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경찰 질타에 내부선 항변 목소리도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경찰을 집중 질타한 데 대해 경찰 내부에선 항변의 목소리가 나온다. 참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쏙 빼놓고 경찰만 단죄하는 것은 옳지 않을뿐더러 참사 재발을 방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서울지역 한 경찰관은 8일 "경찰이 이태원 참사 대응을 잘못한 것은 맞지만 전적으로 경찰의 책임으로만 몰아가는 것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다"며 "이태원 참사와 같은 국가적 재난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경찰 뿐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 등 안전관리에 책임이 있는 기관의 역할과 전체적인 시스템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전날 국가안전시스템점검회의를 주재하며 "우리사회의 다양한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안전관리의 권한과 책임, 그리고 신속한 보고체계에 관해 전반적인 제도적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면서도 "특히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위험에 대비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경찰 업무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경찰을 콕 집어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참사와 관련해 진상규명이 철저하게 이뤄지도록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책임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엄정히 그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비공개 발언에선 더 강한 어조로 경찰을 질타했다. 윤 대통령은 "아비규환 상황에서 경찰이 권한이 없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느냐",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느냐, 납득이 안된다"는 등 강하게 경찰을 질책했다. 대통령실은 이례적으로 윤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과 영상을 공개했다.

실제 이번 참사에서 경찰의 대응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대규모 인파운집이 예상되는데도 경찰병력을 제대로 배치하지 않았고, 112를 통해 다급한 상황이 전해지는데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인근 집회관리를 하던 용산서장은 참사가 발생하고 한참 뒤에서야 현장에 도착했고,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은 1시간이 넘게 자리를 비웠다. 상부 보고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경찰청장과 서울청장은 대통령보다도 늦게 사태를 인지했다.

하지만 지자체와 행안부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재난안전에 1차적인 책임이 있는 서울시나 용산구청은 사전 안전대책을 제대로 수립하지 않았고, 사후대처도 부실했다. 재난안전관리를 총괄하는 행안부도 별다른 역할이 없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행안부나 지자체의 책임에 대해선 추궁하지 않았다.

경남지역 한 경찰관은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닌다' '행정안전부장관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행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 조정한다'고 명시한 재난안전법 조항을 적시하고 "국가는 경찰밖에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책임자는 경찰밖에 없느냐"며 "왜 모든 책임을 경찰에만 덮어씌우고 모든 원인을 경찰에게서만 찾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용산구청장, 행안부장관, 서울시장은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아 수많은 사상자를 내 직무유기에 해당한다"며 "용산구청, 서울시, 행안부 경찰국을 압수수색하고 용산구청장, 행안부장관, 서울시장을 소환해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관은 "여론 수습용으로 어느 한 기관에 책임을 몰아가는 것으로는 참사 재발을 막을 수 없다"며 "과거 세월호 참사 때에도 해경에게 책임을 물어 조직을 해제했지만 달라진 게 있었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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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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