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상주복숭아'로 일본 아성 허물고 불모지 개척

우리나라 농촌·농업은 안팎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밖으로는 우루과이라운드 타결과 WTO체제 도래, FTA 체결 등에 따른 농산물시장 개방 압박이 안으로는 고령화와 이농현상 등에 따른 농촌해체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들이다. 하지만 농업은 포기할 수 없는 생명산업이다. 이 때문에 농업에서 희망을 찾기 위한 새로운 시도들이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경북도 역시 마찬가지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나가는 경북도의 선진 농업현장을 찾아 미래 농촌의 희망을 확인한다.

 

 

 

 

쌀과 배로 유명한 경북 상주시 사벌면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 강창구(73·사진) 한국복숭아수출연합회장. 그는 직장에서 정년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귀농인이다. 대구MBC에서 31년 동안 기자로 활동하다 고향 상주로 귀농했다. 1999년 정년퇴직 후 곧바로 도시 생활을 정리했다. 대학에서 폼(?) 나게 강의를 하며 교수행세도 몇 해 할 수 있었지만 미련을 두지 않았다. 경력 30년이 넘는 베테랑 기자에서 초보 농부로 변신해 '인생 2모작'을 시작한 것이다. 퇴직금 3억원을 밑천 삼았다.
 


<사진:경북 상주시 복숭아 수출단지가 경상북도 원예 전문 생산단지로 지정되면 상주복숭아 수출에 활력소가 될 전망이다. 수출길에 오르기 전에 선별과정을 거치는 상주 복숭아. 사진 상주시청 제공>

30년 베테랑 기자에서 초보 농부로 =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선산이 있는 사벌면 용담리에 터를 잡았다. 처음부터 유망과수작물로 복숭아를 택했다. 처음에는 과욕을 부렸다. 선산의 임야를 개간하고 문중 밭을 모으는 등 2만5000평에 복숭아나무를 심었다. 복숭아 재배에 관한 일본어 번역서와 전문서적 등을 독학했다. 농협이나 지자체가 실시하는 교육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러나 농사는 이론처럼 되지 않았다. 탁상지식이 농사 현장에 바로 적용될 리 만무했다. 변화무쌍한 농사환경을 만만하게 본 탓이기도 했고 일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결국 재배면적을 6500평으로 줄였다. 책에서 배우지 못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이웃 농민들을 의지했다. 현장에서 일이 막히면 수첩을 들고 농민들을 찾아다녔다. 3년을 비비고 다니니 농민들도 지식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강 회장은 "머리만 믿고 농사를 지으려 하면 대부분 실패한다"며 "똑똑한 채 하며 현장에서 부딪혀 배우려는 자세가 없으면 평생 터득하기 힘든 일이 바로 농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묘목이 자라 본격적인 생산을 할 수 있는 5~6년동안 특별한 소득 없이 투자를 하면서 기본기를 익혔다. 농촌생활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식자재의 대부분을 자급자족하다보니 생활비가 1년에 1000만원으로 충분했다. 농사시작 7년째인 1998년부터 복숭아나무들이 그동안의 노력에 보답을 하기 시작했다. 첫해 수확으로 800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5개 달아 10개 값 받자" = 그는 봉숭아농사를 결심하면서 철저하게 '고품질, 소량, 다품종' 생산이라는 원칙을 고수했다. 복숭아는 통상 7월초에서 10월중순까지 생산되는데 강 회장은 조생과 중생, 만생으로 복숭아 종류를 나눠 심어 출하시기를 4개월 동안 끊이지 않도록 했다. 품종별로 30주에서 50주씩 심어 강 회장 부부 등 3명의 노동력으로도 감당할 수 있었다. 출하시기 조절로 홍수출하 등에 따른 가격폭락도 피할 수 있었다.

고품질 생산을 위해 과수열매도 적게 달았다. 그는 '5개 수확해 10개 값을 받는다'는 전략을 고집했다. 노동력이 적게 들고, 관리비용도 낮아지고, 품질도 좋아지면 농가수입이 늘어난다는 계산이다. 복숭아 생산이 정상궤도에 오르자 늦깎이 농부 강 회장의 잠재능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30여년 기자생활에서 쌓은 기획력과 판단력, 정보취합력, 대외섭외력 등이 농사에 활용됐다.

당시 그는 우수한 품질의 복숭아를 생산하고도 충북과 경기도 등 중부지역 복숭아의 명성에 밀려 제값을 받지 못했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수출시장 개척이다. 그는 2009년 사단법인 한국복숭아수출연합회를 만들었고, 생산자단체인 복숭아 수출 작목반도 조직했다. 이듬해인 2010년에는 상주지역 복숭아 생산농가 50호(45㏊)가 참여하는 수출전문 영농법인을 결성해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 해 8월부터 수출을 시작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도움도 컸다. 첫해 10톤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당시 홍콩 등 동남아 시장은 일본 복숭아가 장악하고 있었다. 일단 가격으로 치고 들어갔다. 일본 복숭아는 2개에 15달러였다. 강 회장은 두 개 가격을 8달러로 책정했다.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동남아지역에서는 주로 상류층 중국계 아시안들이 좋아하는데 일본산 복숭아의 경우, 향이 없지만 한국산은 향기가 좋아 중국계의 호감을 얻게 됐습니다. 특히 신선도 유지를 위해 약품처리를 하는 일본산의 약점을 집중 설명하면서 한국산은 85%정도 익었을 때 수확해 일체의 약품처리 없이 자연상태로 수출한다는 점도 이해시켜 일본산과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위기를 느낀 일본이 가격을 2개에 10달러까지 내렸지만 이미 역부족이었다. 소비자들은 한국산이 다 팔려야 일본산에 눈길을 줬다. 현지 해외시장에서는 4~5일 정도면 팔려야 하는데 소비자들이 한국산이 팔린 후 일본산을 찾을 때는 이미 물러 터져 상품성이 떨어져 폐기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렇게 일본의 아성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수출 두해째인 2011년에 수출량이 20톤으로 늘었다.

그러나 개별농가에서 선별해 출하하다보니 품질의 균일성이 떨어지고 이른바 '속박이'로 바이어들의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는 상주시의 지원을 받아 집하·선별장과 저온창고 등을 건립, 공동선별로 상품성을 높였다. 지난해에는 일본산 복숭아와 대등한 위치에 오르면서 수출실적도 28톤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특히 방사능유출사고 등 일본의 악재로 상주 복숭아가 동남아 시장을 제패할 정도였다. 수출국가도 늘어났다. 홍콩을 시작으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도 수출길을 열었다. 올해에는 인도와 태국 등에도 수출했다.

올해는 출혈수출을 했다. 지난겨울 동해 피해로 전국적으로 복숭아 생산량이 급감해 국내 가격이 폭등했다. 수출물량을 맞출 수가 없었다. 계획은 60톤을 수출하는 것이었지만 40톤을 수출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가격도 10㎏ 한 상자(13~18개) 국내가격이 4만원이 넘었지만 2만5000원에 수출했다. 수출물량을 맞추기 힘들어 자신이 생산한 복숭아의 90%를 수출물량으로 내놨다. 어렵게 개척한 수출시장을 잃지 않으려는 자구책이었다.

복숭아 원예수출단지 지정 = 자발적인 노력으로 획기적인 수출성과를 올렸지만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자 상주 복숭아 재배농가들의 불만이 누적됐다. 강 회장은 "복숭아는 수확 후 10일 이내에 판매하지 못하면 폐기해야 할 정도로 보호력이 약해 사과나 배보다 수출이 훨씬 어렵다"며 "상주 농가들이 손해를 보면서도 매년 2배 이상 수출을 신장시킨 공로를 인정해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동료 농민들을 달래며 수출불모지를 개척해왔지만 계속 이렇게 갈 수는 없다"며 "복숭아 수출에도 다른 수출 분야처럼 정부가 보조금 등을 지원해 생산비 일부를 지원해야 안정적인 수출시장 유지와 개척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추진한 것이 바로 수출단지 지정. 그는 지난 6월 지역의 38개 농가(41.7㏊)와 힘을 모아 경북도에 복숭아 전문 원예수출단지 지정을 신청했고, 현재 중앙정부 심사를 받고 있다.

강 회장은 "사과나 배 수출에 복숭아가 구색 맞추기 용으로 활용된 측면도 있지만 수년동안 농민들이 힘을 모아 수출 불모지인 동남아 시장에서 일본산을 누르고 한국 복숭아의 위상을 높인 것은 통쾌한 일"이라고 말했다. 강 회장은 수출시장 개척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1일 열린 농업인의날 기념행사에서 '2013년 농어업인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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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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