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인플레 3.1%, 9년 만에 최고 … 이 총재 "지금은 물가 더 걱정, 데이터 면밀히 볼 것"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취임했다. 치솟는 물가와 경기 둔화 가능성으로 한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평가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세계를 휩쓸면서 각국 중앙은행의 역할이 커졌다. 중앙은행의 역할이 전통적인 물가안정에 그치지 않고 금융 및 고용안정까지 요구받고 있다. 신임 총재를 맞은 한국은행의 향후 과제 및 역할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주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앞에 물가잡기라는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한국은행법에 물가안정을 가장 큰 존립의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식으로든 치솟는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 한은이 가진 수단은 기준금리의 조정을 통한 돈의 흐름과 속도를 조정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물가를 잡기 위해 돈줄을 너무 조이면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통화당국의 고민이 있다.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필요한 이유 = 이 총재는 지난 25일 기자간담회에서 "5월과 7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계속 올릴거냐는 한 방향으로 이야기하기 어렵고, 데이터를 더 보고 결정해야 될 것 같다"면서도 "전반적인 기조는 현재까지 물가를 더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상황을 놓고 보면 다른 데이터의 변수가 없는 이상 5월 말 금통위에서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물가 추세는 이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은이 27일 발표한 '2022년 4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1년 후 물가에 대한 전망치를 보여주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1%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3월(2.9%)보다 0.2%p 상승한 것으로 2013년 4월(3.1%)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이다. 소비자들이 앞으로 계속 물가가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소비와 저축, 투자를 할 것임을 보여주는 지표의 하나이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높고 거리두기 해제로 활동이 늘어나는 점과 우크라사태 장기화에 따른 공급측면의 물가 상승요인도 자주 접하면서 소비자들이 물가 상승률을 높게 예상한 것 같다"며 "공공요금 대책 등은 바로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물가불안 요인이 당분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가 상승에 따른 임금 상승, 다시 물가 상승이라는 '임금·물가의 악순환'이 일어날 가능성도 나온다. 한은이 26일 발표한 '최근 노동시장내 임금상승 압력 평가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명목임금은 기저효과 등으로 4.6% 상승해 코로나19 이전 수준(4%)을 웃돌았다.

한은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임금 및 물가간 전가효과'를 분석한 결과, 물가 충격은 4분기의 시차를 두고 임금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물가가 오르면 임금상승률은 그로부터 4분기 이후 나타난다는 의미다.

오삼일 한은 고용분석팀 차장은 "지난해 3~4분기부터 크게 오른 물가가 올해 하반기부터 임금상승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앞서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을 기점으로 3%를 넘어섰고, 지난 3월은 전년 동기대비 4.1% 상승했다.

한편 한은의 통화정책 결정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다음달 초 정책금리 인상 등 빨라지는 통화긴축 흐름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기준금리 빠르게 오르면 경기회복에 타격 =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리면 경기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미 이러한 조짐은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이 26일 발표한 '2022년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속보치)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은 0.7% 상승에 그쳐 지난해 4분기(1.2%) 성장세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민간소비(-0.5%)가 침체된 가운데, 향후 경기전망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설비투자(-4.0%)와 건설투자(-2.4%)가 위축됐다.

그나마 수출(4.1%)로 플러스 성장세를 유지했지만 대외 환경 등을 고려하면 얼마나 추세가 유지될지 불투명하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등이 본격적으로 반영되지 않은 수치여서 2분기 이후 수출 환경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향후 경기전망을 보여주는 선행지수는 계속 후퇴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2월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128.0으로 전달에 비해 0.3p 하락해 지난해 7월 이후 8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이는 2018년 6월부터 2019년 2월까지 9개월 연속 하락한 뒤 3년 만에 최장기 하락 추세이다.

이에 따라 올해 경제성장률은 정부(3.1%)와 한은의 전망치(3.0%)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IMF는 19일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0%에서 2.5%로 낮춰 잡았다. S&P(2.5%) 등 국제신용평가기관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이와 관련 증권가에서는 한은의 추가 금리인상에 대해 엇갈린 전망을 내놓고 있다. 우혜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물가 상방압력 장기화 가능성으로 4월 기준금리가 인상됐지만 향후에는 성장에 강한 하방압력이 확인된다면 속도감 있는 인상은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안재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이창용 총재가 전체 방향성은 미국을 따라가지만 속도까지 따라갈 필요는 없음을 보여줬다"며 "다만 새정부 출범이후 단기 재정확대 기조 전망을 고려하면 5월 추가적인 인상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한편 한은은 다음달 금통위에서 성장률과 물가 등 올해 경제전망을 수정해 내놓을 예정이다. 따라서 다음달 발표할 경제전망에 기초해서 이 총재가 말한 '데이터'에 의한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상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백만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