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내일신문과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는 탄핵촛불집회에 지속적 관심을 가지고 공동으로 조사를 계속해왔다.

이전 조사와 동일한 설문 문항을 반복 조사하여 국민의 촛불에 대한 의미와 기대의 변화를 추적하고 심도 있게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설문조사는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한 동일문항 조사뿐 아니라 탄핵촛불집회 광화문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추적조사를 3회 실시하여 패널조사 분석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탄핵촛불집회가 한국정치사에 중요한 사건인 만큼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축적하고 보도하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번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탄핵촛불집회 3년이 된 시점에서 국민 네 명 중 세 명꼴로(72.1%) 국민의 힘으로 이루어낸 대통령 탄핵이 적절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광화문 탄핵집회 참여자 패널 응답자들 중 94.3%는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탄핵촛불은 민주주의 원칙을 위배한 정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국민의 의지와 능력을 발휘한 역사적 사건이며 그 현장에서 힘을 보탠 사람들은 자신의 참여를 뿌듯하게 여기고 있다.

필자가 탄핵촛불집회 관련 설문조사를 사용한 논문을 해외에서 발표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질문은 평화로운 집회유지에 관한 것이다. 매 주말에 열린 대규모 시민집회가 어떻게 폭력사태 없이 진행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궁금해 하는 외국학자들이 상당수다.

필자는 절대 다수의 국민이 민주주의 가치를 경시하고 권력을 남용한 대통령을 탄핵하기를 원했으며, 촛불집회가 어떠한 정치세력에도 이용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추가로 질서를 외치며 과격해질 수 있는 군중심리를 경계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자랑했다.

3년 전 당시 촛불집회를 회상해보자. 집회참여자들의 탄핵요구는 결연했지만 그 표현행동은 민주주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았다. 촛불집회는 대통령 스스로의 하야를 요구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자 국회가 탄핵을 결의할 때까지 지속적인 집회개최를 통해 정치권을 압박했다.

광화문 촛불참여자들 중 86%는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통과에 촛불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했다(2016년 조사).

그리고 대다수는 촛불집회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믿고 있다(84.7%, 2017년 조사). 국민의 목소리를 담은 촛불집회가 한국정치를 발전시켰다는 것을 믿고 있으며, 민주주의 정치의 장점인 자기교정 능력이 발휘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중요한 사실은 탄핵이후 곧바로 이어진 대통령 선거에 촛불은 동원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탄핵촛불은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하는 국민의 의사와 능력을 보여주었을 뿐 선거의 정치경쟁에 이용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탄핵촛불집회 참여자들이 특정 이념이나 정파성에 치우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보수정권에 대한 탄핵집회였지만 장년이상의 연령층과 보수성향의 시민들도 상당했다. 따라서 국민운동으로서의 촛불집회는 정치인들에게 단상을 내어준 적이 없었다.

촛불집회는 대통령 탄핵을 관철시키는데 그친 것이 아니었다. 적폐청산이라는 당면한 과제와 동시에 새로운 정치라는 정치프레임의 변화를 요구했다. 그리고 정치변화가 사회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국민의 힘으로 비민주적인 정치권력을 끌어 내렸기 때문에 차기 정부는 민주적이고 통합적인 정부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촛불 후 현실은 국민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4.19 민주혁명부터 탄핵촛불집회까지에서 시민들은 국가권력의 불의에 저항하고 권력교체의 계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냈다. 새로운 가치의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에게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정치영역의 몫이다.

유감스럽게도 촛불이후 정치는 여당과 야당이 바뀌었을 뿐 기존 정치세력에 맞서거나 경계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은 찾아볼 수 없다. 촛불혁명의 소명이라는 명분 아래 정부와 여당은 국민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듯 권력을 사용하고 보수야당은 탄핵의 책임에서 벗어나려 골몰하면서 보수세력 규합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과거정치가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제도적으로 탄핵 이후에도 국회구성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6년 4월에 구성된 20대 국회가 현재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촛불이 요구하는 정치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20대 총선에서 123석을 얻어 전체의석의 41%를 차지한 새누리당은 탄핵정국에서 간신히 10% 초반대의 국민지지를 유지했고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꾼 현재 20% 초반 대의 지지를 유지하고 있지만 국회에서 37%의 의석을 차지하고 제 1야당의 지위를 변함 없이 누리고 있다.

(새누리당의 후신인) 한국당은 비록 의석이 총선 당시에 비해 110석으로 줄기는 했지만 제도적으로 아직까지 탄핵에 책임을 진 바가 없는 셈이다. 대선을 통해 정권교체는 이루었지만 국회구성의 변화가 없는 상태는 정당들의 정치갈등은 더욱 심화시켰다. 적폐청산을 자임한 대통령과 여당인 민주당은 목표달성을 위해 이견 없는 내부결속을 강조하고 있다.

여당의 입장에서는 야당인 한국당은 개혁의 대상일 따름이다. 보수의 위기와 현 정부의 실정을 강조하는 한국당은 정부여당에 대한 강한 거부가 지지 세력을 결집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으로 인식하고 있다. 타협이 실종된 갈등의 증폭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에서 파행적 충돌을 막고자 하는 의도로 도입되었지만 작금에는 또 다른 형태의 국회파행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국회 내 위법행위로 인해 사법적 판단에 정치생명이 걸린 국회의원들이 수십명에 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갈등조절에 실패한 국회는 결국 국민을 거리로 불러내고 말았다. 그러나 이번 촛불은 이전 촛불과는 결이 다르다.

최근 한 달 사이에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을 두고 찬성과 반대 측의 대규모 시민집회는 촛불집회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

양 쪽 촛불집회 모두에서는 일방적 주장과 적대적 진영논리로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대통령은 이를 국론분열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다양한 의견의 표출이라고 평가했지만 집회현장에서 외치는 구호와 논리를 직접 목도한다면 그 심각성을 다르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촛불집회에서 하나의 목소리를 냈던 국민을 편을 가르면서 다시금 촛불을 들게 한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건 정치권의 책임이다.

최근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낮아지는 것은 조국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여론이 미친 영향도 있지만 대통령이 갈등이 계속 심화되는 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2019년 내일신문 정초조사에서 무당파 비율이 27.9%였는데 이번 9월말 기획조사에서는 36.1%로 증가하였다.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무당파의 증가를 가져온 것이다. 어느 진영이든 촛불의 정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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