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적절' 72%인데 반성·혁신 없어

박근혜정권 출신들이 여전히 당 주류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을 결정한 이후 '자유한국당(당시 새누리당)의 시계'는 멈춰있다. '탄핵 대통령'을 배출했지만 그 책임을 지고 반성하거나 새롭게 태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박근혜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냈거나 공천 받은 이들이 주류로 포진해있다. '박근혜 탄핵'에 대한 찬성여론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한국당이 탄핵 이후 3년이 흐른 지금까지 '탄핵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다.

2016년 12월 9일 새누리당 상당수 의원들의 찬성표와 함께 박근혜 탄핵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헌재는 이듬해 3월 10일 탄핵을 결정했다. '대통령 박근혜'를 배출한 새누리당으로선 재앙과 같은 상황이었다.

새누리당 일부 의원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잔재인 새누리당으로는 재기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었다. 비박 30명이 나와 바른정당을 만들었다. 하지만 대선에서 참패하고 세차례에 걸쳐 의원들이 복당하면서 9명으로 줄었고, 결국 국민의당과 합쳤다.

이 사이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비주류로 분류되던 홍준표체제로 개편했지만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 연패하면서 거의 목숨만 부지하는 참혹한 나날을 보내야했다. 홍준표체제와 김병준 비대위체제에서 나름대로 '박근혜 색깔'을 지우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한국당은 여전히 '박근혜의 그늘'에 머물고 있다. 당내 친박에 부딪혀 탄핵에 대한 분명한 입장정리를 못했다. 박근혜의 힘으로 국회에 입성한 이들이 여전히 주류를 차지하고 있고 올해 2월 전당대회에서는 친박이 지원한 황교안체제가 당선되기도 했다. 황 대표는 박근혜정권 총리출신이다. 이 가운데 탄핵을 부정하는 우리공화당도 당밖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당 분위기와 달리 여론은 여전히 '박근혜 탄핵'에 대해 적절했다는 판단이다. 내일신문-서강대 정치연구소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가'라고 묻자 '적절했다'는 답이 72.1%에 달했다. '부적절했다'는 24.9%에 그쳤다. 특히 '적절했다'는 답은 20대(88.7%) 30대(88.3%) 40대(79.2%) 중도층(74.0%)에서 높게 나왔다.

이번 조사에서 '태극기집회 참가자 등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무효를 주장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동의한다'는 답은 26.0%에 그친 반면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은 70.1%에 달했다.

한국갤럽 조사(10월 1∼2, 1004명 조사,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한국당 지지율은 24%다. 민주당(37%)에 뒤진다. 탄핵 직후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3년째 '마의 30%'를 못 넘기고 있다. 압도적 여론이 여전히 '탄핵은 적절했다'고 보는 현실에서 '탄핵 정당' 이미지에 갇혀있는 한국당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더욱이 보수는 한국당을 비롯 바른미래당에 머물고 있는 바른정당계와 공화당으로 분열돼있다. 가뜩이나 위축된 보수층조차 분열될 처지인 것이다. 보수가 내년 총선에서도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총선까지 패한다면 한국당은 현대정치사에서 전례가 드문 4연패(총선→대선→지방선거→총선)를 하게 된다.

당 안팎에선 한국당이 '탄핵정당' 이미지를 어떻게든 종식시키고 보수통합을 성사시키기 위한 고육책을 쏟아낸다. 보수통합을 추진 중인 박형준 전 의원은 탄핵에 대한 평가 자체를 "유예하자"고 주장한다. 한국당내 친박과 비박, 바른정당계, 공화당 사이에 탄핵에 대한 입장 차가 존재하니, 탄핵 평가를 뒤로 넘기고 일단 통합부터 하자는 논리다.

하지만 이같은 고육책이 보수통합을 이끌어낼지는 미지수다. 친박과 비박, 바른정당계, 공화당은 여전히 탄핵을 놓고 대치한다. 탄핵논의 유예 주장이 먹힐 틈이 없어보인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비박 김무성 의원을 겨냥해 "당신은 앞으로 천년 이상 박근혜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며 "박근혜가 감옥에 가 있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공화당 조원진 대표는 김무성 유승민 권성동 김성태 의원을 '정리'하면 한국당과 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바른정당계 유승민 의원은 9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한국당과의 통합 조건으로 '탄핵 인정'을 제시했다. 유 의원은 "한국당이 탄핵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 입장을 분명히 해야만 보수가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보수통합 논의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유승민·안철수 간 연대는 진척이 없다. 황교안 대표는 '보수통합'이란 화두는 던졌지만 성사를 위한 '특단의 카드'를 가지고 있는지 오리무중이다.

한국당이 탄핵 논란을 어떻게든 봉합하고, 문재인정부에 맞서기 위해 힘을 모야야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보수통합을 성사시킨다고해도 이런 통합보수세력에게 '탄핵에 찬성하는 압도적 민심'이 마음을 열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진단이다. 한국당이 보수통합과 함께 탄핵에 대한 책임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강도 높은 혁신과 물갈이공천을 통해 3년 전 멈춰선 시계를 다시 돌려야 '부활'할 수 있다는 주문이 여전히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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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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