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정보 속 문제발견·해결·융합능력 필요 … 교육부, 정보 교육 확대 등 첫발 떼

디지털 리터러시(문해력) 교육을 강화해 4차 산업혁명시대를 주도하는 '디지털 시민' 양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뒤늦게 관련 논의를 시작한 가운데 경쟁국들은 오래 전부터 이를 위한 학생·시민교육을 꾸준히 추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디지털 시민은 공적 사안에 대한 지식과 시민으로서의 덕성을 갖추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정치·경제·사회 영역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11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정부가 교육분야 디지털 전환과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도입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디지털시민교육 | 지난달 7일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린 제11회 대한민국 교육기부 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삼성스마트스쿨 디지털시민교육을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참석,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강화를 주문했다. 이날 교육부는 정보 교육을 늘리고 수학·과학·음악 과목에도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등의 접목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실제로 교육부가 지난 9일 행정예고한 '초·중등학교 및 특수교육 교육과정'(2022 개정 교육과정) 개정안에 따르면 정보 교육 시수는 두 배 늘어난다.

현행 교육과정에서 정보교육은 초등학교의 경우 17시간, 중학교는 34시간 '편성·운영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반면, 개정안에는 초등학교는 5∼6학년 '실과' 과목 내 정보 교육 단원을 통해 34시간 이상 정보 교육을 받도록 했다. 또 중학교는 '정보' 과목을 통해 68시간 이상 정보 교육을 편성·운영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늦었지만 의미 있는 시작 = 그동안 전문가들은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새로운 디지털 시민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디지털 시민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시민이 갖춰야 역량으로 단순지식을 습득하는 능력보다 컴퓨팅 사고력과 융합력, 문제발견·해결능력 그리고 정보를 판단해 합리적인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 등을 지목한다. 다양한 디지털 대응력을 갖춰야 4차 산업혁명의 변화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디지털 전환으로 생활공간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이런 역량이 현대인의 기본 소양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는데도 구조와 영향, 다양한 권한과 선택 등 복합적 능력에서 개인 격차가 발생해 사회문제로 부상했다.

특히 산업 전반에서 빅블러(Big Blur) 현상이 나타나면서 정보를 다루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빅블러 현상은 소프트웨어(SW) 발전에 따라 기존 산업 간, 온·오프라인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의 등장은 자동차와 IT 산업 간 경계를 무너트렸다. 빅블러 현상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신기술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일자리·업무방식 변화도 불가피 = 변화는 사회 구성원 개인의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산업구조 변화가 일자리는 물론 업무의 틀까지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초·중·고교 과정에서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한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4차 산업혁명은 사회 전반에 기계가 인간의 업무를 대신 수행함으로써 생산성 향상, 근로시간 감소, 건강수명 증가 등 경제·사회적 혜택을 확대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자동화로 인한 단순 반복 업무의 일자리 수요 감소, 고부가가치 업무의 인력수요 증가 등 사회적 약자에게 불리한 고용구조 변화로 나타나는 부작용도 존재한다.

김태준 한국교육개발원 평생·융합교육연구실장은 교육부 사회정책포럼에서 "디지털 사회로의 대전환기를 선도하기 위해, 전 국민의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을 높이고 디지털 격차와 역기능 해소 등을 위한 범부처 차원의 체계적인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디지털 리터러시를 단순히 지식과 기술을 교육시키고 이용환경을 조성하는 기술적 차원을 넘어서서 '디지털 시민교육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실제로 유럽의회 등 주요 선진국들은 디지털 리터러시를 디지털 기술에 대한 기초문해력 수준을 넘어 디지털 사회의 시민에게 필요한 종합적인 역량으로 접근하고 있다"면서 "디지털 사회의 시민으로서 유·초·중등부터 고등·평생교육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정책 방안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기본 교육 경시 우려도 = 인터넷 강국인 우리나라는 디지털 격차를 줄이기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디지털 취약계층에 대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해 일반 국민 대비 디지털 취약계층의 디지털 격차는 5년 전 35%에서 25% 수준으로 줄였다. 하지만 디지털 정보 격차가 줄었다고 해서 정보를 다루고 이해하는 수준의 차이까지 줄여주지는 못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16~65세)과 청소년(만 15세)의 디지털 역량 수준은 회원국 평균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그래서 디지털을 잘 쓰고 잘 다루는 디지털 리터러시의 기본부터 고도화된 능력까지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결국 개인의 능력을 넘어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해법으로 부상하고 있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읽고, 쓰고, 비판적 사고를 기본으로 하는 문해력에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정보 탐색 등을 결합한 것이란 주장이다. 결국 탐색하고 정보를 가공하는 역량도 결국 책 읽기와 글쓰기 그리고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인문학, 수학, 과학 수업을 통해서 갖춰진다는 점을 간과해 기존 교육을 경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경쟁국은 오래 전부터 도입 = 디지털 선진국들은 앞다퉈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 강화를 위한 정책을 마련해 디지털 시민 양성에 나서고 있다.

2012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캐나다 교육기관인 미디어스마트(MediaS

marts)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에 디지털 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인식·훈련 등과 같은 낮은 단계에서부터 시민 의식, 소비자 의식, 이용자의 자신감,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 등 높은 단계까지 포함해 교육을 한다.

특히, 디지털 리터러시를 디지털 기술의 '사용' '이해' '창조'의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해 교육한다.

핀란드는 2016년에 전면적으로 국가수준 교육과정을 개편, 멀티리터러시를 중요한 핵심역량으로 포함했다. 멀티리터러시는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정보를 얻고, 결합·변형·생산·제시한 후 평가하는 능력이라 규정했다.

핀란드 교육과정에서 밝힌 멀티리터러시는 모국어·사회·역사 등 다양한 교과에서 다루는 핵심역량이자 학습 요소다. 교육 목적은 학생들이 학교 밖의 시민 사회와 공동의 일에 참여하기 위한 지식, 경험, 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호주도 국가 교육과정에 '디지털 기술' 과목을 포함하고 있다. 그 내용은 ICT 리터러시, 정보 리터러시, 비판적 리터러시를 기반으로 한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학생들로 하여금 디지털 기술을 비판적으로 사용하고,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정보와 의미를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인식하는 것까지 포괄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시대, 이제는 디지털 문해력이다" 연재기사]

박광철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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