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폭증, 곳곳서 불안

"위로·공감, 자신 살리는 길"

#. 이태원 참사를 보고 참담함을 느낀 40대 직장인 김 모씨는 러시아워가 두려워졌다. 특히 무궁화호 열차가 탈선한 여파로 더 혼잡했던 7일 지하철 안에서는 순간 겁이 나고 식은땀도 흘렀다. 김씨는 이 정도도 힘든데 희생자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다고 했다.

#. 이태원 현장 골목에서 장사하는 30대 김 모씨는 그날의 장면이 가끔 떠오른다고 했다.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힘없이 흔들리는 희생자의 손과 구급차로 실려 가는 모습들이다. 김씨는 이런 게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인가 싶다고 했고, 지인들은 그에게 심리상담을 받으라고 전화번호를 건넸다.

#. 이달 초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20대 이 모씨는 많은 사람이 다치고 사망한 사고가 계속 생각나 가슴 아픈 마음에 조문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사람이 많은 공간에 가면 양팔을 깍지 끼고 가슴 부위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후 심리상담을 받는 국민이 폭증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집단 트라우마를 줄이기 위해서는 피해자를 위로하고 억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보건복지부는 7일 이태원 참사로 심리치료가 필요한 유가족과 부상자,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심리상담과 정보제공 건수가 2일 각각 830건 363건을 기록한 후 3일 1203건 1063건, 6일 2029건 2045건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정신건강 위기 상담 전화(1577-0199) 관계자는 "사고 이후 상담 전화가 확실히 많아졌다"며 "전화가 오면 1차적으로 심리적인 응급처치로 상담을 먼저 진행하고 이후 정도에 따라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나 국가트라우마센터, 심리상담학회로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는 두 차례 성명을 통해 "이번 참사는 성격상 직접적인 피해를 당하지 않은 목격자와 응급구조에 헌신적으로 참여한 시민의 경우에도 정신건강의 어려움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며 "정신건강 상담전화가 폭증해 제때에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국민이 발생하고 있어 우려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복지부와 관련 학회에 의하면 이번 사고에 따른 트라우마 호소가 많은 이유가 대형 참사로 관련 피해자가 많은데다 당시 현장 영상과 사진이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와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확산해 다수 국민이 접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백명재 경희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는 "현장 상황이 워낙 안 좋아서 거기서 압도된 경험을 한 분들이 많을 것"이라며 "잠을 못 잔다든지 정서적 불안, 우울함, 소화장애 등이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스트레스 반응"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일반 국민의 경우 상담센터는 못 가더라도 공공기관의 자가 설문지를 통해 스스로 상태를 평가할 수 있다"며 "평가가 높게 나오거나 한 달이 지났는데도 생활에 지장이 있다면 무조건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위원장(전문의)은 "정부가 대책을 세울 때 재난의 4차 경험자(재난 지역 거주자, 취약 계층)와 5차 경험자인 일반인까지 대상을 넓게 잡아야 한다"며 "비난과 혐오는 트라우마를 악화시키고 공감과 위로는 트라우마를 치유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특히 다른 사람보다 더 힘들다는 것은 피해자 유가족에게 더 깊게 공감하기 때문에 힘든 것이라며 트라우마로 사회적 울분이 남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불공정함을 느끼면 울분을 갖게 되고, 억울함은 애도를 방해한다"며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려 어디에서 슬프고, 마음이 맺혀 있을까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직접 피해를 입은 생존자나 2~3차 재난 경험자(가족과 지인, 현장 대응팀)분들을 위로해 주고 공감해 주는 게 일반 국민 자신이 사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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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완 박광철 기자 pkche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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