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우(아들) : 이번에 본 영화는 ‘파이브 피트’라는 건데, 아무 생각 없이 보면 소년, 소녀들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일 수 있어요. 그런데 영화 속에 어려운 용어들이 등장해서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고병수(아버지) : 나도 이 영화를 보면서 ‘엇, 이게 무슨 병이지?’ 하고 당황했단다. 또 처음 보는 박테리아 이름이 나오고.....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내과학이나 감염학 책을 뒤져보게 되었다. 이제 의과대학 초년생인 너로서는 당연한 거야.
동우 : 그 점만 빼면 잔잔하면서도 느낌이 많은 영화였어요.
아버지 : 줄거리를 이어가면서 영화의 어려운 의학 내용을 소개해 보도록 하자.


죽음이 결정되었고, 남은 시간을 안다면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이러한 물음에 사람들은 각기 다른 대답을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렇게 묻게 되는 상황이 흔히 생기지는 않는다. 거의 끝을 모르고 주어진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파이브 피트(Five Feet Apart, 2019)’는 우리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진다.

‘낭포성 섬유증(Cystic fibrosis)’을 앓는 스텔라 그랜트(헤일리 루 리차드슨)는 일곱 살 때부터 병원에서 살고 있다. 희귀질환이면서 감염에 취약하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병원에서 격리된 생활을 해야 했다. 언제나 산소통을 가지고 다녀야 하고, 하루종일 산소 콧줄을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 입원한 병원에는 오래전부터 같은 질환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다 세상을 떠나고 자신과 포(모이세스 아리아스)라는 친구만 남아있다.

희귀질환인 낭포성 섬유증

영화는 다소 어려운 의학용어들이 나오기 때문에, 병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필요로 할 수 있다. 스텔라가 앓고 있는 낭포성 섬유증은 희귀질환으로, 서양인들에게서 종종 발견되지만, 동양인에게는 잘 생기지 않아 국내 발병률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의사들도 의학 서적을 뒤적여보지 않으면 알기 힘들다.

이 병을 일으키는 원인은 상염색체 열성유전에 의해서이다. 우리 몸의 유전자는 성을 결정짓는 성염색체와 몸을 구성하게 하는 상염색체가 있는데, 바로 상염색체에 이상이 생긴 것이고, 열성유전이라는 건 양쪽 부모로부터 물려받아야만 질병이 발현된다는 뜻이다.

낭포성 섬유증은 주로 우리 몸 여러 군데데 분포하는 분비샘에 영향을 준다. 분비량이 많아지고 끈적끈적하게 되어 분비관이 막히면서 문제가 생긴다. 고인 물은 썩듯이, 분비액이 흐르지 못하면 세균이 증식하기 쉬워져서 감염이 되는 것이다. 코곁동굴(Sinus)에 영향을 주면 코곁동굴염(부비동염)을 자주 일으키게 되고, 간에서는 쓸개관이 막히고, 췌장에서는 여러 소화 효소들이 장으로 배출이 안 된다. 생식기관의 분비 작용에도 영향을 줘서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거의 불임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정상폐와 낭포성 섬유종 폐 비교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은 폐이다. 폐로 들어오는 이물질들이나 세균, 바이러스와 같은 미생물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폐에서는 조금씩 점액이 분비되어 물청소하듯이 쓸어내어 밖으로 배출한다. 그것이 가래이다. 정상에서는 약간의 가래는 좋은 기능을 하게 되어 있다.

낭포성 섬유증에 걸린 사람들은 점액이 너무 많고 끈적하게 되어 허파꽈리(폐포)나 작은 기관지들을 막아버린다. 이 상항이 오래되면 감염이 되고, 자주 반복되면서 기관지가 기능을 잃어버린다. 기관지는 탄력이 없어져 부풀어 오르고, 그 모양 때문에 병 이름에 ‘낭포성(Cystic)’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물주머니 모양이라는 뜻이다. 숨을 쉴 때마다 좁아졌다 늘어났다 하는 기능을 못하게 되어 차차 기관지확장증이 생기기 쉽고, 폐의 조직들은 섬유화(Fibrosis)된다.

폐가 딱딱해지면서 탄력이 없어지니 호흡 기능이 약해진다. 병이 진행되면서 호흡곤란을 겪게 되어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야 하고, 폐렴 등 감염으로 위험해지기 쉽다. 결국 호흡곤란과 세균 감염 등 합병증으로 일찍 사망하게 되는 게 낭포성 섬유증 환자의 최후이다.

최근에는 약물이 개발되기는 했지만, 가장 좋은 치료법은 새로운 폐를 이식받는 것밖에 없다. 언제 폐 제공자가 나타날지 몰라서 마냥 기다려야 하고, 설령 이식을 받아도 5년 정도밖에 생명 연장이 되는 게 현실이다.

‘B 세파시아’의 공포

영화는 이러한 병을 가진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가다가 어느 날 윌(콜 스프로우즈)이라는 17살 사춘기 소년이 그 병원으로 이송되어 오면서 또 어려운 용어가 등장한다. ‘B 세파시아(Burkholderia cepacia)’라는 세균이다. 윌은 그 세균에 감염되어 신약의 임상시험을 위해 들어온 친구이다.

B 세파시아는 아주 드문 세균이고 인체에 들어와도 보통은 감염병을 잘 일으키지 않는다. 반면에 낭포성 섬유증 환자들에게는 감염되어 병을 잘 일으키고, 항생제 내성도 강해서 치료가 잘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병원에 사는 어린 친구들은 이 세균의 이름을 너무 친숙하게 주고받으며 생활한다.

윌은 치료를 포기하고 제공되는 약도 안 먹으려고 한다. 어차피 치료되지도 못할 병이고, 신약이라고 해도 별수 없다, 는 자포자기 심정이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모습을 관찰하던 스텔라는 윌에게 접근해서 친해지려고 하고, 한 주먹이나 되는 약을 쉽게 복용하도록 푸딩에 섞어 먹는 법도 가르쳐준다.

스텔라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소녀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처럼 윌의 약도 반듯하게 정리하고 알아보기 쉽도록 표시도 꼼꼼히 해놓는다. 조금씩 마음을 열어 스텔라와 친해진 윌. 둘은 조금씩 사랑이라는 것을 느껴가지만, 낭포성 섬유증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끼리는 누가 감염되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 거리는 6피트(feet), 즉 2m 정도이다.

요즘처럼 코로나19가 대유행하는 시기에 이 2m는 우리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너무나도 친숙한 말이 되어 있다. 사람이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 세균, 혹은 바이러스를 품은 침방울이 튀는 거리가 바로 2m이다. 결핵을 비롯한 일부 미생물들은 공기 중(비말핵, Droplet nucleus) 감염이 되지만, 대부분은 침방울(비말, Droplet) 감염이어서 거리 유지가 필수이다.

5 피트의 간절함

B 세파시아를 비롯한 호흡기 감염들을 피하기 위해 스텔라, 포, 윌은 항상 6피트 거리를 둬서 만나야 한다. 어느 날 스텔라는 당구 큐대를 가지고 윌을 찾아간다. 같이 있어도 당구 큐대를 서로 잡고 있으면 항상 일정 거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구 큐대의 길이는 5피트밖에 안되어 스텔라는 잔머리를 굴린다. 모자란 1피트에 대한 변명이다.

“낭포성 섬유증이 우리에게서 많은 걸 뺐어갔으니 1피트 정도는 뺏어 와도 되겠지?”

그래서 영화 제목이 6피트가 아니고 ‘5피트’가 되었다. 1피트에 대한 스텔라의 변명은 구차한 게 아니라 삶에 대한 간절함이 묻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둘의 달달한 사랑의 감정도 친구 포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허망해진다.

“이제까지 나는 치료를 위해서 살았어. 살기 위해 치료를 받은 게 아니라.....”

병원에서만 생활하던 스텔라는 창밖으로 바라만 보던 도시의 불빛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며 병원 문을 나서서 눈길을 걸어간다.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을 박차고 나간 것이다.

“이제 좀 살아볼래. 그저 인생일 뿐인데, 뭐.”

이 영화는 어린 소년과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너무나 많은 내용들을 전해준다. 인생, 사랑, 생명, 희망과 절망, 우정..... 의학적 내용들도 상당히 많고, 세세한 내용들까지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런 것들은 영화의 소재나 소품들이라고 여기고 잔잔한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만 가도 좋을 것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스텔라의 독백은 우리에게 던지는 말처럼 들린다.

“서로를 만질 수 있다는 거.....

사랑할 때는 우리에게 공기만큼이나 더더욱 그 손길이 필요하다는 걸 나는 미처 몰랐다.

그의 손길이 간절해지기 전까지는.....”

["고병수 의사의 ‘영화 속 의학의 세계’" 연재기사]

고병수 의사

김규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