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명 행렬, 네방향에서 모여 충돌

수백명 심정지 … 구조대 속수무책

구조동참 시민 "얘들아 미안해" 통곡

30일 오전 9시, 참사가 일어난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일대는 무거운 침묵에 싸여 있었다. 10~30대 청년 150여명이 한순간에 생명을 잃은지 채 12시간이 지나지 않은 때였다.

핼러윈 전부터 붐빈 이태원 ㅣ 이태원 참사가 벌어지기 하루 전인 28일 저녁에도 이태원관광특구 일대는 인파로 붐볐다. 연합 한종찬 기자


현장 주변 가게들 대부분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간밤 참사 여파로 문을 열지 못하거나 사망자에 대한 애도 글과 함께 영업을 멈춘다는 공지를 붙여놓은 점포들도 여러곳 눈에 띄었다.

하지만 녹사평역에서 이태원역에 이르는 이태원 거리 곳곳에는 간밤 참사의 상흔이 뚜렷했다. 현장에서 친구를 잃었거나 구조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혼자 혹은 둘씩 모여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도로 통제 않고 경찰 안보여 = 지하철로 귀가하려다 녹사평역 앞에서 주저앉은 김예원(가명·23)씨는 현장에서 본인만 빠져 나왔다는 죄책감에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잡고 있던 친구의 손을 놓치던 순간이 계속 떠올라 현장을 떠날 수가 없다고 했다.

박동진(가명·68)씨는 이태원역 앞에서 오열하고 있었다. 박씨는 당일 저녁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다 사고 소식에 현장에 달려가 구조에 참여했다. 사고 이후 충격이 가시지 않아 밤새 거리에서 소주를 마셨다는 박씨는 "아가들아 미안해, 내가 힘이 없어서 너희들 빼내지 못했어. 심폐소생술도 잘 못해서 너희들 구하지 못했어, 얘들아 미안해"라는 말을 한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강아지를 안고 현장 근처를 서성이던 클라라(28)씨는 참사 기억에 몸서리를 쳤다. 현장에 친구나 아는 사람이 있던 건 아니지만 골목에 뒤엉킨 사람들 비명과 살려달라는 아우성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클라라씨는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을 거 같다"며 "이태원에서 계속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삼삼오오 모여 간밤 사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민들은 지자체나 경찰의 질서유지 활동, 특히 도로통제에 대한 아쉬움을 성토했다. 이태원에 60년째 거주하는 전애자(가명·78)씨는 "2주인가 3주 전엔 이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였지만 도로를 막고 행사를 하니 인파가 분산됐다"며 "안 그래도 넓지 않은 이태원 거리에 차까지 다니니 젊은이들이 인도와 골목으로 몰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현장 맞은편 음식점에서 일하는 한 직원도 "도로 통제를 하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올해 핼러윈 축제에 예년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몰릴 건 누구나 예상했는데 경찰들이 안 보였다"고 말했다.

일부 상인들은 도로통제는 결과론적인 얘기라고 했다. 주최측이 없는 행사인데 통제를 누가 요청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기간 이태원에 몰리는 인파와 2주 전 치러진 용산구 지구촌축제를 떠올리면 아쉬움이 남는다는 목소리가 훨씬 컸다. 당시 용산구는 녹사평역에서 해밀톤호텔까지 이태원 중심가 도로는 전면 통제했고 해밀톤에서 한강진역 사이는 부분통제를 실시했다. 이틀간 100만명에 달하는 인파가 몰렸지만 참가자들이 도로와 골목으로 분산되면서 밀집도 문제가 해결됐다.

참사가 벌어진 해밀톤호텔 옆 골목은 폭 4~5m, 길이 45m의 좁은 길이다. 넓이로 따지면 182㎡(55평)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250명이 들어차도 빽빽한 공간에 동시에 1000명 가까운 사람이 뒤엉키면서 154명이 압사하는 참사를 불러왔다.

해밀톤호텔 뒷편엔 이태원에서 가장 유명한 클럽 1~3위가 다 몰려있다고 주민들은 말했다. 클럽에서 나오는 이들과 입장을 대기하는 이들, 골목을 이동하던 행렬이 모두 섞이면서 통제 불능, 급기야 서 있는 채로 심정지와 질식사를 맞았다.

미국에서 유학 중이라는 한 시민은 "미국은 소방의 최우선 기준을 단위면적당 동시 수용가능 인원으로 엄격하게 단속, 화재와 붕괴 등 재난에 대비한다"면서 "도대체 한꺼번에 얼마나 많은 인원이 클럽에 들어간건지 모르겠다. 우리 소방 기준도 시설 뿐 아니라 동시수용(입장) 인원 수를 규제 기준으로 삼는 등 현실을 반영한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희생자에게 책임 돌려" = 이태원에서 다문화 찬양목회를 하는 존 홍 목사는 "해마다 핼러윈 행사가 반복됐고 이번엔 더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라고 모두 예상했다"며 "안전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해 청년들이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일부에서 희생당한 청년들에게 잘못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러면 안된다"며 "이렇게 많이 몰릴 줄 몰라서 대비를 못했다는 정부 관계자 얘기는 책임을 희생자들에게 돌리는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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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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