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자금 넣기 전 '무기한 비토권' 요구해야 … 거부하면 결국 숨은 의도는 '철수'

한국GM 군산공장의 폐쇄 결정과 GM의 철수 문제로 여론이 시끄럽지만 19일 만난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의외로 담담했다.

박 교수는 "GM이 당장 한국에서 철수할 것처럼 하지만 현실은 단계적으로 자산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며 "자산매각에 5~10년은 걸린다"고 말했다.

미GM이 철수를 결심했다면 한국GM의 청산가치를 극대화해야 하는데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철수 여론을 형성하는 것은 다분히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라는 게 박 교수의 해석이다.

미GM이 협상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문제로 궁지에 몰린 정부를 상대로 '철수' 카드를 꺼내들면서 정치적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박 교수는 "호주에서 홀덴(GM자회사로 편입된 호주 자동차회사)이 철수하는데 4년이 걸렸다"며 "호주는 10만대 정도의 물량을 생산하지만 한국GM은 50만대로, 5배 규모라서 철수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정부가 (지원 정책을 내놓는 등) 서두를 필요없이 미GM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를 협상과정에서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GM회장 만나면 안돼" = 박 교수는 정부와 산업은행의 중요한 협상카드를 '한국GM의 실사'로 보고 있다. 하지만 실사에 큰 기대를 걸지는 않는다.

한국GM의 높은 매출원가율의 원인으로 지목돼 온 '이전가격'의 경우 비시장적인 거래여서 비교할 곳이 없고 객관적 입증도 어렵다는 것이다. 높은 대출이자율은 자본잠식 상태인 한국GM의 상태를 고려하면 문제가 안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개발비와 본사관리비 등은 다른 다국적 기업과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박 교수는 "한국GM의 부실은 미GM본사의 물량 축소가 문제의 본질"이라며 "실사와 국세청의 세무조사 카드는 미GM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드러내게 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실업문제를 등에 업고 철수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것이 GM의 중요한 협상카드"라며 "마치 한국이 브라질 모델처럼 될 수 있다고 여론에 흘리는 것도 협상전략인데, 우리는 브라질과 전혀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브라질GM이 자국에서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은 18%까지 상승했다. 반면 한국GM의 국내 점유율은 7% 수준이다. 브라질GM처럼 공장을 유지하려면 시장점유율이 상승해야 하는데 그동안 수출위주로 운영돼 온 한국GM으로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박 교수는 "브라질 모델을 꺼낸 이면에는 대통령이 나서서 브라질처럼 GM회장을 만나라는 것인데, 정부의 지원을 바라는 GM의 술수"라며 "정부가 말려들어서는 안되고 대통령이 GM회장을 만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GM은 신차 배정을 앞두고 협상을 서두르는데, 4월 신차 배정이 끝나고 나면 협상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신차 배정 전에 한국의 지원을 이끌어내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익 극대화 하려는 GM 의도 알아야" = 박 교수는 "과연 한국GM이 미국GM에게 있어 어떤 전략적 가치가 있는지, 그걸 알아내고 드러내게 하는 게 협상의 핵심"이라며 "정부가 GM의 글로벌 전체 생산 네트워크에서 수요 공급이 어떻게 되고 제품과 생산지역이 어떻게 혼재돼 있는지 등의 정보를 확인하고 이해한 뒤, GM의 의도를 알 수 있는 협상조건을 내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GM의 전체 생산·판매 구조를 알아야 한국GM의 유지와 철수를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GM은 한국GM에 빌려준 3조원을 출자전환하고 향후 10년간 28억달러(약3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에는 2대주주로 지분비율(17%)에 해당하는, 약 5000억원의 신규투자를 요구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GM이 제시한 회생 계획안이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유상증자 방식으로 5000억원 가량을 투자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교수는 "산은이 신규자금을 넣으면 반드시 특정한 사업구조조정을 거부할 수 있는 비토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며 "GM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5년이나 10년 정도로 제한된 비토권만 주겠다고 하면 결국 5년이나 10년 후 철수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입장을 바꿔서 GM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뭘 원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고, 그럴 때 GM이 갖고 있는 강점과 약점이 뭔지를 차분히 파악해서 협상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GM이 철수하겠다면 좋은 이별해야" = 박 교수가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한국GM의 지원을 정부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다.

GM이 철수를 결정하면 단계적으로 5~10년 이후에 나가는데 그걸 마치 철수하지 않는 것처럼 꾸며서 한국정부의 지원을 받아내고, 정부는 GM을 몇 년 간 머무르게 한 것을 성과인양 정치적으로 선전하는 것을 말한다.

박 교수는 "실질적 이익은 GM이 챙기고 정치적 선전효과는 정부가 보는 식으로 국민을 호도해서는 안된다"며 "그런 결론은 국민만 패배자로 만드는 협상"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GM이 신차를 배정한다고 해도 라인을 증설하지 않는 한 의미 있는 결정이 아니다"며 "GM은 라인 증설 얘기를 절대 안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큰 의미를 두면서 협상을 한다는 것은 바보 아니면 사기"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GM이 철수 의도를 갖고 있다면 어떻게든 철수를 하기 때문에 바지를 잡고 늘어지거나 욕을 할 필요가 없다"며 "GM도 철수를 잘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좋은 이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GM은 철수를 위해 공장을 좋은 가격에 팔아야 하는데 국내외 자동차업체가 인수할 수밖에 없다"며 "다른 업체가 들어오면 실업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데 이런 여러 문제들을 잘 해결하기 위해 양측이 협조적인 관계를 갖자고 하면 된다"고 말했다.

폐쇄를 결정한 한국GM 군산공장에 대해서는 GM이 공장을 매각해야 하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조급해하면 GM이 배짱을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실업문제는 궁극적으로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기업구조조정이 안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일을 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라며 "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등으로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현재의 경제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실업대책은 단기대책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적시에 구조조정을 못해서 기업이 좀비화되면 경제가 어려울 때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며 "GM사태를 계기로 근본적인 경제개혁이 공론화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1988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1996년)를 받았다. 뉴욕주립대 경제학과 조교수와 예일대 경제학과 객원 조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재벌개혁위원장을 맡고 있다.

[관련기사]
[전문가들이 말하는 GM사태 해법은│①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브라질식 모델에 말려들면 안돼"

['전문가들이 말하는 GM사태 해법은' 연재기사]
①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철수 5~10년 걸려, 협상 서두를 필요없다" 2018-03-20
①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브라질식 모델에 말려들면 안돼" 2018-03-20
② 김용진 한국자동차산업학회장(서강대 교수)│ "GM본사에 경영실패 책임 따져 물어야" 2018-03-27
③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한국GM 대책TF위원장│ "신뢰할 수 있는 미래 계획, GM이 내놓아야" 2018-04-06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이경기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