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옵션 정착으로 평균 수익률 8~9%대

일본, 원금보장형 포함 ' 0~3%대' 머물러

미국과 호주는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면서 퇴직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연금시장 규모 또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미국은 1981년부터 '401K' 제도를 운용하며 연평균 8.6%대의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1992년부터 '마이슈퍼' 디폴트 옵션을 시행해온 호주의 최근 5년 수익률은 7.8%에 달한다.

선진국 연금시장의 경우에는 이런 학습효과로 인해 최근 글로벌 주식시장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401K의 경우, 주식시장 변동으로 인해 보수적인 상품으로의 일부 이동이 발생했지만 이는 전체 가입자 중 5%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장기투자를 유지하고 있고 올해 1분기 기준 401K 평균 적립비율은 14%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며 투자액을 늘리고 있다.


◆미국 401K 비중 70.2% = 14일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미국 퇴직연금 시장에서 확정기여(DC)형 적립금 10조달러에서 401K가 차지하는 비중은 70.2%에 달한다. 2분기 말 66%에서 4%p 증가했다. 이 중 뮤추얼펀드는 51.4%, 그 외의 주식은 48.6%를 차지했다.

'401K'는 미국 퇴직연금의 대표적 제도로 한국의 DC형과 비슷하다. 이 이름은 미국 근로자 퇴직소득보장법 401조 K항에 규정돼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

미국이 연금 선진국으로 성장한 것은 2006년 연금보호법이 통과되면서다. 이때 도입한 △'401K' 자동 가입제도 △적격 디폴트옵션 상품 허용 △소득세 유예 등 세제 혜택기준은 미국 퇴직연금제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401K'제도는 적립금을 투자해 얻은 배당금과 이익에 대한 소득세가 유예되고, 은퇴 후 적립금을 인출할 때 세금을 부과하는 과세이연 혜택을 제공한다. 특히 자동 가입과 디폴트옵션이 주요 특징이다. 근로자가 '401K'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의사표명을 하지 않는 이상 자동으로 가입된다. 또 별도의 운용 지시가 없을 경우 기업은 가입자에게 적용되는 디폴트 기여금 비율과 디폴트 투자 옵션을 결정한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기업들 대부분은 특정한 의사 표시가 없는 신규 직원에게 '401K'의 가입부터 적립금 기여율과 적립금 운용상품의 결정에까지 디폴트, 옵트 아웃, 자동가입이라는 넛지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를 통해 직원들의 '401K' 가입률을 높이고 투자 포트폴리오 결정을 지원하고 있다.


◆호주 마이슈퍼 주식 비중 56% = 호주도 일찍부터 디폴트옵션을 도입해 현재까지 높은 수준의 퇴직연금 수익률을 자랑하고 있다. 슈퍼펀드로 불리는 호주의 슈퍼애뉴에이션은 근로자의 퇴직연금 가입과 기업의 기여금(근로자 연봉의 9%)를 강제적으로 적립하게 한 퇴직연금제도로 1992년에 도입됐다. 정규직뿐 아니라 비정규직, 예술인 등으로 대상자를 확대한 슈퍼애뉴에이션은 가입자가 산업별, 기업별로 다양하게 조성된 기금을 선택해 가입하는 '기금형'으로 운영된다. 자산규모는 2000년대 들어 급속히 증가해 작년 9월 기준 퇴직연금 규모는 3조4000억호주달러(약 한화 3010조5640억원)에 달한다. 호주 건전성감독청(APRA)은 디폴트옵션으로 마이슈퍼(MySuper) 상품을 의무화해 투자 전략의 단순화, 수수료 표준화 등 비용 절감을 통해 품질을 향상시키고 투명한 정보 제공 및 기금간의 디폴트옵션 상품 경쟁을 통해 높은 퇴직연금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작년 9월 기준 마이슈퍼의 자산에서 주식 비중은 56%로 가장 높으며 채권과 부동산이 각각 14%, 8%를 차지하며 현금성 자산은 6%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호주 퇴직연금의 5년 평균 운용수익률은 7.8%이며, 각 기급별로는 기업형이 7.4%, 산업형 8.6%, 공적기금 7.9%, 소매형기금은 7%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강송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퇴직연금으로 유입되는 자금이 미국 증시에 안정적인 자금 공급원이 되고, 장기간 미국 증시 상승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일본 원금보장형 포함으로 실패 = 일본은 디폴트옵션이 실패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일본의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수익률은 글로벌 증시가 급등한 2020년을 제외하면 연 0~3%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2014년 일본 정부가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면서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포함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당시 일본 정부는 퇴직연금 수익률 향상을 위해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면서 얼마나 오래 운용 지시가 없을 때 디폴트옵션으로 전환하는지 등의 내용을 제시하지 않았다. 때문에 대부분 기업은 이 제도를 활용하지 않았다.

이후 2018년 일본 정부와 의회는 DC형 연금법을 개정하며 "가입자에게 운용 상품을 제시하고 3개월이 지났음에도 운용상품을 고르지 않으면 다시금 상품 선택을 재촉하라고 통지한다. 해당 통지 이후 2주가 경과했음에도 여전히 상품을 고르지 않으면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운용을 시작한다"고 명문화했다.

하지만 원리금보장 상품을 배제한 미국, 호주 등 퇴직연금 선진국들과 달리 원금 손실을 우려하는 국민 정서를 반영해 원금보장형을 디폴트옵션 상품 대상에 포함했다.

실제 원금 손실을 우려한 가입자들이 대거 원리금보장 상품으로 몰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일본 기업연금연합회에 따르면 2017년 70.7% 수준이던 원리금보장형 상품 비중은 디폴트옵션 도입 직후인 2018년 76.3%, 2020년 75.5%로 오히려 비중이 커져 제도가 유명무실해졌다. DC형 퇴직연금 내 디폴트옵션 비중은 30% 수준이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 상품을 포함시킨 나라는 일본과 한국뿐이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이 원리금보장형으로 쏠림이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산운용사들은 투자자에 유리한 퇴직연금 상품을 적극 개발해 매력을 끌어올려야 하고, 개인들은 투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편 스웨덴의 경우 2000년 프리미엄연금제도(PPM) 도입 초기 개인들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정책에서 연금가입자의 수준에 맞추어 이들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전환했다. 처음에는 캠페인을 통해 연금가입자가 자신들의 펀드를 직접 선택하는 것을 권장했지만 매 4~5년마다 퇴직연금 가입자의 투자 운용 행태와 성과를 검토하면서 연금가입자들이 일반적으로 금융 문해력을 가지고 있지 않고 투자에 관심이 낮을 뿐 아니라 행태적 편의도 겪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이후 스웨덴 정부는 TDF 유형의 세대 펀드로 구성된 디폴트옵션 펀드를 추천하고 있다.

["퇴직연금으로 부자되기" 연재기사]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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