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례 '법령 위반' 폭넓게 인정

생명보호의무 위반 책임 추궁 가능

헌법·재난안전법·경찰직무법에 명시

일부 고위 관료들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을 연이어 내놓자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책임 공방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데, 헌법이나 대법원 판례는 국가의 국민 안전에 대한 책임을 무한대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매뉴얼이나 법적 규정이 모호하다는 회피성 발언만으로 책임자들이 법적 책임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은 물론 관련 법률에는 국민 안전에 대해 사실상 국가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헌법 제7조 1항에서는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34조 6항에서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특히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내우ㆍ외환ㆍ천재ㆍ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ㆍ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하여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ㆍ경제상의 처분을 하거나 이에 관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발할 수 있다'(제76조 1항)고 규정하고 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은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한 경우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 의무임을 확인하고 있다. 특히 제4조 1항과 2항에서는 국가와 지자체가 재난이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책무, 사고 예방 등을 해야 하고, 안전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경찰관직무집행법 제 2조와 제5조는 경찰공무원에게 국민의 생명·신체 보호 의무를 인정하고,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칠 사고의 경우 관리자 등에게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의무를 규정한다. 이러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피해자는 국가에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국가배상법 제2조 1항에는 국가나 지자체 공무원 등이 직무 집행시 고의·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손해를 입히는 경우 등에 손해를 배상하고, 국가는 과실이 고의 또는 중대과실이 있는 공무원에게 구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경우 대법원은 국가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대표적인 게 '중곡동 주부 살인 사건'이다. 경찰이 출소한 범죄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또 살인을 저질렀고, 유족은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2심은 유족에 패소 판결을 했지만 올 7월 대법원은 유족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며 서울고법에 파기 환송했다. 이는 국가배상청구 소송에서 명시적 법률 규정이 없는 경우에도 공무원의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국가배상청구권은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에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성립할 수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법령 위반'을 폭넓게 인정해 명시적으로 법령에 공무원의 작위의무가 규정돼 있고 이를 위반한 경우만 의미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본다.

대법원은 "법령 위반이란 인권존중·권력남용금지·신의성실과 같이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준칙이나 규범을 지키지 않고 위반한 경우를 포함해, 널리 객관적인 정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경우를 포함한다"고 설명한다.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등에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어 국가가 초법규적, 일차적으로 위험 배제에 나서지 않으면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등을 보호할 수 없는 경우 법령에 명확한 근거가 없더라도 국가나 관련 공무원에 대해 위험 배제 의무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이태원 참사의 경우 국가나 지자체, 경찰공무원의 사고방지의무를 명시적으로 규정한 법률은 없지만,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대형 사고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국가 등이 적절한 안전방지의무 등 적절한 사고방지조치를 하지 않은 국가 등의 잘못으로 무고한 국민의 생명을 잃었기 때문에 생명보호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을 물을 소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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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열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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