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수 : 이번에는 정신질환을 긴장감 넘치는 영화로 만든 작품 두 개를 보자. ‘우먼 인 윈도(The Woman In The Window, 2020)’와 ‘프랙처드(Fractured, 2019)’라는 영화야.
고동우(아들) : 두 영화 모두 끝까지 보지 않으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하는 의문을 계속 갖게 만드는 영화예요.
고병수 : 이 영화들도 조현병, 망상, 광장공포증, 관음증 등 의학지식을 조금 알고 보면 이해가 잘 되지만, 모르고 볼 때는 반전이 있는 서스펜스 영화로만 보게 되지.
고동우 : 제가 줄거리를 엮을 테니까 중간에 의학 관련 부분들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우먼 인 윈도(The Woman In The Window, 2020)’ 얘기를 먼저 한다. 어두운 밤, 눈 내리는 뉴욕의 도시 외곽길을 가족을 태우고 운전하던 애나 폭스(에이미 아담스)는 잠시 한눈을 팔다가 차가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를 겪는다. 자신은 겨우 살아났지만 남편과 아들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만다. 이후 애나는 죄책감에 광장공포증과 우울증이 생겼고, 집밖을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채, 거실도 늘 어둡게 하고 산다. 소아정신과 의사이면서 애나 자신도 가끔씩 찾아오는 정신과 의사로부터 상담을 받는다.

애나는 10개월 넘게 집에 틀어박혀 있다 보니 나쁜 버릇이 생겼다. 주변 집들을 훔쳐보는 것이다. 길 건너 집으로 러셀 가족이 이사를 오고, 그 집의 부인 제인 러셀(줄리안 무어)과 그의 아들 이든이 차례로 자신을 방문하면서 친해지게 되지만, 남편인 엘리스테어 러셀(게리 올드만)은 왠지 마음에 안 든다.

일어나지 않은 살인사건을 목격한 여인

그러던 어느 날 찾아왔던 제인이 배에 칼을 맞고 죽는 장면을 창문 너머로 보게 되어 신고하지만, 형사와 함께 찾아왔을 때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살인범은 남편 엘리스테어일까, 아니면 지하에 세 들어 사는 데이빗일까? 살인이 정말 일어나기는 한 걸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약물을 너무 많이 복용해서 환영을 본 것일 수도 있다. 애나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 이처럼 이웃집을 엿보면서 엄청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것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이창(Rear Window, 1954)’에서도 볼 수 있다. 오래된 영화이지만 촬영기법이나 긴장감을 만드는 편집 수준은 히치콕 감독의 뛰어남을 느낄 수 있어서 지금 보더라도 놀랍다.

우먼 인 윈도 영화는 계속 애나가 왜 제인이 살해됐는지를, 범인은 누구인지 쫓아가는 이야기를 긴장감과 계속되는 의문을 가지고 보게 만든다. 제인의 남편 엘리스테어 러셀과 제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지하방의 데이빗을 강력한 용의자인 듯 몰고 가다가 결말에 가서는 전혀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런 영화 기법을 ‘맥거핀 효과(McGuffin effect)’라고 하는데, 역시 히치콕 감독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수상한 물건이나 사람에게 관객들의 관심을 끌게 하지만 전혀 다른 것에서 해결이 되게 만드는 기법이고, 그의 영화 제작 동료인 앵거스 맥패일(Angus MacPhail)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주인공 애나의 문제가 광장공포증, 우울증, 관음증, 약물 부작용, 망상 중에서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되지만 약물 부작용과 망상은 영화의 결말을 통해 아니라는 게 밝혀진다. 하지만 많은 관객들이나 영화를 평론하는 사람들조차도 애나가 주변 집들을 훔쳐보는 증상을 두고 관음증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됐다.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관음증(觀淫症, Scoptophilia, Voyeurism)’은 다른 사람의 성기나 성행위 혹은 몸매를 보면서 성 만족감을 느끼는 ‘이상 성욕’을 말한다. 단어에서도 ‘음(淫)’은 음란하다는 뜻을 지닌다. 다행하게도(?) 이 사람들은 그 대상자와는 성행위를 하지 않고 단지 보고 자위를 하면서 성욕구를 해결하게 된다. 정확한 정신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애나는 관음증이 아니라 단순한 ‘훔쳐보기’를 하는 것이고, 도덕이나 윤리 면에서 문제가 될 뿐이다. 그래서 애나와 상담하는 정신의학과 의사도 “옆집을 훔쳐본다는 것은 주변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우울증이 좋아진다고 할 수 있지.”라고 말하며 관음증이 아닌 훔쳐보기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병원 인물들이 이상하다

정신의학 영역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들을 보면 정상이 아닌 사고로 행동하게 되는 망상, 자기를 조종하는 목소리가 들린다는 환청, 죽은 사람이 보인다는 것과 같은 환시 등이 있다. 이런 것들은 조현병을 비롯한 몇 가지 정신질환에서 나타나는데, 이번 영화는 좀 독특하다. ‘프랙처드(Fractured, 2019)’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들의 온갖 상상력을 쥐어짜게 만든다. 레이(샘 워싱턴)는 부인 조앤(릴리 래이브), 어린 딸 페리(루시 카프리)와 함께 추수감사절 식사를 하기 위해 차를 몰고 가던 중 휴게실에 잠시 들르게 되었다. 잠깐 사이에 딸 페리가 근처 공사장 지하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를 구하려던 레이까지 떨어지고 만다. 이때 엄마인 조앤이 달려오고.....

다행히 페리는 외상을 입고 의식은 괜찮아서 급히 인근 병원 응급실로 가지만, 이 병원 아무래도 이상하다. 접수원부터 간호사, 의사들까지..... 병원 밖에서는 수상한 물건이 차에 옮겨지고..... 병원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잠이 들었다 깬 레이는 지난밤에 CT를 찍으러 간 딸과 동행한 부인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병원 직원들, 딸을 진료했던 의사들 모두 물어봐도 그 아이는 진료한 적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수상하게 여겼던 병원은 역시 레이의 짐작대로 딸과 부인을 숨기고 있는 게 확실하다. 그렇다면 장기를 꺼내 팔아넘기고 죽여 버린 걸까? 여기 직원들은 모두 한 패?

레이가 경찰과 정신과 의사를 대동하고 딸이 다쳤던 공사장으로 갔을 때 오히려 그가 외상을 입고 망상을 가지게 된 거라고 설명을 한다.

“당신의 마음이 대체 현실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가짜 현실이죠. 트라우마에서 자신을 지키려고요.”

영화는 어느 정도 사실이 드러나는 사고 현장에서 끝날 듯 하다가 가족을 찾아내려는 처절한 노력과 보이지 않는 비밀이 다시 폭력적으로 부딪히면서 결말로 이어진다. 제목 프랙처드는 ‘골절(Fracture)’에서 파생한 단어로, 주인공 레이가 공사장 바닥에 떨어져서 입은 머리뼈 골절과 그로 인한 뇌손상을 뜻하는 말이다.

두 영화 모두 주인공의 처지에서 그려진다. 원인이 강한 심리적 충격이든, 외상에 의해서든 그들의 세계에서는 현실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현실의 세계가 돌아가는데, 망상이나 문제를 가진 경우에는 억압, 반동형성, 투사 등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방어기제를 동원하며 대립하게 된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단순히 주인공들이 이상하게 행동하는구나, 혹은 반전이 있구나, 정도로 보는 것보다 그 사람의 상황과 심리가 어떻게 엮어져서 저런 현상이 나타나는구나, 하면서 심리학자인 것처럼 분석하며 영화를 봐도 좋다.?

["고병수 의사의 ‘영화 속 의학의 세계’" 연재기사]

고병수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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