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투입 느려, 사고 전조 느껴" … 30분 갇혀 있다 기절, 온몸에 '피멍'

"처음에는 소방관 투입이 많이 안 됐습니다. 앞부터는 사람이 안 빠지니까 그때서야 인력을 더 투입해 뒤에서부터 한사람 한사람 빼낼 수 있었어요."

"사고가 있기 10분 전에 친구가 사람에 밀려 기절했는데 근처에 있던 경찰이 길을 터줘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밤 10시 15분쯤 현장에는 처음 구조 인력이 부족했고 구조 방법도 미숙했다고 부상 생존자들은 기억했다. 사고 직전 골목에서 기절한 시민을 경찰이 구조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유실물센터에서 만난 그날의 부상자들은 현장을 생생히 기억했다.

28세 홍 모씨는 당시 해밀톤호텔 골목 현장에서 1시간 30분 동안 하반신이 사람들에 깔려 있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소방관 투입이 덜 돼 구조에 애를 먹었고 앞쪽 사람들부터 빼내려고 했지만 빠지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상황이 더 심각해지자 구조 인력을 더 늘려 골목 위쪽부터 한사람씩 분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구조 인력도 부족했고 구조 방법도 익숙하지 않았다. 골목 위쪽부터 무게가 더 강하게 가해지자 너무 고통스러워 눈을 감고 싶기까지 했다. "다 왔다 참으라"는 말을 10번이나 들었지만 돌아보면 구조는 진전이 없어 절망도 했다.

홍씨는 "눈을 떴을 때 하체불구가 되면 어떻게 하나 생각까지도 났다"며 "살아 있는 사람들이 정신을 놓지 않으려 노력했고 소방관이 산소를 얼굴에 쐬어주고 물도 계속 뿌려주는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

홍씨는 지금도 걷기가 불편했고 발목부터 허벅지까지 전체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홍씨는 "여자 친구도 깔리면서 다쳤는데 지금도 가만있어도 머리가 아프고 하혈도 하고 있다"며 "정신과 진료를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20대 여성 김 모씨(가명)는 참사 전부터 사고 조짐이 있었다고 했다. 그날 10시 전 집에 가기 위해 나섰는데 사고 골목에 너무 사람이 많아 함께 간 친구는 압박 때문에 기절하고 말았다고 밝혔다.

"살려달라" 소리를 지르자 마침 주변에 있던 경찰이 도와 골목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7~8시부터 사람이 너무 많아 사고가 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20대 여성 정 모씨는 10시쯤 사고 골목을 오르다 중간 지점에서 사람들이 몰리면서 끼인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금방 빠질 줄 알았지만 상황은 더 심각해졌고 30분을 갇혀 있다 정신을 잃고 말았다고 했다. 다행히 그때 소방관에 구조돼 살 수 있었다.

정씨는 근처에서 한참을 진정한 후에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집에 갈 수 있었다. 정씨는 "사람들 틈에 끼고 나서는 기절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발 부위와 왼쪽 팔에 멍이 들고 저린 상태라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며 그때의 아찔함을 기억했다.

◆경찰은 이동하라고만 = 같은날 현장을 경험한 다른 사람들의 기억도 이어졌다.

신림동에 거주하는 20대 박 모씨는 불과 10~20분 차이로 화를 면할 수 있었다. 핼러윈을 맞아 여자 친구와 함께 이태원에 놀러 간 박씨는 10시쯤 참사가 발생한 그 골목에 있었다. 이태원역에서 세계음식거리쪽을 향해 우측으로 중간쯤 올라갔을 때 갑자기 위에서 밀려오는 힘이 느껴지며 사람들이 뒤엉켰고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중간에 끼인 채로 양쪽에서 밀려오는 압력에 박씨는 허리를 다쳤고, 여자친구도 얼굴을 다쳐 엉망이 됐다. "밀지 말라"고 큰 목소리로 수차례 외쳤지만 인근 술집에서 나오는 음악소리에 묻혀 소용이 없었다. 박씨는 이러다 큰 사고가 나겠다 싶어 올라가길 포기하고 다시 이태원역쪽으로 빠져나왔다. 체구가 작은 여자 친구는 발을 제대로 딛지 못한 채 떠밀리듯 내려왔다고 한다.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골목에서 나와 교차로까지 가서야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경찰에게 골목 안의 심각한 상황을 전하며 사고가 날 것 같다고 했지만 "어서 이동하시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박씨는 "하늘이 도왔다고 생각한다"며 "희생당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태원 식당에서 근무하는 정 모씨는 일을 마치고 핼러윈 거리 사진을 찍으러 나왔다가 참변을 당할 뻔했다. 이태원역에서 골목으로 돌아서 올라가자마자 사람들이 밀려왔고 그대로 바닥에 깔렸다. 다행히 끝부분이라 바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곧바로 주위 사람들과 함께 깔린 여성 한명을 구해냈다. 하지만 워낙 겹겹이 깔린 탓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정 씨는 "나는 다행히 화를 면했지만 아직도 당시 희생됐던 사람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생존자들은 신체적 후유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아 조금이라도 이상이 느껴진다면 치료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백명재 경희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총무위원장)는 "(참사) 현장 상황이 안 좋아서 잠을 못 잔다든지 불안·우울, 소화장애 등 대표적인 트라우마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며 "국가 트라우마센터 홈페이지에서 자신에게 나타나는 문제를 확인하고, 심하다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상담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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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철 구본홍 기자 pkche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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