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검증·영상분석·목격자진술 … 경찰도 수사 대상 주장도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경찰 수사가 본격화됐다. 사고 현장에서 '밀어'라고 외친 무리가 있었다는 증언이 이어지면서 경찰은 상황을 촉발한 '트리거'(방아쇠) 상황이 있었는지 확인에 나섰다.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감식하는 국과수 ㅣ 지난달 31일 오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핼러윈 압사 참사' 현장감식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하지만 일부에서 '경찰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어 책임과 비난을 개인에게 돌리려 한다는 비판이 예상된다.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에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475명의 수사 인력이 투입된 서울청 수사본부에서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수사의 핵심은 사고 당시 상황을 파악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참사의 방아쇠로 작용한 결정적 순간이 존재했는지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진술의 신빙성이 있는지를 영상 분석과 함께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용산구청 수사 가능성 = 경찰은 이를 위해 사고 주변 42개 장소에 설치된 폐쇠회로(CC)TV 52대를 확보해 분석하고 있다. 사고 당시 상황을 담은 소셜미디어 영상물에 대한 정밀 분석도 진행 중이다. 부상자, 주변 상가 관계자 등 목격자 44명에 대한 조사도 마친 상태다.

일부 진술과 같이 실제로 특정 인물들이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밀어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면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고의나 과실 여부가 인정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많다.

이날 오후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사고 현장 일대에서 약 1시간 50분간 합동 감식도 진행했다. 감식반은 수사에 필요한 기초 자료 확보와 전반적인 상황 파악을 위해 각종 장비를 들고 현장 골목과 T자 모양으로 만나는 이태원 세계음식거리까지 오갔다. 컴퓨터상에서 골목을 3차원으로 구현하기 위해 레이저 스캐너로 촬영하는 한편 골목 경사도도 다시 측정했다.

온라인 상에서는 참사의 원인으로 '마약' 영향이 거론됐지만 경찰 조사 결과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관할 구청인 용산구청의 책임 소재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남 본부장은 "사고 경위를 정확히 확인해야 구청 책임 소지도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사고 직후 현장을 담은 사진과 영상을 비롯해 희생자 개인 정보 등이 온라인상에 공유되는 것과 관련해선 위법성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남 본부장은 "고인 명예훼손 게시글 6건을 대상으로 입건 전 조사에 착수했다"며 "63건에 대해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이트 운영자에게 요청해 삭제 및 차단 조치했다. 악의적 신상 유포 등에 대해선 고소 전이라도 적극적으로 수사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위기 상황 관리 실패 논란 = 수사가 속도를 내는 가운데 일부에서 '경찰 책임론'이 제기되면서 경찰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경찰도 수사 대상이란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온라인 상에서는 참사 직후부터 사고 발생 전후로 경찰의 위기 상황 관리가 적절했는지 여부를 짚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핼러윈 축제에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음에도 경찰이 사고 현장 통제에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더 많은 경찰관을 투입했어야 했으며 선제적으로 질서유지에 나섰어야 했다는 비판이다.

특히, 경찰이 안전 관리보다 성범죄와 마약 수사 등 치안 강화에 초점을 맞춘 것도 현장 통제 실패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현장에 투입된 경찰 병력은 집회에서 안전 통제를 담당하는 경비 인력이 아닌 형사·교통 인력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국수본 관계자는 "과거부터 경찰의 (핼러윈) 대응 방식은 불법을 단속하거나 범죄 예방, 교통 소통을 위한 부분에 집중한 만큼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면서 "다수 인원의 운집으로 인해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는 예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지하철 무정차 안된 책임 놓고 진실 공방 = 이런 가운데 경찰과 서울교통공사가 참사 당일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의 무정차 통과 조치가 안된 책임 소재를 놓고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31일 '사고 당일 경찰이 사고 발생 1시간 후에야 지하철 무정차 요청을 했다'는 언론보도와 관련해 참사가 나기 전에 공사 측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관할인 용산경찰서 112상황실장은 29일 오후 9시 38분쯤 교통공사에 무정차 통과를 요청했다. 첫 신고 시각(오후 10시 15분) 약 37분 전이다. 하지만 공사 관계자가 '승하차 인원이 예년과 차이가 없다'며 정상 운영을 결정했다는 게 경찰의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애초 공사 측이 밝힌 것과 배치된다. 공사는 이태원역 무정차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을 두고 비판이 일자 용산서가 참사 발생 약 1시간 뒤인 29일 오후 11시 11분쯤 112상황실을 통해 이태원역에 지하철을 무정차 통과시킬 수 있는지를 문의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경찰은 참사 사흘 전인 지난달 26일 용산경찰서와 용산구청·이태원관광특구상인연합회 등이 참석한 '핼러윈 기간 시민 안전 확보 간담회'에서도 이태원역장에게 대규모 인파가 모이면 이태원역 무정차 통과를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요청에 이태원역장은 "그동안 핼러윈 때 이태원역을 무정차로 운행한 사례는 없지만, 필요할 경우 현장에서 판단해 조치하겠다"고 답변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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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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