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인코리아' 중 국제경쟁력 가장 취약 … 국제금융시장 변동성 대비, 디지털화폐도 과제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취임했다. 치솟는 물가와 경기 둔화 가능성으로 한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평가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세계를 휩쓸면서 각국 중앙은행의 역할이 커졌다. 중앙은행의 역할이 전통적인 물가안정에 그치지 않고 금융 및 고용안정까지 요구받고 있다. 신임 총재를 맞은 한국은행의 향후 과제 및 역할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주

원달러 환율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미국의 통화긴축이 본격화하고,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달러 강세가 불러온 현상이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 제조업부터 K-팝까지 '메이드인코리아'가 전세계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행권인 원화는 변방의 통화로 여전히 서러움을 받고 있다는 평가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과 전쟁과 자연재난 등 지정학적 위기만 발생하면 흔들리는 원화의 추락을 막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축통화 논란이 불러온 민낯 = 지난 2월 대통령선거가 한창이던 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원화가 기축통화에 포함될 수 있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일었다. 적정한 국채 발행규모를 놓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 후보자의 발언으로 기축통화의 의미와 기준, 원화의 현재 실력 등이 거론됐다. 결론적으로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원화는 기축통화도 아니고 가까운 시간내에 될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결론으로 수렴됐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1달러당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27일 원달러 환율은 1달러당 1265.2원으로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이 1260원을 넘어선 것은 2020년 3월(1285.7원) 이후 처음이다. 최근 1년새 가장 저점이었던 지난해 4월29일(1108.5월)에 비하면 14.1% 상승했다. 그만큼 원화 가치가 하락했다는 의미이다.

최근 환율이 급등하는 데는 미국이 다음달부터 기준금리를 0.5%p의 큰 폭 인상을 예고하고 있고, 우크라사태의 장기화, 중국의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도시 봉쇄 등이 맞물려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다. 이에 따라 기업 등의 달러 수요가 폭발하면서 환율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환율이 급등하면 수입물가 특히 원유 수입가격의 급등을 비롯해 국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심대하다.

이처럼 정치,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질 때면 외환시장에서 환율이 요동치는 데는 그만큼 원화의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1997년 IMF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 비해서는 충격이 덜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등 위기의 전조로 가장 먼저 환율이 급변하는 것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원화의 실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러한 변동성에 대비해 한국은행은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3월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578억달러로 세계 8~9위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비교적 많은 달러를 비축해 두고 있는 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19일 인사청문회 서면답변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높은 국가신용등급과 단기외채 규모 등을 감안할 때 현재 외환보유액은 한미간 금리 역전 등 대외 충격에 따른 환율 급등에 완충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상당한 규모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어도 환율이 출렁이는 데는 그만큼 통화의 국제화가 덜 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국제적으로 기축통화의 한 축을 차지하는 유로화를 비롯해 영국 파운드화,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 등은 상대적으로 환율변동성이 덜하다. 해당 통화를 발행하는 국가의 경제 규모도 있지만 통화에 대한 국제적인 수요가 그만큼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국제 결제시 차지하는 각국 통화의 비중을 보면 달러가 39.9%로 가장 높고, △유로화 36.6% △파운드화 6.3% △위안화 3.2% △엔화 2.8% 등이 뒤를 이었다. 이에 비해 원화는 우리와 경제규모가 비슷한 캐나다(1.6%)와 호주(1.3%)는 물론, 싱가포르와 홍콩 등 아시아 각국의 통화에 비해 결제 비중이 낮아 2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장기적 원화 글로벌화 절실 = 원화의 국제화를 통한 위상 강화를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변방의 통화에서 주요 통화로 발돋움 하는 데는 경제규모만으로 어렵다. 중국 위안화가 G2의 경제규모에도 불구하고 달러에 비해 위상이 크게 낮은 데는 국제 금융시장과 무역거래 등에서 여전히 위안화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의미다.

최근 일본 엔화가 안전자산의 지위를 상실해 가고 있는 데서 보듯 국제금융시장의 냉엄한 현실을 고려하면 원화의 글로벌화는 먼 길이 사실이다.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심지어 위안화도 IMF 통화인출권인 SDR에 억지로 넣어준 측면이 있다"며 "원화가 무역거래에서는 자유화 정도가 높지만 국제 금융거래에서는 여전히 제약이 많기 때문에 인정을 못받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전경련은 지난 2월 '원화가 IMF 특별인출권 통화바스켓에 포함될 수 있는 5가지 근거'라는 보고서를 통해 원화의 국제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보고서는 △경제규모 세계 10위 △세계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 △국제교역에서 원화결제 비중 △원화채권에 대한 외국인 보유 증가 등을 들었다.

실제로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세계 외환상품시장에서 원화의 거래비중은 2007년 1.2%에서 2019년 2.0% 올라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원화 표시 채권에 대한 외국인 보유도 2016년 5.6%에서 지난해 2분기 8.7%로 늘었다. 전경련은 "정부가 원화 거래의 시장접근성 제고를 위한 제도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면서 "특히 역외 외환시장 개장 등 정부가 추진하는 시도가 원화의 국제적 활용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장기적인 원화 국제화 시도와 함께 외환보유고를 튼튼히 하면서 미국 등 주요 경제권과 통화 스왑을 통해 단기적인 외환변동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한국은 현재 캐나다, 중국 등과 통화 스왑을 맺고 있지만, 일본과 미국은 계약기간 만료로 종료된 상태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와 한은도 원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고민을 많이 한다"며 "원화 거래를 완전히 자유화할 때 생길 수 있는 투기자본의 공격 등 금융시장 불안과 충격을 견딜 수 있는 대내외 체질을 개선하는 데 당분간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CBDC)를 둘러싼 연구와 실용화도 한은의 주된 과제다. 중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가 CBDC 도입을 주도하는 가운데 자칫 흐름에서 뒤처질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한은은 27일 '2021년 지급결제보고서'를 통해 "6월 말까지 CBDC 2단계 모의실험이 완료된 후 금융기관의 테스트용 정보기술 시스템을 연계해 사용자간 송급 및 지급이 원활한지 점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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