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예방부터 대응까지 엉망진창

경찰 초기대응 부실, 보고·지휘 뒤죽박죽

행정안전부 '재난 컨트롤타워' 역할 실종

이태원참사 예방·대응 과정에서 국가 재난안전관리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한 경우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 의무(재난안전기본법 2조)'이지만 서울시와 용산구는 재난예방에 손을 놓았고, 경찰은 부실한 대응으로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번 참사와 관련된 정부 책임자들은 책임회피에 급급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애도 ㅣ 3일 오후 강원 춘천시 한림대학교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합동분향소에서 최양희 한림대 총장을 비롯한 교직원들과 학생들이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다. 춘천 연합뉴스


◆안전사고 대비 안한 지자체 = 4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주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에 1차 책임이 있는 서울시와 용산구는 대규모 인파가 몰린 핼러윈 행사 안전문제엔 손을 놓고 있었다.

참사 초기 이들 지자체는 "주최없는 행사라서 예방과 대비가 불가능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매년 열린 핼러윈 축제는 원래 주최자가 없는 행사였다. 올해 이전에는 매년 용산구와 경찰 소방 상인연합회 등이 모여 사고 예방을 위한 사전 준비작업을 철저히 했다. 지난해에도 용산구는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관계자들이 함께 안전에 대해 협의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인파대책보다는 방역과 청소대책을 주로 논의하는데 그쳤다.

용산구 관제센터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 보고를 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압사사고가 일어난 해밀톤호텔 인근을 CCTV로 24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관제센터가 있어 충분히 사고징후를 인지하고 예방활동에 나설 수 있었다. 지자체 CCTV 관제센터 운영규정에도 관제요원은 비상상황이 생기면 경찰서나 재난안전상황실에 상황을 신속하게 전파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통합관제센터는 상황전파를 하지 않았다.

용산구가 관광특구 정비를 소홀히 한 점도 드러났다. 참사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된 해밀톤호텔 주점 불법 증축 테라스에 대한 강제 철거는 이뤄지지 않았고, 클럽형 주점들의 안전지침 준수여부도 확인하지 않았다.

◆경찰, 112신고 대응 부실 = 경찰의 대응은 부실했다. 참사가 발생하기 전인 지난달 29일 오후 6시 30분부터 참사 직전까지 모두 11건의 112신고가 접수됐다. 신고 중에는 구체적으로 압사 가능성을 거론하는 다급한 호소도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사고 발생까지 이 4시간을 허무하게 흘려보냈다. 용산경찰서장은 사고 발생 후에도 1시간 21분이 지난 뒤에야 서울경찰청장에게 보고했다. 서울청장도 사고를 인지한지 38분이 지나서야 경찰청장에게 보고했다. 경찰청장이 보고받은 시간은 대통령보다 1시간 13분이나 늦었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첫번째 사태수습 지시는 경찰청장에게 제때 전달되지도 않았다. 경찰의 보고·지휘 체계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112신고를 총괄하는 서울청 상황관리관이 사고 당일 저녁 상황실을 비운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의 보고·지휘 체계는 말 그대로 뒤죽박죽이었다.

◆정부 재난보고체계 구멍 = 재난·안전 주무 부처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사고를 보고받은 시간 또한 사고발생 1시간 5분이 지난 오후 11시 20분이었다.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은 사고 발생 33분 뒤인 오후 10시 48분 소방청 보고를 받았는데, 이 당시 사고현장은 이미 심정지 환자가 30여명으로 추정될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이 같은 상황이 행안부 장관에게 전달되는데 무려 32분이나 걸렸다. 이상민 장관 또한 대통령보다 사고 보고를 늦게 받은 셈이다. 뿐만 아니라 대형 참사가 발생했는데도 일선 경찰서나 서울경찰청 등에서 행안부와 재난정보를 공유하는 체계조차 없었다. 이 때문에 경찰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경찰과 행안부가 대형참사 상황에서 어떤 소통도 하지 못했다. 행안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 경찰청을 포함한 13개 기관과 4~8개 유관기관에서 파견된 인력이 24시간 근무하고 있지만 이번 참사 때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재난안전관리체계 손봐야 = 343명의 인명피해를 낸 대형 재난이 발생했는데도 정부는 '주체가 없는 행사에 대응할 매뉴얼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고를 예상할 충분한 징후가 있었고, 미연에 방지할 기회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 어느 순간에도 위기관리 체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참사가 발생한 이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누구 하나 책임지겠다는 기관도, 사람도 없었다. 애??은 파출소 말단 경찰들만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다. 정부 책임을 피하려 분향소를 숨기기 급급했고, 참사·희생자·피해자 같은 용어를 못 쓰도록 통제했다. 김동준 새한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이번 참사는 지자체와 경찰 등 대응기관의 잘못들이 중첩돼 발생했지만, 무엇보다 행안부가 재난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도 크다"며 "결국 재난안전 체계를 다시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참사와 관련 경찰 특별수사본부는 2일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등 7곳을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으로 사고 경위를 밝히고 책임자를 가리는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고의 책임이 명백한 경찰이 스스로를 수사하는 것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이 때문에 야당이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독립적인 사고조사위원회 설치를 요구하는 주장도 있다. 송창영 광주대 교수는 "민간이 참여하는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철저한 원인규명을 해야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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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일 이제형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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