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수(아버지) : 지난번에 이어서 시력 저하에 관한 영화를 볼 거야. 오늘은 시각장애를 가진 두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한국영화 ‘두 개의 빛: 릴루미노(Two Lights: Relúm?no, 2017)’를 주로 말해보자.
고동우(아들) : 이 영화는 상영시간이 짧았지만 완성도도 높았고, 진한 감동을 전해줘서 좋았어요.
고병수 : 영화에 등장하는 시각장애인들은 서로 다른 장애들을 가지고 있지만, 밝고 나름의 삶을 만들어나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어.
고동우 : 맞아요. 그리고 장애인들이 너무나 편하게 시력에 관한 전문용어들을 주고받아서 조금 놀랐어요. 시각장애를 구분하는 것도 이번 기회에 알아두어야겠어요.
고병수 : 그 부분도 이번에 한 번 다뤄보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공포와 불안감을 나타내는 게 전부가 아니라 사랑의 시작이라고 말해주는 영화가 있다. 31분짜리 짧은 상영 시간이지만 완성도와 감동이 100% 충전된, 허진호 감독이 만든 독립영화 ‘두 개의 빛: 릴루미노(Two Lights: Relúm?no, 2017)’이다. 제목에서 말하는 두 개의 빛은 감독이 의도한 것도 있겠지만, 관람자 각자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차피 예술 작품의 주제와 감동은 감상하는 자의 것이니까.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잘 쳤으나 점점 시력을 잃어 ‘저시력장애’를 가지게 된 서인수(박형식)는 지금은 피아노 조율사로 일하는 청년이다. 그와 달리 장난기 넘치고 밝은 성격의 안수영(한지민)은 냄새로 일하는 조향사(아로마 테라피스트)이다. 시력을 잃은 대신 청각과 후각으로 사는 청년들이다.

수영도 시각장애인인데, 7살 때부터 안 보이기 시작해서 지금은 한쪽 눈은 아예 안 보이고, 다른 쪽은 안개 낀 것처럼 뿌옇게 보일 뿐이다. 수영이 사진동호회에서 함께 출사(사진 찍으러 나가는 일)를 다니면서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해도 인수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점점 잃어 가는 시력 때문에 걱정과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수는 동호회에서 만난 시각장애인들이 한결같이 밝은 척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안 보이고 답답한데 뭐가 재미있다는 말인가?

시력의 원리와 장애

물체를 본다는 것은 눈의 각막과 수정체(렌즈)를 거쳐 안구의 뒤편에 있는 망막에 상이 맺히면서 이루어진다. 이 정보가 시각신경을 타고 대뇌로 전달되면서 우리는 물체를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중 어느 한 곳이라도 고장이 나면 시력에 문제가 생긴다. 각막은 외상을 입거나 염증이 생기면서 문제가 될 수 있고, 수정체는 백내장이라는 것으로 시력이 떨어질 수 있다. 망막 손상은 심각하고 회복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고혈압이나 당뇨로 인한 망막증, 나이가 들면서 변성되는 경우, 안구 뒷벽에서 떨어져 나오는 경우 등이 있을 수 있다.

시각신경의 신호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도 시력 문제가 생긴다. 뒤통수 대뇌피질은 시각을 총괄하는 중추인데, 여기뿐만 아니라 앞쪽의 눈에서 뒤에 있는 시각중추까지 시각 정보가 전달되는 동안 뇌 어디든 손상을 받으면 심각한 시각장애를 얻을 수도 있다.

이렇듯 시각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상당히 많으며, 시력이 저하된 정도나 시야를 기준으로 장애를 판단한다. 심하게 시력을 잃게 되면 과거에는 소경, 맹인으로 부르거나 존칭 의미로 장님, 봉사라고도 했다. 모두 비하 표현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근래에는 ‘시각장애인’으로 통일해서 부르게 되었다.

영화에서 인수가 사진동호회 사람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RP’ 장애라고 소개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생소한 용어지만 실제로도 한국RP협회라고 쓰는 걸 보면 같은 유형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끼리는 일상어라서 편안하게 말하고 있다. RP는 ‘망막색소변성증(Retinitis pigmentosa)’의 영어 약자이고, ‘망막(Retina)의 염증’이란 뜻과 ‘색소(Pigmentation)’가 합쳐진 의학용어이다.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으나, 눈으로 들어온 빛의 신호를 받아들이는 망막에 색소가 쌓이면서 망막의 기능이 떨어지는 질환이다. 유전 질환으로서 망막에 색소가 침착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유전자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RP 장애를 가진 인수는 20대 중반 때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해서 시야가 좁아지면 직진으로 겨우 걸을 정도이다. 점점 그의 시력은 완전히 나빠질 것이다.

자신의 방법으로 밝은 세상을 만나는 사람들

사진동호회 사람들은 인수와 다르게 모두 밝고 건강하다. 저시력 장애인이라서 잘 안 보이지만 밤낮은 구별하고 살아서 행복하다는 사람, 부분만 보인다는 오경아씨(신신애)는 늘 농담도 잘 하고 전맹인 남편과 함께 다정하다. 그들은 자주 봉사자들과 출사를 가고, “만져보고 느끼고..... 눈 이외 다른 감각을 통해서 피사체를 느끼세요. 우리가 아름다움을 보는데 눈이 반드시 필요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느껴보세요.”라는 지도 선생의 말처럼 각자 나름의 감각을 가지고 사진들을 찍어서 전시회도 연다.

영화에서는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가 녹내장(Glaucoma)을 가지고 있어서 그림들이 모두 뿌옇게 그려졌다고 아는 척하는 인수의 말이 있다. 녹내장(綠內障)은 주로 안압이 높아져서 시신경을 손상시키게 되어 실명까지 이르는 눈 질환이다. 수정체 주변을 적시고 흡수되어 사라져야 할 방수란 것이 흡수되지 못하고 남아서 압력이 높아지는 경우가 주된 원인이지만, 안압이 정상인 경우도 있다.

오래전부터 쓰던 이 녹내장이란 단어는 사실 잘못 사용하는 말이다. 내장(內障)이란 단어는 한의학에서도 사용하던 말로, 눈 안쪽의 장애란 의미이다. 창자를 말하는 내장이 아님. 눈 안에 병이 생겼다는 것으로 반대로는 외장(外障)이란 표현을 쓰면서 눈곱 등 눈 밖에 병이 생기는 경우로 구분했다. 내장이란 말에 눈동자가 녹색을 띤다고 해서 녹내장이란 이름이 만들어졌는데, 사실 이 질환은 거의 녹색을 띠지는 않는다.

다른 안과 질환인 백내장(白內障)은 수정체 혼탁으로 생기는 것이고, 실제로 하얗게 보이니까 이름이 적절하다. 인상파 화가인 모네는 그의 인생 후반기인 1910년대 약 10년 동안만 녹내장으로 고생했고, 그림을 그릴 때도 상당히 불편했지만, 1924년경 녹내장 수술을 하면서 호전됐다고 한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인수가 한 말은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이 영화가 가지는 몇 가지 특징을 소개한다. 한지민과 박형식, 신신애 배우들은 서로의 시각장애 상태를 연기하기 위해 눈동자가 정면을 바라보지 않는 것처럼 초점이 안 맞는 상태 만들기를 엄청 연습했다고 한다. 그런 상태를 일부러 만드는 것이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서 영화에서 그들을 보면서 감탄하게 된다.

시각장애인에 대해 우리가 주의할 점도 영화에서는 슬쩍 내보인다. 인수를 만나러 가는 공원에서 장애물 때문에 수영이 어려움을 겪자 지나가는 사람이 도와주겠다면 갑자기 팔을 붙잡을 때 수영은 깜짝 놀라게 된다. 시각장애인의 몸을 함부로 만지려고 해서도 안 된다. 위협을 느끼기 때문이고, 만지거나 잡을 때는 일일이 얘기하고 동작을 설명하면서 해야 한다.

영화에서는 저시력 장애인을 위한 시각보조기인 ‘릴루미노(Relumino) 안경’이 등장해서 인수나 수영이 흐릿하지만 상대방이나 물체를 볼 수 있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감독은 잔존 시력이 남아 있는 시각장애인이 앞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그 제품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제목에 나온 ‘두개의 빛’이라는 게 원래 시력을 잃기 전에 자기가 봤던 빛과 이제 새로이 기계를 통해 보이는 빛을 얘기할 수도 있다. 아니면 자신이 보았던 빛과 달리, 안 보이는 것이지만 사랑이라든지 출사할 때 선생이 말한 것처럼 아름다움을 느끼는 다른 감각을 말할 수도 있다.

‘렐루미노(Relúm?no)’는 라틴어로 ‘다시 밝게 한다’는 뜻이다. 라틴어 특성상 그대로 읽는 경향을 생각한다면 제목에서 영어식으로 쓴 ‘릴루미노’는 잘못 쓴 것이고, 렐루미노라고 해야 하지 않았을까?

시각장애인을 대할 때 알아야 할 점
• 시각장애인이 혼자서 계단을 이용할 때는 난간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 줌
• 시각장애인과 소통하려고 할 때 갑자기 몸을 건들면 안 됨(안 보여서 놀라게 됨)
• 시각장애인을 안내할 때는 흰 지팡이의 반대편 팔을 잡으면서 반 보 앞에서 걷도록 함 (흰 지팡이 쪽 팔을 잡으면 시각장애인이 불안해할 수 있고 방향을 잡기 어려워함)
• 시각장애인과 인사를 하게 될 때는 멀리 있을 때보다는 가까이 왔을 때 인사를 건네는 것이 좋음

["고병수 의사의 ‘영화 속 의학의 세계’" 연재기사]

고병수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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