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버젓이 '약정 CR' 요구 … "이익독과점 구조가 생태계 망가뜨려"

38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일 오후 2시. 수도권에 위치한 국내 자동차부품 3차 협력사 대표 사무실은 무더웠다.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2대만 돌아가고 있었다.

대표 C씨는 대부분 현장에 있기에 굳이 자신의 사무실에는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다. 에어컨이 가동되는 현장은 사무실보다 시원했다.

"내년에 사업을 접을까 생각하고 있다." C씨는 마주 앉자마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동차 1대는 2만개 이상 부품으로 구성돼 있다. 자동차부품산업은 생산 4위, 수출 9위를 차지하고 있다.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는 대부분 중소기업들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에 자동차가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 제공


그는 30년 넘도록 자동차부품 금형을 전문으로 해 왔다. 1998년 외환위기 때 부도를 내고 다시 시작한 사업이었기에 더욱 애정이 깊었다. 기계 2대로 시작해 꿈에 그리던 공장도 구입했다. 큰 매출은 아니어도 애지중지 사업을 키워왔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사업에 전망이 없어 빚 없을 때 접는 게 피해를 줄이는 거지."

C씨는 회사포기 이유로 '불투명한 사업 미래'를 꼽았다. 금형 납품단가도 여타 자동차부품과 마찬가지로 이익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는 "지금까지 견뎌왔지만 이제는 쉽지 않다"며 금형 납품구조 문제점을 지적했다.

C씨는 금형제작 계약을 맺으면 발주처는 작업상황에 따라 착수금 30%, 중도금 30%, 잔금 40%로 나눠준다. 문제는 제때 대금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착수금은 4~5개월짜리 어음이다. 중도금은 작업 진행 후 5개월 후에 준다. 잔금은 현장시험을 이유로 1년 6개월 정도 지나야 받을 수 있다. 협력사가 발주액 40% 정도를 자기 자금으로 투자하고, 일을 마무리한 후 1년 6개월이 지나 투자금을 회수하는 구조인 것이다.

특히 발주처는 금형 수정비를 인정하지 않는다. 금형 1개당 5~6회 수정작업을 거친다. 발주처 설계변경에 따른 수정도 협력사가 부담해야 한다.

"남품단가 인하는 기본이다. 여기에 발주대금도 제때 주지 않고, 일부는 협력사가 부담해야 한다. 제조업을 고집스레 해온 게 후회스럽다." C씨는 이마의 깊은 주름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자신을 책망했다.

◆설비투자 하청에 떠넘겨 = 경남지역에서 15년간 치공구(금속을 가공해 제품을 만들 때 사용되는 공구)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3차 협력사 대표 K씨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K씨는 치공구를 비롯해 자동차부품을 만도 모비스 등에 납품하고 있다. 완성차업계가 신규설비투자를 하지 않으면서 일감이 많이 줄었다.

기계설계 엔지니어 출신인 K씨는 기계설비 주문제작사업에 뛰어 들었다. 기존 사업으로는 직원 월급을 줄 수 없어서다. 다양한 설비에 대한 경험이 없어 일을 하면서 배웠다. 당연히 작업 속도는 느렸다. 계약 따내기는 더욱 어려웠다. 계약을 했더라도 재하청인 경우가 많아 이익은 매우 박하다.

요즘엔 주 무대인 경남을 벗어나 영업지역을 경기도로 넓혔다. 기름값이 나오지 않더라도 직원 월급을 주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다.

직원을 줄이지 않기 위해 뛰는 그를 허탈하게 만드는 건 '대기업 갑질'이다. 그는 "대기업에서 개발업무를 발주하면서 2·3차 협력사에 설비투자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발주금액에 설비투자 비용을 넣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대기업→1차→2차→3차로 설비투자 부담이 떠넘겨지고 있는 것이다. K씨는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달하는 설비투자를 감당할 협력사는 극히 드물다"며 "전형적인 갑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 남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버티고 있는데 걱정이다. 이번 에 무너지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사업전망을 묻자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줄어들었다.

대기업들은 '약정 CR' 방식으로 부당하게 납품단가를 인하하고 있다. '약정 CR'은 특정부품에 대해 최저가 경쟁입찰을 시키고 하청업체와 계약한 뒤에도 일정 기간에 걸쳐 단가를 후려치는 약정 조건을 의미한다.

실제 경남지역 완성차 3차 협력사는 '연 3%씩 4년간 납품단가 인하' 조건이 담긴 납품계약을 맺었다. 이 조건을 뺀다면 계약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었다.

최근에는 원청에서 '하드 CR'(강제로 진행하는 남품단가 인하 행사)도 단행했다. 납품단가 인하 규모는 제품가의 5%였다

A씨는 "연 4%에 이어 추가로 5%의 납품단가를 인하한 것"이라며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비난했다.

◆대기업 이익 독과점 없애야 = 협력사 대표들은 하나같이 이러한 '대기업 이익독과점 구조'를 자동차부품산업의 핵심 문제로 꼽았다.

K씨는 "대기업의 공생구호는 거짓말"이라며 "대기업만 살고 협력사는 저마진으로 유지되는 구조는 자동차산업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C씨도 "협력사 대표들은 요즘 출구전략만 고민하고 있다"며 "3차 4차 협력사가 무너지면 2차와 1차도 끝내는 무너진다"고 우려했다.

실제 자동차부품산업은 자동차산업의 후방산업으로 완성차 경쟁력을 좌우한다. 부품품질에 따라 완성차 성능을 좌우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부품공급과 품질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자동차 1대는 2만개 이상 부품으로 구성돼 있다. 완성차 크기 및 기능에 따라 부품이 다양하게 차별화돼 있다.

따라서 자동차부품산업은 생산 4위, 수출 9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52시간 근로제도 3차 협력사를 옥죄는 요인이다.

협력사 대표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지 않지만 최저임금 혜택이 외국인 근로자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C씨는 "예전에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했는데 실제 비용이 국내 근로자보다 더 많이 들어가 지금은 고용하지 않고 있다"며 "협력사 상당수는 최저임금 대상이 외국인 근로자여서 그들만 혜택을 보게 돼 국내 근로자들도 인상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A씨도 "납기일을 맞추다보면 잔업이 필요할 때가 많아 현재 법대로라면 사업하기가 매우 어렵다"면서 "탄력근로 기간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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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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