조 모씨(가명)는 업체 관계자로부터 근로계약서를 연필로 작성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실습환경은 업체와 학교가 당초 소개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잔업은 없다고 했는데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야근에 시달렸다. 교사에게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기업이 어려우면 잔업도 좀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답변을 들었다.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 기업도 = 뿐만 아니라 현장실습생들은 차별에도 노출돼 있다. 대부분 기업은 계약기간 동안 실습생들에게 최저임금만 지급한다. 일부 기업은 현장실습 전체가 '실습'기간임에도 그 기간 중에 또 '수습'기간을 두고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준다.

이수정 노무사(청소년노동인권 네트워크)는 한 토론회에서 "일부 기업은 졸업 시기나 2월 말까지 기간제 계약을 하고 연장여부는 그 즈음 판단하겠다며 학생들의 절대 복종을 강요한다"면서 "학생 입장에서는 내가 여기에서 버티지 못하면 앞으로 기회가 더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 나 뿐 아니라 후배에게 추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계약이 연장되지 않으면 취업처를 알아보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아야 할지 모르겠는 두려움, 무엇보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실패자,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 그저 순응하며 참고 견디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습과 수습 기간을 두는 이유는 기업 입장에서도 노동자 입장에서도 이 일에 적합한 지 여부를 가늠해 보는 시기"라면서 "그러나 이렇게 실습과 수습 기간을 두는 이유는 사라지고 실상은 단지 임금을 적게 줘도 되고 노동관계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무시해도 되는 기간으로만 작용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당한 기업서 뛰쳐나온 학생에 징계 = 실습 현장에서 학생들의 안전과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배경에는 학교에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노동시간, 임금 등이 당초 약속과 다르거나 부당한 일을 당한 실습생들은 당연히 학교로 복귀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학교는 복귀자에 대해 다시 현장실습을 나갈 때까지 징계하거나 벌을 세우고 있다. 부당한 일을 당한 학생들이 학교 복귀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게 한다. 지난 5월 노동절 행사에서 참석한 특성화고 졸업생 조 모씨(가명)씨는 "근로계약서 미작성, 사무실 내 흡연, 연월차 미지급, 성희롱 등을 학교에 말했다"면서 "하지만 학교는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고 증언했다. 학교 만류에도 학교로 돌아온 차씨에게 학교는 사실상 징계 성격인 귀교 교육을 시켰다. 그는 "귀교 교육을 진행하는 모든 선생님들은 우리들에게 '인내심이 부족하다, 끈기가 없다'라는 얘기만 하고, 인내심과 끈기를 기른다며 '깜지'를 쓰도록 했다"고 증언했다.

취업률 경쟁에 급급한 학교가 학생을 무권리 상태에 방치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은 결국 안전사고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교육부와 노동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현장실습생과 관련한 안전사고가 21건에 달했다. 이는 산재로 인정받아 처리가 완료된 건만 반영한 것이라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노동계 분석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부도 올 초부터 직업계고 학생들의 학습권과 노동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현장실습을 근로(취업)보다는 학습(취업준비) 중심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했다. 즉, 취업을 전제로 7월 또는 1학기부터 업체서 근무하는 형태가 아니라 교육과정의 일부로 한달 가량 실습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공청회를 통해 개선안이 공개되자 특성화고들은 '취업률이 낮아진다' '특성화고 설립 취지와 다르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교육부는 제도 도입 시기를 유예하고 시범사업에 들어갔다. 서울의 한 특성화고 교사는 "현장실습을 사실상 취업으로 보는 통계로 학교와 교육청이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인센티브를 받는 사이 아이들이 죽어나가고 있다"면서 "취업률 통계라는 것도 '일주일에 18시간 이상 일하고 있는지' 여부를 교사가 물어 전산 시스템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집계한 것이라 정규직인지 4대 보험은 가입됐는지 파악도 못하는 엉터리"라고 말했다.

['잇단 사고, 특성화고 실습현장에 무슨 일이' 연재기사]
① 안전대책 요구 '촛불'든 특성화고생 2017-11-27
② 취업률 경쟁, 학생을 사지로 내몰아 2017-11-29
③ 취업서 교육으로 무게중심 옮겨야 2017-11-30
④ 직업계고 '조기취업 현장실습' 전면 폐지 2017-12-01

장세풍 한남진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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