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가동후 44년동안 임시저장시설에 쌓여있어

"원전 필요성 주장하며 처분계획 안세우면 무책임"

원자력발전(원전)이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현실적 수단중 하나로 주목받는 가운데 사용후핵연료 관리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탈원전이냐 탈탈원전이냐' 논란을 떠나 이미 사용했거나 가동 중인 원전이 있다면 사용후핵연료가 나오기 마련이고, 이를 처분할 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우리나라 최초 원전인 고리 1호기가 1978년 4월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44년 동안 최종 처분시설을 찾지 못하고, 각 원전 안에 설치한 임시저장시설에 쌓여있다.

사용후핵연료에 포함된 여러 가지 물질은 자연에 존재하는 것보다 농도가 높아 오랜시간 강한 방사선을 내보낸다. 이 과정에서 방사선을 방출하지 않는 원소로 점차 변한다. 여기에 소요되는 시간은 원소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짧게는 4~5년, 길게는 10만년에 달한다.

때문에 지금처럼 원전부지내 임시저장시설에 보관하기엔 한계가 있다. 10만년 이상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저장시설이 필요한 이유다.


◆2031년부터 순차적으로 포화 = 18일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 따르면 고리원전은 2022년 3월말 현재 임시저장시설내 사용후핵연료 포화율이 83.8%에 달한다. 2031년 포화가 예상된다.

한빛원전 2031년(74.2%), 한울원전 2032년(80.8%)도 포화시점이 머지않았다. 어찌 보면 포화시점이 10년 가까이 남아있어 여유있게 보일지 모르지만 최종 처분을 어떤 형태로 할 것인지 논의하고, 부지 선정, 안전성 평가, 건설 등의 기간을 고려하면 지금 시작해도 늦은 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중수로방식인 월성원전은 포화율이 98.8%까지 치달은 시점에 맥스터(조밀 건식저장모듈) 7기를 추가 건설,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맥스터 조성 역시 현 원전부지에 증설해야 하는 관계로 안전성 확보를 둘러싼 주민수용성(지역주민 동의)을 확보하는데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한수원은 월성원전 맥스터 증설을 위해 2016년 4월 운영변경허가를 신청한 이후 2022년 3월 준공하는데 만 6년이 걸렸다.

◆문재인정부 '잃어버린 6년' 지적 = 사용후핵연료는 임시저장시설의 포화 임박과 보관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 안전성 우려 등으로 반출요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반출할지 △한 곳에 모아 관리해야할지, 여러 지역에 분산 저장하는 게 적합한지 △대체 부지를 정한다면 어디로 할 것인지 등 논란과 갈등이 끊이지 않아 수십년간 표류해왔다.

그러다 박근혜정부 때 본격 해결에 나섰다. 정부는 2013년 10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출범, 20개월 동안 2만7000여명의 의견을 수렴하고, 35만명과 온라인에서 소통했다.

공론화위원회는 2015년 6월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정부에 권고안을 제출했다.

△사용후핵연료는 운영허가 기간 만료 전까지 안전한 저장시설로 이송 △2020년까지 지하연구소(URL) 부지 선정 후 중간처분장 착공 △2051년까지 연구처분장 건설 등이 골자였다.

산업부는 이를 토대로 2016년 '제1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2028년까지 고준위폐기물 처분시설 부지를 선정하고, 2035년 중간저장시설, 2053년까지 영구처분시설을 운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들어 이 내용을 전면 백지화했다. 박근혜정부시절 추진과정이 시민·환경단체 의견을 배제한 반쪽짜리 공론화였다는 주장에서다.

결국 문재인정부는 2019년 5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를 출범했고, 40회 이상 회의를 거쳐 2021년 4월 정부에 권고안을 제출했다. 특별법 제정(부지선정 절차 및 유지지역 지원 법제화)과 독립위원회 신설 필요 등을 제안했다.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박근혜정부때는 2051년 영구처분장 건설 등 구체적인 로드맵이 제시됐다"며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6년이 지난 후에 다시 내놓은 권고안에서 위원회 신설 등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했다. '잃어버린 6년'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처분장 마련하는데 약 37년 소요 = 산업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의 권고안을 참고해 2021년 12월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을 마련했다.

기본계획에서 밝힌 로드맵은 부지선정 절차 착수 후 37년내 영구처분시설 확보가 핵심이다. 구체적으로는 △조사계획 수립 후 부지확정까지 약 13년 △관리시설 부지확보 이후 약 7년내 중간저장시설 건설 △관리시설 부지확보 이후 약 14년내 지하연구시설 건설 및 실증연구 등의 내용을 담았다. (중간저장시설과 지하연구시설 건설기간은 중복)

이어 지하연구시설 실증연구 종료 후 약 10년내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영구처분시설은 핀란드식 심층처분에 활용되고 있는 다중방벽시스템을 우선 고려하되 심부시추공 등 기술적 대안도 병행 추진한다. 심부시추공처분(deep borehole disposal) 방식은 심층처분과 개념이 비슷하지만 사용후핵연료를 훨씬 깊은 지하 3~5km 암반층에 매립한다. 깊게 매립하므로 폐기물과 생태계 간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져 안전성이 보장되는 장점이 있다.

한편 윤석열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차질없는 이행을 국정과제의 핵심 실천과제로 선정했다. 2022년 하반기 중으로 고준위 방폐물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2023년 부지선정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국무총리 산하에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처분시설 확보를 위한 37년간의 중장기 로드맵을 차질없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에너지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도 정권 초반에는 관심을 보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흐지부지 됐다"며 "부지선정 등의 과정에 돌입하면 정권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보니 폭탄돌리기 식으로 시간만 허비해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전을 가동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를 등한시하는 건 무책임의 극치"라며 "임시저장시설 포화시점이 다가오는 만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방사성폐기물 = 방사성폐기물(방폐물)이란 원자로·핵연료·인공 방사성 동위 원소 등 핵에너지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물질이 들어 있는 여러 가지 폐기물을 말한다.

고준위 방폐물(알파선 방출 핵종농도 4000bq/g, 열발생량 2kW/㎥ 이상)과 중·저준위 방폐물(고준위 방폐물 이외)로 나뉜다. 고준위 폐기물은 사용후핵연료, 중·저준위 폐기물은 작업복 장갑 폐필터 폐농축액 등이다.

우리나라는 경북 경주시 양북면에 중·저준위 방폐물처분장을 건설, 2015년 8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고준위 폐기물은 처분시설이 없어 현재 원전 부지내 임시저장하고 있다.

["탄소중립과 원자력" 연재기사]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이재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