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장관 수사지휘권 폐지 추진 … 검찰 예산 편성권 보장 공약

여소야대, 검찰청법 등 개정 난제 … 공수처 위상 추락 가능성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검찰의 권한이 강화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으로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 폐지를 내세운 데다 검찰총장에게 예산 편성권을 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 견제차원에서 발족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대수술도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위상 추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이지만 '통제장치 없는 검찰권 남용'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들 공약은 모두 법 개정 사항이어서 더불어민주당의 협조없이는 불가능해 21대 국회에서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격적으로 검찰총장 직에 대해 사의를 표명한 윤석열 당선인이 지난해 3월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윤 당선인의 사의를 한 시간여 만에 즉각 수용했다. 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검찰, 주요 사정기관 위상 회복 = 윤 당선인이 사법공약의 핵심으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를 내세워 검찰의 독립성 강화가 예상된다. 문재인정부 5년간 검찰개혁의 주요 내용으로 검찰권한 축소에 맞춰졌다면, 앞으로 5년간은 검찰의 '독립성 강화' 기조 아래 주요 사정기관의 위상을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검찰의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비판에서 나온 결과물인만큼 수사지휘권 폐지를 통한 검찰 독립성이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 시절 3차례나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를 받은 바 있다.

수사지휘권은 검찰청법 제8조에 "법무부 장관은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돼 있다.

1949년 검찰청법 제정 이후 한 차례(2005년)만 발동될 만큼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됐으나 문재인정부에서만 세 차례나 발동됐다. 추미애 전 장관이 두 차례, 뒤를 이은 박범계 장관이 한 차례 행사했다.

윤 당선인 측은 지난달 사법공약을 발표하며 현 정부 법무부 장관들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겨냥해 "그 기준과 내용이 법과 원칙보다 정치적 압력과 보은에 가까웠다"고 비판했다. 특히 추 전 장관을 가리켜서는 "'검찰 개혁'이라고 외치면서 구체적 사건에 관한 수사지휘권을 남용하고,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는 '검찰 개악'을 초래했다"고 맹비난했다.

윤 당선인은 검찰 독립의 또 다른 방안으로 법무부 장관이 가진 검찰 예산 편성권을 검찰총장에게 주겠다고 했다.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보장 차원에서 검찰총장이 매년 독자적으로 예산을 편성해 기획재정부에 요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다는 것이다.

◆법 개정, 국회 동의 필수 = 그러나 수사지휘권 폐지 공약을 현실화하기까지는 걸림돌이 많다.

우선 수사지휘권 폐지는 검찰청법 개정 사안이라 국회 동의가 필수적이다. 국회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을 설득하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민주당은 윤 당선인의 사법 공약을 두고 "검찰 공화국을 넘어 검찰 제국을 선포한 것"이라며 극렬 비판하고 있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 여소야대 지형을 바꾸지 못하면 수사지휘권 폐지는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 법 개정 전이라도 검찰 독립성 강화 차원에서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은 최소한 행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총장에게 예산권을 넘기는 안은 정부조직법 해석에 달렸지만 이 역시 기획재정부와의 협의, 국회 설득 과정 등이 필요하다. 다만 검찰 예산을 따로 편성할 경우 검찰총장도 국회에 출석할 의무가 생기고, 이 경우 검찰의 정치적 중립 논란이 예상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법무부 장관의 수사 지휘와 예산권을 제외하면 검찰을 견제할 장치는 사실상 인사권만 남게 돼 검찰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공수처, 대수술 예고 = 검찰 독립성 강화와 맞물려 공수처의 위상 추락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윤 당선인이 공수처 '대수술'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공수처는 문재인정부 '검찰 개혁'의 결과물이지만 자리를 채 잡기도 전에 정권이 교체돼 기로에 섰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공약집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공수처와 관련해 "고위공직자 부패 수사기관으로 정상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해 1월 21일 출범 이후 1년 동안 수사의 공정성 시비가 논란이 됐으며, 정치사찰식 수사·무능 수사로 인해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윤 당선인의 시각이다.

그는 특히 공수처의 독점적인 권한의 근거인 공수처법 24조를 '독소 조항'으로 규정하고 손질할 뜻을 나타냈다.

공수처법 24조 1항은 공수처가 검찰이나 경찰과 중복된 수사를 하는 경우 공수처에 수사 우선권을 부여하고 있다. 공수처장이 사건을 달라고 하면 검·경은 이에 따라야 한다. 24조 2항은 검·경이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위공직자범죄를 인지한 경우 해당 내용을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결국 이 두 조항을 남용할 경우 공수처가 검·경의 수사 첩보를 받고도 수사를 무력화할 수 있는 만큼, 이를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사실상 공수처가 수사 독점권을 가진 고위공직자 범죄를 검·경도 수사할 수 있도록 수사 권한을 나누겠다는 것이 윤 당선인의 계획이다.

만약 이런 대수술을 하고도 공수처가 정상화하지 못한다면, 폐지도 가능하다는 것이 윤 당선인의 복안이다.

이런 대수술 계획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더 급진적으로 변화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인수위 단계에서부터 공동정부를 운영하기로 하며 단일화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공수처를 즉각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수처, 앞으로 2년간 존폐 갈림길 = 다만 윤 당선인이 예고한 공수처 '대수술'은 법 개정이 필요해 더불어민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국회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한 만큼, 향후 2년이 공수처의 존폐를 판가름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22대 국회가 들어서며 국회 원내 의석수가 변화하고, 김진욱 공수처장 임기가 종료되는 2024년까지는 공수처 개편 공약이 이행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는 다시 말해 향후 2년 동안의 시간이 공수처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공수처는 올해 초부터 조직을 정상 궤도로 올려놓기 위한 쇄신책을 속속 추진하고 있다. 윤 당선인의 공약처럼 검찰 권력이 다시 강해진다면, 민주당은 오히려 공수처법 개정으로 공수처에 인력 등을 증원하는 방식으로 맞불을 놓을 수도 있다.

공수처가 이 기회를 잘 활용해 성과를 낸다면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수사하는 사정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폐지론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으로 2년 동안 공수처 스스로 쇄신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수사를 하지 못한다면 폐지의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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