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 의료관리학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제때 치료 받지 못한 중증 응급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또 벌어졌다. 지난 3월 대구에서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환자가 2시간 넘게 구급차를 타고 떠돌다가 사망했다. 이처럼 중증 응급환자가 제대로 진료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일은 수십년째 되풀이되고 있다. 2016년 트럭에 치인 2살 민건이는 전북대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11시간 동안 수술을 받지 못하다가 사망했다. 전남대병원을 비롯한 14개 병원이 연락을 받았지만 어느 병원도 민건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서울아산병원에서 뇌출혈을 일으킨 30대 간호사가 수술을 받지 못하고 다른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이처럼 처음 방문한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중증 응급환자의 수는 연간 3만명이 넘는다. 급성심근경색과 뇌졸중, 중증외상 환자 8명 중 1명이 다른 병원으로 전원되고 있다.

우리나라 응급환자수 외국에 비해 적어

우리 정부는 지난 20여년 동안 별도로 기금을 만들고 계획을 세워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왔지만 이 같은 문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2003년 규모가 대폭 확대된 응급의료기금을 기반으로 정부는 매년 2000억원이 넘는 돈을 응급의료체계 운영에 투자하고 있다. 응급의료는 우리나라 의료분야에서 별도의 기금을 조정해 지속적으로 재정을 투입하는 유일한 분야다.

이처럼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재정 투입에도 불구하고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병원들이 중증 응급환자의 진료를 거부하는 대한민국 응급의료체계의 고질병은 왜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것일까?

의사들은 병원에 응급환자가 너무 많아서 중증 응급환자를 제때에 치료하기 어렵다고 한다. 외국처럼 진짜 응급환자만 병원에 오도록 해야 한다고도 하고, 큰 병원 응급실에 몰리는 환자들에게 책임을 돌리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의사들 말처럼 우리나라 응급실은 환자가 너무 많아서 중증 응급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응급환자수는 외국에 비해 적다. 인구 당 연간 응급환자수는 미국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응급환자수를 고려하면 미국에 비해 응급환자를 보는 병원의 수도 약 2배 더 많다. 다른 나라에 비해 경증 응급환자가 많다고 할 수도 없다. 응급환자의 중증도를 반영하는 응급환자의 입원율은 우리나라가 미국에 비해 2배가량 높다. 우리나라에서는 응급환자 4명 중 1명이 입원하는 반면 미국은 8명 중 1명이 입원한다.

큰 병원에 응급환자가 너무 많이 몰리는 것도 아니다. 미국 응급실 3개 중 2개는 연간 응급환자를 5만명 이상 진료하는 반면 우리나라 응급실 중 가장 규모가 큰 권역응급센터의 연평균 응급환자 수는 약 4만명에 불과하다. 미국에 비해 응급환자는 적고, 병원은 많고, 큰 병원에 환자가 많이 몰리는 것도 아닌데 왜 중증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거리를 떠도는 것일까?

응급실 의료인력 부족이 가장 큰 원인

첫째 응급실에 의료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응급실의 응급환자 당 응급실 의사 인력은 미국의 40% 수준에 불과하다. 의사와 간호사가 부족하니 응급환자 진료가 지연되고, 응급환자가 응급실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니 응급실에 환자가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응급환자가 많아서가 아니라 의료 인력이 부족해 응급실의 응급환자 수용능력이 떨어지고, 응급환자를 빨리 진단하고 처치해서 입원·수술을 하거나 빨리 치료해서 집으로 돌려보내지 못하니 응급실이 혼잡한 것이다.

둘째, 병원이 응급환자에 입원할 병실과 수술할 의사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중증 응급환자가 처음 간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전원되는 이유는 진료할 의사가 없거나 입원할 병실과 중환자실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이유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듣기 좋은 변명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병상수 1000개인 대학병원에서는 매일 약 140명의 환자가 퇴원한다. 이 병원이 하루 평균 100명의 응급환자를 진료한다면 매일 응급실에서 입원하는 환자는 23명에 불과하다. 매일 환자가 퇴원해서 비는 병상 6개 중 1개를 응급환자에게 배정하면 병상이 없다는 이유로 중증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중환자실 병상도 마찬가지다. 대학병원은 평균 약 70개의 중환자 병상을 보유하고 있는데 매일 약 20~30명의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퇴원한다. 이 병원에서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입원하는 환자는 하루 2~3명에 불과하다. 매일 비는 중환자 병상의 10개 중 1개만 응급환자에게 배정하면 중환자실이 없다는 이유로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도 없을 것이다.

의사가 없어서 중증 응급환자를 볼 수 없다는 말도 불가피한 이유라고 하기 어렵다. 미국 병원은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가 중증 응급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중에 다른 중증 응급환자가 오면 외래나 병동에 있는 의사가 응급실로 달려 내려오도록 한다. 비응급환자의 진료는 잠깐 미뤄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응급환자의 진료가 지연되면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응급실을 담당하는 의사가 볼 수 있는 만큼만 응급환자를 본다. 중증 응급환자가 와도 응급실 담당 의사가 환자를 더 볼 여력이 없으면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응급환자의 진료를 거부한다. 1000병상 규모의 대학병원에는 대략 300~400명의 전문의가 근무한다. 이중 응급실을 전담하는 의사는 10명도 되지 않는다.

셋째 응급환자 진료거부가 관행처럼 되어 있어 이를 엄격하게 처벌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응급환자의 진료를 정당한 이유없이 거부하면 병원이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응급환자를 볼 수 없는 정당한 이유란 갑자기 응급환자가 몰려 더 이상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병원이 자의적으로 환자를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상태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에 정한 기준을 충족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 법에 정해진 수 시간 내에 다시 응급환자를 받을 수 있는 상태로 병원을 정상화시켜야 하는 것도 병원의 의무다.

이를 위해서는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료 인력뿐만 아니라 병원이 가진 모든 의료 인력을 동원해 응급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응급실 의료진이 볼 수 있는 수보다 많은 응급환자를 진료하고 있으면 관행적으로 중증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를 거부한다.

비응급환자 먼저 챙기는 관행 고쳐야

흔히 의사들은 응급환자 진료수가(진료비 가격)가 낮아서 응급환자를 적극적으로 진료하기 어렵다고 한다.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인력을 더 배치하기 어렵고, 야간에 응급환자를 수술하고 진료할 당직 전문의를 배치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야간에 응급수술이나 응급 입원환자를 진료해야 할 외과 심장내과 신경외과 같은 전문의의 당직비와 진료수가는 대기 비용을 반영해 지금보다 파격적으로 높여야 하지만, 응급실 진료수가는 입원환자나 외래환자 진료수가에 비해 결코 낮지 않다. 실제 병원의 진료비용 대비 건강보험 수가를 잘 따져보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건강보험 수가 탓을 하는 것도 이제 그만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중증응급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병원들이 응급환자를 적극적으로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가 없어서, 병실이 없어서 응급환자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응급환자의 진료를 거부하는 진짜 이유가 될 수 없다. 비응급환자에게 먼저 의사와 병실을 내주고 나서 남는 의사와 병실로 응급환자를 보겠다는 대한민국 의료의 고질병을 이젠 고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