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문재인정부 정책 난맥상 입다물어 … 새총재 "우리 책임, 통화정책에만 머무르지 않아"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취임했다. 치솟는 물가와 경기 둔화 가능성으로 한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평가다. 코로나19 팬더믹이 전세계를 휩쓸면서 각국 중앙은행의 역할이 커졌다. 중앙은행의 역할이 전통적인 물가안정에 그치지 않고 금융 및 고용안정까지 요구받고 있다. 신임 총재를 맞은 한국은행의 향후 과제 및 역할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주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1일 취임사에서 "한은이 정부와 소통한다고 독립성이 저해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적극적인 소통의지를 드러냈다. 한은 안팎에서는 이 신임 총재가 "한은을 최고의 싱크탱크로 만들자"고 강조한 점도 정부와 소통하면서도 일정한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한다. 실제로 이 총재는 19일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세제를 통해 특정지역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있다고 전제했던 것이 문제"라며 문재인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드러냈다.


◆한국은행을 산사에 비유하는 이유 = 한국은행 안팎에서는 한은을 깊은 산중에 있는 산사에 비유하는 기류가 있다. 여러 의미를 담고 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경제상황과 이에 따른 정부정책 등에 지나치게 선을 긋고 있다는 점도 포함한다. 최고의 경제전문가들이 모인 집단에서 경제상황과 이를 주도하는 정부정책에 대해서 아무런 입장이 없지 않을 텐데도 침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은은 상당한 국가 통계지표를 수집하고 발표하는 기관이어서 경제흐름에 대해 정부 어느기관보다 빠르고 정확한 파악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며 "경제상황에 대한 분석과 판단에 기초해 통화정책도 결정하기 때문에 정부정책에도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문재인정부에서 가장 논쟁적 주제였던 임기 초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임기 중반 부동산가격 폭등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주열 전 총재는 2018년 7월 김동연 당시 기재부장관과 조찬 회동을 갖고 최저임금 등 각종 현안에 대해 논의하면서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 전 총재를 비롯해 한은 고위 간부들이 가졌던 인식은 대체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했다.

부동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폭등으로 정치권을 비롯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컸던 2019년부터 2020년 사이 한은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2주 정도면 부동산정책에 대한 문제와 대안을 제시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한은 고위관계자)면서도 이를 밖으로 드러내는 데는 주저했다. 물론 한은이 정부정책에 침묵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재정(기재부)과 금융(금융위), 통화(한은) 정책의 수장은 물론이고, 고위 및 중하위 레벨의 다양한 협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이 정기적으로 국회에 보고하는 통화신용 및 금융안정보고서 등을 통해서도 경제 현안에 대한 의견을 담는다. 한은 관계자는 "법적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과정에서 정부와 관계는 조심스러운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해 정부와 중앙은행의 관계 설정이 갖는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국회 기재위 한 관계자는 "중앙은행이 정부정책에 직접 감놔라 배놔라 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각종 보고서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중앙은행의 정부정책에 대한 건전한 관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박사급만 200명 이상 보유 = 한은은 금융안정 및 통화신용과 관련해 국회 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법적인 의무가 있다. 이들 보고서 외에도 한은은 각종 보고서를 거의 매주 내놓는다. 특히 'BOK경제연구'와 'BOK이슈노트' 등은 한은 내부와 외부 전문가 등이 함께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형식으로 언론도 다수 인용한다.

내일신문이 이주열 전 총재 두번째 재임기간인 2018년 4월부터 최근까지 발표한 주요 현안 보고서 150건 정도를 분석한 결과 정부정책에 적극적인 입장을 드러낸 경우는 많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2018년 12월 최저임금 관련 보고서를 집중적으로 발표했지만 시기를 놓친 지적이었다. 실제로 한은은 이 기간 △최저임금이 고용구조에 미치는 영향 △최저임금과 생산성 △최저임금이 고용 및 물가상승에 미치는 영향 등을 통해 사실상 최저임금의 급속한 인상에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예컨대 '최저임금이 고용 및 물가상승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과 노동시간 및 급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거시경제적으로는 물가를 상승시킬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그러면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제도를 보완하면서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문제는 이들 보고서가 2017년~2018년 두해 동안 정부가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면서 아르바이트 등 단시간 근로자의 고용 감소 등 여러 문제를 드러내고, 이에 대해 정부가 사실상 정책을 수정하기 시작한 이후라는 점이다. 사실상 뒷북 비판이라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부동산 정책 관련 내용은 아예 부재했다. 'BOK이슈노트'에서 2021년 7월 '주택가격 변동이 실물·물가에 미치는 영향의 비대칭성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최근과 같이 주택가격이 높은 오름세를 지속할 경우 그 만큼 주택가격 조정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추후 우리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는 정도의 원론적인 분석 수준에 그쳤다. 이 총재가 19일 청문회에서 밝힌 "(부동산)세제를 통해 특정지역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있다는 전제가 문제"라는 정도의 정부 부동산세제에 대한 분석이나 비판적 접근은 부재했다.

이 총재는 21일 취임사에서 "우리 경제가 당면한 중장기적 도전을 생각할 때 우리의 책임이 통화정책의 테두리에만 머무를 수 없다"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의한 연구성과를 책상 서랍 안에만 넣어두어서는 안된다. 경제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판단 자료를 더 많이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의 변화가 주목되는 발언이다.

한편 한은은 현재 내부 직원 가운데 박사급 201명을 비롯해 석사급 인력은 그 보다 더 많은 인원이 근무하고 있다. 박사급 직원은 대체로 한은 조사국과 경제연구원 등에서 연구 및 조사활동을 중심으로 한 업무를 하고 있고, 연구성과는 부정기적인 공개·비공개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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