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교류, 한-베트남 가교역할 톡톡

반한정서 녹이고 '지한파 인재' 육성

"베트남 다녀오면 늘 마음이 짠했어. 어렵게 사는 형제 집에 갔다 올 때처럼. 이번에는 마음이 놓였어요. 우리 딸들 돌아가면 할 일이 많겠어."

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 얘기에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1·2학년인 레 응옥 민트씨와 응우엔 레 찌씨가 눈을 빛낸다. 베트남 퀴논(꾸이년)시 영재고등학교 졸업생인 둘은 용산구 추천으로 숙대에 유학 중이다.

성장현 구청장이 베트남에서 온 두 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뒤편에 베트남 주석에게 받은 우호훈장이 보인다. 사진 용산구 제공


7일 용산구에 따르면 민선 5기부터 7기까지 추진해온 대표 사업은 도시외교다. 퀴논시와 아픈 역사를 공유하며 형제의 도시로 발전, 지자체발 외교의 모범사례를 만들어냈다. 성 구청장은 "26년간 정기적으로 퀴논을 찾은 외국인은 용산구 주민"이라며 "퀴논은 매년 한명씩 인재를 한국으로 보내고 연간 600여명이 우리말을 배운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빈딩성 성도 퀴논.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주둔했던 곳이라 반한정서가 심했다. 1992년 한-베 국교 정상화 이후 해당 부대 출신 주민이 교류를 제안했다. 성 구청장은 1997년 자매결연에 앞서 용산구의원으로, 1999년 구청장으로 다시 방문했는데 북한말을 쓰는 통역사를 보며 관계 개선 필요성을 느꼈다.

2010년 민선 5기 구청장으로 다시 취임한 뒤 본격적인 교류에 나섰다. 도시간 교류를 통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로 3개 전략을 추진했다. 국제교류사무소 운영과 공무원 교환근무는 전쟁의 상흔을 교류와 협력으로 치유하는 '역사치유'에 속한다. 라이따이한 등 빈곤가정에는 '사랑의 집짓기'를 지원했다.

"자외선이 강해서 백내장 환자가 많은데 대부분 실명됩니다. 남은 평생 집에만 머물러야 해요."

퀴논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을 토로했을 당시 자매도시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도 없었고 의회나 주민 동의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성 구청장은 "우리 의술과 자본으로 치료를 하면 원망과 미움이 풀릴까 숙명처럼 받아들였다"며 "뜻을 같이 할 사람들을 찾았다"고 회고했다.

2013년 퀴논시립병원에 백내장치료센터가 들어섰고 연간 두차례 국내 의료진이 방문해 수술을 집도했다. 현지 의료진이 서울에서 연수를 받고 지금은 자체 수술이 가능해졌다. 10년간 4400여명이 혜택을 봤다. 2019년에는 외곽에 사는 취약계층을 위한 순회의료사업용 '환자수송용 해피버스'를 지원했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방역에도 활용됐다.

퀴논거리와 용산거리, 베트남 관광객 유치, 한국기업 진출지원 등 '상생경제'에 더해 지한파 '인재양성'에 힘을 쏟았다. 퀴논시 우수학생 한국유학 지원이 대표적이다. 9월이면 열번째 딸이 입국한다.

퀴논과 용산은 서로가 인정하는 '형제의 도시'다. 지난 4월 퀴논시 용산거리에 '오랜 우정이 형제와 같다'는 뜻을 담은 한옥정자 '형제정'을 준공했다. 주민들은 한국군 증오비 대신 희생자 위령비를 세웠고 국제교류사무소 내 세종학당에는 학기당 300명씩 몰려든다. 퀴논대는 곧 한국어학과를 개설하고 각 고교에서는 제2 외국어로 우리말을 배운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마음의 빗장을 열고 형제의 도시로 자리잡았다"며 "도시간 외교를 통해 자치분권 성과를 키워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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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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