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당국 발목 잡은 코로나 허위정보

유튜브 확증편향에 정치적 갈등 심화

허위정보 식별역량은 OECD 최하위

지난 2009년 3월 프랑스의 유명 작곡자이자 영화음악가인 모리스 자르가 사망했다. 당시 가디언을 비롯한 전 세계의 많은 언론사들은 자르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그가 생전에 "사람들은 나의 삶 자체가 하나의 긴 영화음악이었다고 얘기할 것이다. 음악은 내 삶이었고 인생의 활력소였으며, 사람들은 내 음악으로써 나를 기억할 것이다"는 명언을 남겼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가 생전에 했다는 이 발언은 아일랜드의 한 대학생이 지어낸 말이었다. 뉴스를 빠르게 생산해야 하는 중압감에 시달리는 기자들이 인터넷 정보를 얼마나 이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위키피디아에 허위로 올린 글에 기자들이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던 것. 위키피디아는 글의 출처를 요구하고 3번에 걸쳐 해당 문구를 삭제했지만 이미 '가짜뉴스'는 언론과 인터넷 등을 통해 확산된 뒤였다.

한 대학생이 꾸며낸 이 사기극은 가짜뉴스가 각종 디지털 수단을 통해 얼마나 빠르게 확산되고 재생산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문제는 가짜뉴스가 단순한 해프닝으로 그치지 않고 사회적 혼란 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점이다. 특히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 등 1인 미디어 확산으로 사실 확인보다 정보가 퍼지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면서 가짜뉴스의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창궐했던 각종 허위 정보와 음모론은 단적인 예다. 코로나 증상과 대처방법, 방역상황, 백신접종 등과 관련해 SNS상에서 퍼졌던 각종 가짜뉴스들은 코로나 방역에 전념해야 할 방역당국을 더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됐다.

당시 SNS에서 퍼졌던 가짜뉴스 중에는 글로벌 자선 사업가인 빌 게이츠 부부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황당한 음모론도 있었다. 백신 접종을 통해 마이크로칩을 심어 세계인을 감시·통제하려 한다는 터무니없는 내용이었지만 이로 인해 세계 각국 방역당국은 백신 접종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가짜뉴스는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과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을 낳기도 한다. '딥 스테이트'라는 비밀조직이 미국과 세계 경제, 정치를 장악하고 국가 전복을 노리고 있다는 음모론을 추종하는 세력인 '큐어논'은 지난해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패배하자 선거 조작설을 유포하며 급기야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의사당까지 침탈해 충격을 줬다.

우리나라에서도 극단적 유튜브 채널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채 양산되는 가짜뉴스와 알고리즘에 따라 더욱 강화되는 확증편향이 정치적 갈등과 국론분열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조사한 '유튜브 이용자들의 유튜버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유튜브 이용자의 98.1%가 '가짜뉴스 전파'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꼽았다. 내용에 대한 사실 검증이 중요하다는 응답자도 97.7%나 됐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가짜뉴스 판별 능력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2018년 회원국 청소년들을 상대로 조사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 결과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의 정보의 신뢰성 식별률은 25.6%로 최하위인 37위를 기록했다. 이 조사는 학생들에게 유명 이동통신사 명의를 사칭한 피싱메일을 통해 이용자 정보를 입력하면 스마트폰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링크를 보내고 이에 반응하는 태도를 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OECD평균은 47%였다.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경험도 한국 청소년들은 46.9%에 그쳐 OECD평균 58.2%보다 11.3%p나 낮았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이형주 주임연구원은 "1인 미디어로 정보의 확산속도가 빨라지고 신종 지능정보기술의 발전으로 현실과 구분하기 힘든 허위정보가 등장해 허위조작정보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며 "특히 디지털 정보는 확대·재생산이 용이해 한번 잘못 퍼진 허위조작정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돼도 피해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보 소비자 스스로 허위조작정보를 판별할 수 있고 올바른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갖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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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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