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우(아들) :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문신을 한 신부님(Corpus Christi / Bo?e Ciało, 2019)’이예요. 폴란드에서 만든 영화인데, 영화를 보다 보면 의외로 이 나라 작품들이 꽤 많아요. 수준들도 괜찮고..... 이번 영화도 상당히 감동을 주는 작품이더라고요.
고병수(아버지) : 그렇지? 이 작품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과 마지막까지 경쟁했다고 뉴스에 나오기도 했어.
고동우 : 제목에서부터 상당히 파격이어서 궁금했는데, 이야기 전개도 그렇고 내용이 흥미진진했어요.
고병수 : ‘문신을 한 신부님’ 영화를 의학과 관련해서 보는 이유는 문신이란 것 때문이야. 그에 대해서도 한번 들여다보자.


‘타투(tattoo)’는 인류의 아주 오래된 문화이다. 과거에는 싸움에서 상대방을 겁주려고 새겨놓은 것부터 죄를 지은 사람에게 징표로 하는 것 등 다소 제한해서 이용했다. 조직폭력배나 질이 안 좋은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많이 인식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문신(文身)’이라는 말 보다는 ‘타투’로 쓰자는 주장도 있다.

요즘은 개성의 표현으로 누구나 할 정도로 대중화 되어서 연인끼리 짝으로 하기도 하고, 팔뚝이나 배, 등 부위에 귀엽게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새기기도 한다. 태평양의 섬나라 사모아 원주민들이 이러한 타투를 많이 사용했는데, 영어의 어원도 그 나라 말을 그대로 차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의학에서 문제시 되는 것은 타투를 할 때 오염이나 감염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울 때도 몸에 상처를 낼 수 있고, 그것 또한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여러 나라에서 의료법 등으로 제약을 가했고, 사람들은 법망을 피해서 몰래 타투를 새기기도 하였다.

우리 몸의 피부는 0.1㎜ 정도로 아주 얇은 표피와 1㎜ 안팎의 진피, 그리고 피부밑조직(피하조직)으로 구분한다. 혈관이나 땀샘 등 많은 장치들이 진피층에 있고, 타투에서 사용하는 색소는 바로 진피층에 투여하는 것이다. 표피에만 하게 되면 색이 안 먹혀서 진피층에 색을 넣지만, 여기에는 작은 혈관들이 있어서 가끔 살짝 출혈되기도 한다.

타투는 과연 의료 행위일까? 한국에서 타투 관련 활동은 의사 면허 소지자만 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의사들 중 과연 몇 명이 ‘타투잉(tattooing)’을 하고 있을까? 위생이나 감염의 문제는 의료법이 아닌 관련법으로도 얼마든지 주의할 수 있는데 말이다. 얼마 전 일본에서 타투 활동은 의사가 아니어도 할 수 있도록 의료법이 개정되었다고 한다. 이제 전 세계에서 의료법으로 타투 활동을 제약하는 곳은 한국 한 곳만 남았다고 한다.

소년원을 나온 청년

다니엘(바르토시 비엘레니아)은 비록 사고로 일어났지만 2급 살인죄로 소년원에 수감되어 있는 청년이다. 그는 소년원을 담당하는 토마시 신부와 친하여 미사 때 복사 역할을 전담해서 하거나 찬송을 부르기도 한다.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부가 되고 싶은 다니엘이지만 범죄자를 받아줄 신학교는 없다는 담당 신부.

어느 날, 자기가 죽게 했던 소년의 형이 소년원에 들어오게 되자 다니엘은 불안을 느낀다. 다행이 더 죄를 안 짓고 착실히 살겠다는 약속을 하며 그와 부딪치지 않고 가석방을 받게 된다.

낯선 곳으로 버스를 타고 떠나 어느 시골의 목공소를 찾아간다. 인력이 필요한 곳으로 소년원 측에서 연결해 준 곳이다. 목공소 근처에 다다랐지만 다니엘은 성당 종소리를 듣고는 무언가에 이끌린 듯 성당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조용히 성당에 들어선 후 홀로 앉아있던 소녀 엘리자(엘리자 리쳄벨)에게 미사가 끝났는지 묻자, 엘리자는 다음 날 아침에 미사가 있다고 알려주면서 목공소에 잘 곳이 없냐고 되묻는다. 엘리자가 “목공소에서 왔네.”’라고 하니 다니엘은 시치미를 떼고 사실 자신은 사제라면서 소년원에서 훔쳐 온 신부복을 꺼내 보인다. 소년원 출신으로만 의심했던 그가 신부라는 사실에 놀라 교회 관리인으로 일하는 어머니 리디아(리디아 보가치)에게 안내하고, 리디아는 다시 주임 신부에게 소개한다.

주임 신부는 이러저러한 질문을 다니엘에게 건네지만 그는 자신이 토마시 신부이며, 이제 막 서품을 받고 보좌 신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둘러댄다. 알코올 중독자인 주임 신부는 때 마침 다니엘이 자신의 교구로 오자 자신의 역할을 잠시 다니엘에게 떠맡기고 자신은 병을 치료해야 한다며 떠나버린다.

문신을 한 신부

얼떨결에 마을에 남게 된 그는 사제관에 머물게 되었고, 고해성사를 시작으로  마을에서 신부대행을 하게 된다. 다니엘은 스마트폰으로 고해성사하는 방법을 찾아보고, 소년원에서 토마시 신부를 보좌하면서 배운 것을 활용하는 등 신부대행을 잘 해 나간다. 독특하면서도 엄숙하지 않은, 개성 넘치는 젊은 신부는 이제 마을에서 인기 만점이 된다.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고 여러 일에 관여하게 되었지만 한 가지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얼마 전, 이 마을에서는 큰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사고로 엘리자의 오빠를 포함해서 차를 타고 있던 6명의 청년들과 상대편 운전자가 모두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그때 함께 죽은 상대편 운전자를 가해자 취급하며 마을에서 장례도 못 치르게 하고, 운전자 아내에게 저주하는 편지들을 보내면서 괴롭히면서 따돌림을 시켜 버린다.

계속 갈등을 빚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니엘은 ‘성체 축일’에 미사를 집전하면서 이 날 미사 때 모인 헌금은 사고 운전자의 장례를 위해 쓰겠다고 발표한다. 이러한 다니엘의 행보에 마을사람들은 화가 난다. 그 와중에 핀체르(토마시 지엥텍)라는 소년원 동기가 찾아와 돈을 주지 않으면 그의 정체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면서 다니엘은 위기를 맞는다.

핀체르의 고자질로 소년원에 있는 진짜 토마시 신부가 마을로 찾아와서 정체가 탄로나게 된다. 다니엘은 마지막 미사를 올리며 신부 의복을 벗어던지고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에 새겨진 타투 형상을 보여준다.

결국 소년원으로 다시 돌아온 다니엘. 그는 자신을 노리던 동료와 싸움에 휘말리게 되고, 한참 맞다가 상대를 쓰러뜨린 후 얼굴이 으스러지도록 주먹으로 내리친다. 초점을 잃은 듯한 눈은 제 정신이 아니다. 신부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원통함일까, 다시 소년원에 들어오게 된 분노일까? 아니면 여전히 변하지 않는 그의 폭력성이 되살아나는 걸까?

폴란드의 젊은 감독인 얀 코마사가 연출한 이 영화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 ‘기생충’과 경쟁했던 영화로 알려져 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사실 기생충보다도 더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원 제목은 ‘Corpus Christi(성체 축일)’인데,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행사를 말한다. 주인공이 신부가 되어 마을에서 이 날을 축하하며 미사를 집전하게 된 것에서 영화 제목을 따온 것 같다.

["고병수 의사의 ‘영화 속 의학의 세계’" 연재기사]

고병수 의사

김규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