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보장형 치중 우려 … 맞춤형 투자 허용 요구도

고객 이익 중심 원칙 … 사업자 관리 역량 높여야

우여곡절 끝에 자본시장의 숙원사업이던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도입됐다. 관련 상품 심의와 퇴직연금 규약 반영, 기업과 근로자의 디폴트옵션 선택 등의 절차를 고려할 때 본격적인 운영은 연말에나 시작되겠지만 금융업권의 치열한 경쟁은 벌써 진행 중이다. 특히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업계는 신상품과 각종 서비스를 잇따라 선보이며 퇴직연금 고객 유치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300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지 주목된다.

이런 가운데 디폴트옵션 연착륙을 위해서는 편입 가능한 상품 개수를 현재 3개에서 최대 10개로 늘리는 등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또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 제한 등 자사 이익 중심이 아닌 고객 이익 중심을 원칙으로 상품을 구성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함께 은퇴자들의 든든한 노후보장을 위해서는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투자 관리역량을 높일 필요성이 요구된다.


◆"상품 3개에서 5~10개로 확대" =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오는 8월 말까지 진행될 디폴트옵션 상품 심의위원회와 10월 최종 상품 공시를 앞두고 포트폴리오 구성과 상품 종류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사업자들은 심사를 통과한 상품만 회사에 디폴트옵션 포트폴리오로 제시할 수 있다. 원리금 보장상품 100%와 타깃데이트펀드(TDF), 밸런스펀드(BF), 스테이블밸류펀드(SVF), 사회간접자본펀드(SOC)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100% 구성할 수 있고, 이들을 3개 이하로 혼합한 상품도 가능하다. 예금·이율보증보험계약(GIC)등 원리금보장상품은 금리·만기의 적절성, 예금자 보호 한도, 상시가입 가능 여부 위주로 심의하게 되며, 펀드·포트폴리오 유형은 자산 배분의 적절성, 손실가능성, 수수료 등의 사항에 대해 심의한다.

각 포트폴리오 구성은 최대 3개 상품까지로 제한되어 있어 다양한 자산배분과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운영 역량 차별화를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이나 증권, 보험 등 업권 특징에 맞게 상품이 허용되면 업권별 특성을 살릴 수 있는데 현행 디폴트옵션은션 적격 상품을 3개로 묶어 놓은 형태에 지나지 않아 제대로 투자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비판이다.

김현욱 미래에셋증권 연금컨설팅 팀장(이사)는 "디폴트옵션에서 허용하는 상품을 넓혀 패키지화하는 상품범위가 넓게,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퇴직연금사업자들이 역량을 잘 발휘하기 위해서는 편입 가능 상품 개수를 최대 10개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무영 금융투자협회 상무는 "TDF에 쏠려 대동소이한 상품이 나오게 될 상황이 우려되고 상품선택지가 다양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라며 "가입자 선택권을 확대하기 위해 소폭이라도 상품 유형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호주에서는 포트폴리오에 채권, 사모펀드, 비상장주식, 부동산 등 포트폴리오에 다양한 자산을 편입할 수 있다.

증권가에서는 개인 맞춤형 퇴직연금 마련의 방안으로 일임형 디폴트옵션 도입 필요성이 강조되기도 했다. 오무영 상무는 "디폴트옵션 도입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형태는 투자자 맞춤 일임형 상품"이라며 "지금이라도 서비스 상향평준화를 위한 제도적 보완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 제한 필요 = 디폴트옵션 포트폴리오 심사기준에 대한 안내가 부실하다는 불만도 나온다. 특히 제기되는 문제는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 제한이 빠진 점이다.

만일 사업자가 같은 금융그룹 내 저축은행이나 자산운용사가 출시한 상품으로만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는 경우엔 자칫 증권, 보험, 은행을 낀 자산운용사의 계열사 밀어주기, 독식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또 '25%룰'의 효용성이 무너지며, 퇴직연금 수익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금융당국은 은행, 증권, 보험 등이 판매하는 전체 펀드 중 계열사 상품이 25%를 넘기지 않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는 디폴트옵션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연간 기준으로 제재하기 때문에 중간에 상한선을 넘겨도 연말에 기준을 맞추면 된다. 만일 연말에 25%를 넘더라도 1억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뿐이기 때문에 강행할 여지고 있다.

◆연금 전문자격제도 도입 = 디폴트옵션 연착륙을 위해서는 가입자에 대한 선행적 교육과 퇴직연금사업자들의 전문화된 역량 또한 요구된다.

김현욱 미래에셋증권 이사는 "실적배당형 상품 등을 접해보지 못한 경우 상품의 수익구조 비용 등에 대해 촘촘하게 교육해야하고 규약 개정 등 기존 퇴직연금보다 더 자세하게 안내해야 한다"며 "제도 전반에 대한 교육과 설명, 쉽고 편리한 접근성 제고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무영 상무는 "퇴직연금 사업자들과 가입자간 신뢰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금융업게 전문가들에게 위험관리 노후 컨설팅 등 사적연금 전문자격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초기 단계의 디폴트옵션이란 점을 고려해 시장 의견을 수용하는 한편 소비자 피해 방지와 투자자 교육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박종각 금융감독원 연금감독실장은 "디폴트옵션 정착을 위해 문제점으로 지적된 원리금보장형상품 포함과 선택형, 편입 가능 상품이 3개뿐인 점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공감한다"며 "하지만 제도시행 초기인 점을 고려해 차근차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 불편은 없는지, 사업자들 간 공정한 경쟁 등 피해예방 모니터링과 소비자보호에 힘쓰겠다"며 "금융회사 및 유관기관과 긴밀하게 소통해 세부적인 운영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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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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