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장관·서울시장 '사과'

정부책임론엔 "경찰 수사"

여당 내부에서도 "문책론"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사흘 만에 정부 관계자들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참사책임엔 여전히 선을 긋는 분위기다. 경찰의 부실대응 등이 드러나면서 정부책임론이 확산되고 있다. 여당 내부에서도 문책이 불가피하다는 기류다.

사과하는 경찰청장-행안부 장관--서울시장 ㅣ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가운데)이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사과하고 있다. 이날 윤희근 경찰청장(왼쪽)은 경찰청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청 브리핑실에서 고개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먼저 고개를 숙인 건 윤희근 경찰청장이다. 윤 청장은 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 "현장의 심각성을 알리는 112신고가 다수 있었던 것이 확인됐다"며 "하지만 112신고를 처리하는 현장대응이 미흡했다"고 사과했다.

그동안 "경찰이 책임질 일이 아니었다"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보고에 앞서 "국민안전을 책임지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이 자리를 빌려 국민여러분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관할 지자체인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도 이날 머리를 숙였다. 오 시장은 서울시청사 2층 브리핑룸에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끼며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고, 박 구청장도 "관내에서 발생한 참담한 사고에 대해 구청장으로서 용산구민과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들이 이처럼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고개를 숙인 것은 경찰의 부실대응 사실이 드러나고, 외신을 포함해 언론들의 정부책임론 보도가 잇따르면서 악화된 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 참사 발생 약 4시간 전부터 "압사당할 것 같다"는 112신고가 쇄도했지만 경찰은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외신들도 참사 초기부터 "분명 막을 수 있었다"며 정부책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태원 참사의 정부책임론에 대해선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에 대한 무한책임이 있다"(이상민 장관)거나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시장"(오세훈 시장) 같은 원론적 사과에 그쳤다. 사고책임을 묻는 질문에는 하나같이 '경찰수사 이후'로 미뤘다.

정부의 이 같은 태도는 참사 직후부터 이어졌다. 대통령실이 나서 '참사 대신 사고' '희생자 대신 사망자'라는 표기지침을 내렸다. '용산'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도 했다. 이번 참사가 세월호 참사처럼 국가에 책임을 묻는 형태로 발전하는 걸 막아보려는 의도로 보인다. 인사혁신처가 '글자 없는 검은색 리본'을 달도록 한 것이나, 행안부가 분향소를 실내에 설치하도록 한 것 역시 이번 참사로 인한 정부책임론 확산을 우려한 조치로 해석된다.

하지만 정부 책임론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문책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 여당 의원은 "경찰의 부실대응 등이 드러난 상황에서 정부책임론을 피하기는 어려워졌다"며 "여당 내에서도 책임자 문책이 불가피하다는 기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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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일 구본홍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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