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보장 기본권 제약하는 개정안도 발의

소음피해 규제 등 전체 국민 위한 대안 필요

민주화 이후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헌법과 법률 그리고 사법기관은 집회·시위 자유를 확대해 왔다. 하지만 최근 국회에 발의된 집시법 개정안 일부는 특정 지역을 집회 금지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특정 장소의 집회를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과잉금지원칙에 반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1987년 6월 민주화 이후 집시법은 헌법불합치 결정과 이에 따른 개정 등으로 집회의 자유를 확대했다. 1989년 개정으로 국회의사당과 각급 법원, 외교기관, 대통령 관저와 국회의장·대법원장·국무총리 공관, 서울시청·도청·역 등의 200m 이내에서 집회를 금지해온 규정이 '100m 이내'로 축소됐다.

2003년에는 헌재가 외교기관 100m 이내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했다. 당시 헌재는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시간, 장소, 방법과 목적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보장한다"고 명시했다. 또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거셌던 2009년 이명박정부 초기에 헌재는 일몰 후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에 위헌 결정을 했다.

특히 2018년 헌재는 국회의사당·국무총리 공관·각급 법원 인근에 대한 집회금지 부분에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국회의사당과 각급 법원 등의 100m 이내 장소에서 옥외집회나 시위가 가능해졌다.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헌재가 그동안에 넓게 인정해줬고, 그것은 대의민주주의에 있어서 표현의 자유 특히 정치적 표현의 자유야 말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의미"라면서 "국민들이 국회, 대통령 집무실, 정부 기관 등 앞에서 집회나 시위를 하는 것은 폭넓게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 인근에서는 5월부터 보수단체와 유튜버들이(사진 위), 서울 서초동 윤석열 대통령 사저 앞에서 지난 14일부터 진보성향 유튜버들이 맞불 격으로 확성기와 스피커를 동원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확성기 등을 이용한 이들의 시위로 주민들은 극심한 소음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소음규제 허점 이용 = 문제는 최근 집회·시위를 권력을 견제하고 대항하는 정치적 표현을 위한 수단보다는 정치·경제적 입장이 다른 상대방에 대한 괴롭힘이나 보복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증가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전·현직 대통령 사저 앞 시위도 의사 표현 수단이 아니라 욕설과 고성이 오고가는 진영 대결로 변질됐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인근 주민의 몫이다. 즉, 집회·시위의 자유와 주민들의 사생활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이라는 또 다른 헌법적 가치가 충돌하는 구도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학계와 법조계를 중심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는 보장하면서 주민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논의의 중심은 헌법적 가치의 충돌과 그 중심에 있는 소음과 표현수위 문제를 어떻게 조율할 것이냐이다. 선진국 대부분은 집회·시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되 주민과 소속기관의 고유 업무 등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소음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노 변호사는 "우리나라 집시법은 집회 허가를 해주느냐, 해주지 않느냐에만 집중하고 소음기준 등 주민 피해가 예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면서 "미국 등 선진국들은 표현의 자유는 폭넓게 열어 놓은 반면 그 수단과 방법은 철저하게 규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집시법에도 소음을 규제하는 내용이 있다. 집시법은 10분간 발생한 소음의 평균값인 '등가소음도'와 측정시간 내 발생한 가장 높은 소음인 '최고소음도'를 측정해 규제한다. 하지만 등가소음도의 경우 평균을 측정하기 때문에 일부 시위대는 소음의 크기나 시간을 조절해 규제를 피하고 있다. 5분간 확성기나 스피커를 사용해 구호를 외치다 나머지 5분간 확성기 볼륨을 줄여 평균 소음도를 낮추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최고소음도를 도입했지만 주민 피해를 줄이는 데는 역부족이다. 최고소음도는 10분간 발생한 소음 중 가장 높은 소음을 측정해, 동일 집회에서 최고소음도가 1시간 내 3회 이상 기준을 초과한 경우 제재하는 방식이다. 집회 주최 측이 1시간 내 2번만 기준을 초과하는 식으로 집회를 진행한다면 경찰이 해당 집회를 제재할 수 없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소음 기준의 허점을 보완하는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법망을 피해갈 방법이 많고 이로 인해 인근 주민들의 피해가 누적돼 권리가 침해당한다는 것이다.

헌법학자인 김대환 서울시립대 로스쿨 교수는 "기본권 간 충돌을 조정해 특정인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위한 대안을 찾는 것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 몫"이라고 말했다.

◆상호관용의 집회 문화도 필요 =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12월 31일 발표한 '집회 소음 규제의 현황과 쟁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연방 차원의 집회 관련 법규를 두지 않고 주·시 등의 형법, 행정법규, 행정규칙 및 조례를 통해 집회 소음을 규제한다. 뉴욕 시의 경우 확성기를 사용하려면 집회 신고와 별도로 소음허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수업 중인 학교, 예배 중인 교회, 재판 중인 법원, 병원 등의 기관 500피트(152.4m) 이내와 주중 오후 10시~오전 9시, 주말·휴일 오후 8시~오전 10시 사이에는 확성기 사용 등 소음을 발생할 수 있는 행위를 허가하지 않는다.

독일은 '연방환경오염보호법'을 통해 집회 소음을 규제한다. 독일의 소음 허용 기준은 공업·상업·도시·마을·일반주거·순수주거·요양지역 등 7개로 세분화됐다.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적용된다.

프랑스는 자치단체와 자치경찰법규를 통해 확성기 등의 사용을 규제한다. 특히 집회소음과 배경소음을 각각 측정해 그 차이가 3~5dB을 넘지 않도록 제재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집회 소음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의) 해소를 위해 국가, 집회인, 주민 어느 일방의 시각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며 "집회와 환경권에 대한 국민 인식, 기술 환경 등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집회의 자유와 환경권의 적절한 조화를 위한 합리적 제도 설계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연간 수만 건이 개최되는 집회의 소음 문제를 법적 강제만으로 해결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집회인은 주거 환경을 배려하고 주거인 등은 집회의 의의를 이해하는 '상호 관용의 집회문화' 정착 노력 또한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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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박광철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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