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수(아버지) : 오늘은 감염병에 관한 영화를 보도록 하자. 2012년에 개봉한 ‘연가시(Deranged)’와 기생충 이야기를 할 거야.
고동우(아들) : 기생충도 감염병인가요?
고병수 : 흔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미생물이라고 하는 건 알고 있지? 우리가 흔히 아는 감기, 인플루엔자, 요즘 몇 년 동안 유행하는 코로나 같은 것들은 바이러스라고 하고, 그보다 크며 내부 구조를 잘 갖춘 대장균, 살모넬라, 결핵 같은 것들은 박테리아(세균)이라고 불러. 그보다 더 큰 것들에 곰팡이(균류)들도 있고..... 기생충 질환들도 전염을 일으키면서 병을 일으키니까 역시 감염병에 속한단다.
고동우 : 그렇구나. 이 영화를 보면서 너무 징그럽고 놀랐어요. 연가시란 기생충도 실재하는 건데, 만일 이런 게 현실이 된다면 너무 끔찍할 것 같아요.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설명해주세요.

어느 날 강둑에서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시체 한 구를 발견한다. 시체는 흉측한 모습으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뿐 아니라 며칠 사이에 여기저기 전국 물가에서는 사람 시신들이 떠오른다. 신고가 빗발치고,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비상대책본부를 구성한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함께 모인 대책본부 내에서도 정확한 원인을 못 찾고 신종플루 같은 새로운 바이러스설, 북한에서 강으로 퍼뜨린 생화학 무기설 등 근거 없는 주장만 오고 간다. 사람들이 갑자기 미친듯이 물을 찾거나 물로 뛰어들면서 자살을 해 버리는 황당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원인이 기생충인 ‘연가시’란 놈임을 알게 된다. 그것들은 사람들이 물에 들어갔을 때 항문이나 구강을 통해 인체 내로 들어가 기생하다가 뇌에 영향을 주면서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어 물로 뛰어들게 만들었다는 결론을 얻는다.

연가시는 철사 모양으로 기다랗고 흑갈색의 유선형 기생충이다. 물속 장구벌레 같은 중간숙주를 거쳐서 최종숙주인 육상 곤충의 배 속에 들어가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20㎝ 내외 크기인 성충으로 자라는데, 2m까지 긴 것도 보고가 된다. 연가시가 최종숙주로 삼는 육상 곤충들은 다양해서 사마귀, 귀뚜라미, 딱정벌레, 심지어는 바퀴에까지 기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곤충 배 속의 양분을 다 가로채면서 내장 기관이나 체강 내부에 몸을 꼬고 살아가다가 산란기가 시작되면 곤충으로 하여금 물로 뛰어들어 죽게 만든다.

그래서 연가시의 학명은 ‘물’이란 뜻이 들어있는 ‘Gordius aquaticus’라는 용어를 쓴다. 자기를 먹여 살린 곤충이 물에서 죽어갈 때 연가시는 항문으로 유유히 빠져나온 후 물속에서 암수가 어울려 짝짓기를 시작한다. 얼마 후 암컷은 수백만 혹은 수천만 개의 알을 물속 나뭇가지 같은 물체에 낳게 되고, 2주 정도 지나면 유충이 된다. 그 유충을 장구벌레가 잡아먹고, 장구벌레가 성충 모기가 되어 육상 활동을 하다가 사마귀 같은 상위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면 연가시 유충은 그대로 사마귀에게 옮겨가게 된다. 이후 최종숙주인 사마귀 같은 육상 곤충 속에서 연가시 성충으로 자라는 것이다. 최종숙주 안에서 자란 성충은 배란기가 될 때 곤충이 물로 들어가도록 혼란을 일으키는데, 이것은 연가시가 직접 신경전달물질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숙주인 곤충의 유전자를 변형시켜서 신경전달물질을 많이 만들도록 조작하여 정신 착란을 일으켜 물속으로 빠져 자살하게 만든다고 알려져 있다.

자연에 존재하는 연가시는 사람 몸속에서 살 수 없다. 설사 우연히 들어왔어도 번식을 하지 못하고 죽어버린다. 그래서 영화에서처럼 연가시란 놈을 만났다 해도 공포스러워 할 필요가 전혀 없는데, 영화는 이것을 소재로 두려움을 극대화한 것이다.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어 죽게 하는 이 기생충을 영화에서는 변종 연가시라고 명명하였다. 인체 내에서 살 수 없는 것과 더불어 상식으로 알아둘 점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와 다르게 기생충은 변종이 쉽게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생충에서 변종이 생긴다 하더라도 수십 년 정도의 상당히 긴 시간이 지나야 가능하다.

도대체 어떤 연유에서 이것들이 변종이 됐으며 사람 속에서 기생하게 된 걸까? 그 이유는 영화 중간에 밝혀진다. 연일 관련 보도가 뉴스 앞부분을 장식하고, 사망자는 100만 명, 200만 명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자 사람들의 불안은 극에 달한다. 보통의 구충제로는 효과가 없고 유일한 치료약은 생산이 중단된 ‘윈다졸’이라는 구충제. 제약회사 영업사원인 재혁(김명민)도 가족들이 걱정되어 주의하라고 말하지만, 결국 그의 부인도 감염을 피하지 못했고 점점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변종 연가시에 대한 의문점들이 하나, 둘씩 벗겨진다. 윈다졸을 만들던 제약회사가 사람 속에 들어가서 기생할 수 있도록 변종 연가시를 만들었다는 사실과 그 치료제를 개발해서 떼돈을 벌겠다는 속셈이었다. 제약회사는 슬슬 품절된 윈다졸 성분 공개를 미끼로 7,000억원의 가치를 지닌 회사를 정부에 5조 원에 팔려는 협상을 한다. 보통 이런 바이러스나 감염 관련 재난 영화들은 의사 혹은 감염병 전문가가 영웅처럼 활약해서 치료 방법을 찾아내면서 끝이 난다. 연가시 영화는 회사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서 병원장의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는 평범한 제약회사 직원인 재혁으로 하여금 문제 해결을 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비슷한 영화들과 차이 나는 특징을 갖는다.

영화에서는 보통의 구충제(기생충약)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 간흡충(간디스토마)이나 촌충 따위는 특별한 약물로 치료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생충인 회충?요충?구충(십이지장충)?편충과 같은 선충류(유선형으로 생긴 기생충들)들에게는 메벤다졸, 알벤다졸, 플루벤다졸 같은 구충제가 확실한 효과를 보여 준다. 연가시도 선충류의 일종으로 이 계통 약이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 약들은 오래 전부터 복용했던 약이고, 영화에서 설정한 것처럼 내성이 생기거나 효과가 없지 않다.

단순한 기생충을 소재로 전 국민에게 한동안 검색 순위 1위를 하게 만들면서 공포감을 일으킨 연가시 영화는 단순히 영화로만 본다면 재미만 있겠지만, 기생충 상식을 덧붙여서 본다면 의미가 더 할 수 있는 영화이다.

2019년에 개봉한 ‘기생충(Parasite)’은 제목만 보면 징글징글하고 속을 메슥거리게 만들어진 영일 듯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봐서 알다시피 어느 부잣집에 ‘기생’해서 사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소 엽기적으로 다루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과 송강호 등의 연기력이 좋아 황금종려상, 아카데미상을 비롯해서 2019년에 국내외 영화제 상을 싹쓸이 해버린 영화이다. 기생충이 실제 나오지 않았어도 부잣집 사람들을 동경하면서도 질시하는 양가감정이 드러나고, 기생충이 몸속에서 살다가 몸을 망가뜨리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는 것을 절묘하게 비유해서 만들었다.?참고로 기생충은 한자로 ‘寄生’이란 말을 사용하는데, 예전에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나 춤 등으로 멋스럽게 흥을 돋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여성을 이르던 말인 ‘기생(妓生)’으로 아는 사람들도 있다.

["고병수 의사의 ‘영화 속 의학의 세계’" 연재기사]

고병수 의사

김규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