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수(아버지) : 장애인 관련 영화들을 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청각장애 작품을 보자. ‘나는 보리(Bori, 2018)’는 청각장애를 가진 집안에서 유일하게 장애가 없는 아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어땠니?

고동우(아들): 부모와 남동생 모두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가족들이 너무 밝아서 놀랐어요.

고병수 : 장애인들이라고 우리가 다르게 볼 필요는 없을 거야. 비장애인들과 다를 게 없어. 희노애락이 다 있을뿐더러 이 영화의 가족들은 그 중에서도 유난히 화목하고 긍정적으로 살고 있는 것 같더라.

고동우 : 그리고 영화가 장애인을 다루면서도 아주 세밀하게 다루고 있어서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어요. 영화를 보면서 수어의 원리를 알게 됐어요.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명사 중심으로 나타내면서 의미전달을 하더라고요. 이 영화는 모두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듭니다.


전체 시간을 통틀어 대사도 적고 아주 조용한 영화가 있다. 몇분 동안 눈을 감고 있으면 영상이 켜져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말없이 흐르는 영화, 바로 '나는 보리(Bori)'이다.

영화 '나는 보리' 포스터.

11살 보리(김아송)는 강원도 주문진의 어촌 마을에 산다. 남들처럼 웃기도 잘 하고 친구들과도 즐겁게 지내는 평범한 아이지만 한 가지 고민이 있다. 집에서 다른 가족들과 격 없이 소통하고 어울리고 싶은 것.

그렇다고 보리가 가족들로부터 외면받거나 관심을 못 받는 건 아니다. 자기 빼고 엄마, 아빠, 남동생 모두 청력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자기만 말하고 들을 수 있고, 그들이 수어로 대화를 하며 즐거워할 때면 자기는 소외받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학교 가는 길이면 중간에 있는 사당 앞에서 매일 소원을 빈다. '나도 귀를 멀게 해서 엄마, 아빠, 동생과 같이 어울리게 해주세요.'

귀가 멀고 싶어하는 소녀

아빠와 남동생 정우는 선천성 농아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엄마는 어릴 때 심하게 열병을 앓은 후 다음 날부터 청력을 잃었다고 한다. 아마 홍역을 앓았던 것이 아닌가 짐작할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이 말 못하고, 소리도 못 듣는 자기를 보고 손가락질해서 아빠는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조용히 바닷가에 앉아 낚시하는 것을 좋아했다며, 엄마는 낚시하다가 만났다며 보리에게 자랑한다. 그리고 보리가 같이 수어를 하면서 함께 하니까 좋다고 한다.

친구 말대로 리시버를 귀에 꽂고 음악을 최대한 크게 틀고 귀를 상하게 하려고 해봤지만 별로 신통치 않다. 보리는 바닷일 하는 해녀들이 귀가 먹먹하다는 걸 알고는 일부러 바다에 뛰어들어버린다.

다행히 겨우 건져졌어도 정말로 청력을 잃었는지 안 들린다고 하는 보리. 소리를 못 들으니 좋은 점은 소원대로 가족들과 편하게 수어로 대화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친구들이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무시하거나 자기에게 말도 안 걸어온다는 것.

그제서야 보리는 깨닫는다. 동생 정우가 축구도 잘하고 활발한 아이지만 학교 수업 때는 못 알아들으니까 잠만 자고, 친구들과 있을 때도 그림자 취급당했다는 것을, 아무도 말도 못하고 귀가 안 들리는 정우에게 말을 걸거나 상대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어의 원리를 알게 하는 영화

영화는 위기나 갈등 같은 큰 굴곡이 없이 편안하게 지나가지만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여러번 느끼게 된다. 일부러 감동을 주려는 것도 아니고 너무 솔직한, 그리고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결국 보리는 귀가 멀지 않았어도 그런 것처럼 속여서 가족과 함께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동생 정우가 청각장애라서 축구팀 주전에서 빼지는 현실, 그런 정우는 수업 때나 친구들 관계에서 계속 소외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리가 귀가 안 들리는 척 하면서 깨달았을 때, 아빠가 귀가 안 들리는 보리가 오히려 더 좋다고 할 때, 우리가 잘 듣고 볼 때는 못 느꼈던 일들을 보리는 경험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런 것들을 감독은 관객들에게 전달하려 했던 것 아닐까?

영화에서는 수어로 가족들이 대화를 나눌 때 자막에 그 뜻을 전달하기 위해 번역 내용을 써준다. 그런데 이 표현 방법이 좀 독특하다. 완전한 문장이 아니라 간단한 단어 중심의 표현을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빠가 "보리야, 내일 할아버지 댁에 가니?" 이렇게 물을 때 자막에는 '보리', '내일', '할아버지', '가?' 이렇게 표시된다. 조사나 어미는 군더더기로 버려도 되고 필요한 상황에서만 약간 표현할 뿐이다. 실제 수어가 전달하는 방식이다. 감독이 설명은 안했지만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수어를 조금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자막이 왜 그렇게 표현됐는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 정도로 생각이 깊다.

고병수 의사

["고병수 의사의 ‘영화 속 의학의 세계’"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