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쉬 걸, 1920년대 실존 화가 이야기 담아

질병 분류에서 트랜스젠더 항목 전부 삭제

고병수(아버지) : 지난번에 이어서 이번도 성소수자 이야기를 해보자.
고동우(아들) : 대니쉬 걸이라는 영화를 골라주셔서 봤어요. 덴마크를 말하는 '대니쉬'를 사용해서 붙인 제목인데,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성전환 수술을 하는 장면과 그러한 상황을 이해해 주는 반려자의 모습이었어요.
고병수 : 맞아. 성전환수술이란 명칭은 적절하지 않다고 볼 수 있어. 실제 수술을 통해 성전환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지. 성적합수술 등으로 부르자는 주장도 있지만 아직 합의가 된 부분이 아니어서 아직은 그대로 부르고 있어. 어쨌든 그 수술은 성기나 가슴뿐만 아니라 성형외과 영역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어려운 수술이란다. 1920년대에 그런 수술을 했다는 게 놀라울 정도지.

대니쉬 걸 영화 포스터.

같은 성에 대해 끌리는 느낌, 다른 성에 대한 동경은 소수가 가지는 성 지향이라서 '성소수자'라고 한다. 이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굳이 성소수자라고 지칭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반문하고 싶을 때도 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들을 애써 어떤 집단으로 묶어놓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아, 저 사람은 키 작은 사람 족속이네'하고 말이다. 그냥 어느 동네 사는 아무개라고만 여길 뿐이다. 그렇듯이 성소수자라고 지칭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 텐데... 있는 그대로 너를, 나를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데 아무 차별 없이 함께 살아가기에 너무 힘이 든다.

여성이 되고픈 남자

2016년에 나온 영화 '대니쉬 걸(The Danish girl)'은 1926년 덴마크 코펜하겐을 배경으로 한다. '에이나르 베게너(에디 레드메인)'는 아름다운 부인과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재능있는 풍경화 화가이다. 부인도 인물화를 그리는 화가인데, 어느 날 모델이 못 오게 되자 남편 에이나르에게 여장을 하고 비슷한 자세를 잡아달라고 요청한다. 흔쾌히 응하면서 발레리나의 자세를 잡은 에이나르. 앉아있는 동안 모델용 의상을 만지면서 부드러운 감촉을 느껴보다가 왠지 모를 감정에 휩싸인다.

재미가 붙은 부인 게르다는 에이나르에게 여장을 하게 하고는 파티에 함께 간다. 에이나르는 릴리라는 가짜 이름을 대고, 어떤 남성에게 프러포즈도 받고 키스까지 하게 된다. 점점 여성이 되고 싶어 하는 남편 때문에 혼란스럽고 상실감을 느끼는 게르다에게 에이나르는 말한다.

"이건 내 몸이 아니야." "이젠 보내줘야 해." 결국 게르다는 끝내 남편 에이나르를 지지해준다. 남편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그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바로 성전환 수술. 그 당시 의학 기술로는 처음 시도하는 것이기도 해서 자칫 죽을 수도 있다. 시간이 흘러 '릴리'가 되어버린 에이나르는 부인에게 고백하듯이 말한다.

"사랑해. 당신은 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줬고, 내가 존재할 수 있게 해줬어."

발코니에서 둘이 손을 꼬옥 잡고 바라보는 풍경은 그들의 마음처럼 아름답다.

영화는 1920년대 실존했던 '릴리 엘베(Lili Elbe, 본명 Einar Mogens Wegener)'라는 화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명이지만 릴리는 세계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트렌스젠더 화가로 유명하다.

남성 배우에게 분장을 이렇게도 예쁘게 할 수 있을까, 놀랍기도 하지만 주인공 에디 레드메인의 감성 연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빠져들게 된다.

트렌스젠더들과 의학적 시각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물은 모두 유전체를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형질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게 되어있다. 사람은 23쌍(46개)의 염색체에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다가 수정을 하면서 부모로부터 형질을 물려받는다. 이때 성을 결정하는 염책체가 1쌍 있는데, 여성으로 표현되려면 22쌍의 염색체에 XX 성염색체를 가지게 되고, 남성으로 되려면 XY 염색체를 가진다.

자라면서 여성으로 결정된 사람은 여성 생식기를 가지며 젖가슴이 발달하게 되고, 남성은 목소리도 굵어지고 수염이 나며, 남성 생식기가 발달한다. 우리는 이렇게 유전에 의해 결정된 것을 '생물학적 성(Sex)'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유전에 의해서도 세상은 여성(XX)과 남성(XY)으로만 나뉘지 않는다. 클라인펠터 증후군은 염색체가 XXY형으로 XY 염색체에 X 염색체가 하나 더 있어서 남성처럼 보이지만 여성성을 나타내는 징후들을 가지게 되어 성기나 정소가 미발달해서 불임이 되고, 유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들을 여성과 남성이라는 틀로만 구분할 수 있을까?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다른 성을 동경하고 원하게 되면서 행동이나 복장을 다르게 한다면 이들을 단순히 태어나면서 가지게 된 유전적, 육체적 성으로만 구분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들에게 '사회적 성(Gender)'을 부여하게 되며, 오래된 관습으로 만들어진 여성과 남성의 구분을 지나 자신의 성(Gender)에 대한 자각을 중심으로 성정체성이 신체 성별과 반대인 경우에 트랜스젠더라고 한다.

특별히 여성 지향이면 여성 트렌스젠더, 남성 지향이면 남성 트렌스젠더라고 부르게 된다. 흔하게 부르지는 않지만 의학적으로 말하면 성 정체성이 자신의 신체 성별과 일치하는 경우에는 '시스젠더'라고 표현한다.

트렌스젠더들은 자신의 신체적 성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서 젠더에 맞게 호르몬 주사를 맞거나 가슴이나 성기, 혹은 자궁을 수술하기도 한다.

데니쉬 걸 영화 후반부에 수술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릴리 엘베가 오래 전 1920년대에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 놀랍다. 사실 성전환수술이라는 용어가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많다. 수술을 통해 성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적합수술 등 다른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트렌스젠더들의 우울감 고통 치료

성소수자들 중에서 의학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사람들이 트렌스젠더이다. 성전환 수술 자체가 고난이도의 성격인 면도 있지만 일상에서 진료를 받을 때조차 쉽지가 않다. 진찰을 할 때 분명 남자인데 여성 복장을 하고 목소리까지 여성스럽거나, 여성 같은데 남성 치장을 하고 있다면 보통의 의사로서 어떻게 받아들일까? 왜 이렇게 하냐고 꾸지람을 하거나 이상스럽게 보는 의사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시선이 싫어서 그들은 병원을 잘 가지 않으려고 한다. 게다가 주변의 눈초리와 차별이 심해서 국내 어느 연구에서는 자살 충동이 일반인의 20배, 자살 시도는 일반인의 10배 정도 높다고 한다.

성소수자들, 특히 성별 전환이 필요한 트렌스젠더에겐 여러 종류의 의학적 처치가 필요하지만 국내에서 이들을 위한 의료기관도 없다. 최근 한국에서도 '성소수자의학'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조금씩 나오면서 몇명 의사들이 관련 진료를 하기도 한다.

과거 오래도록 성소수자들은 정신질환자 취급을 받았다. 성정체성이 아니라 성도착증 환자로 봤던 것이다. 미국 정신의학회 중심으로 발행되는 정신질환 편람인 DSM 시리즈에서도 1974년 3편을 내놓으면서 동성애가 질병 분류에서 완전히 삭제되면서 '정상 상태'로 돌아왔다.

2013년 편찬된 DSM-5에서는 이전까지 질병명으로 표현되던 '성주체성장애'를 '성별위화감'로 변경하면서 장애(질병상태)가 아님을 보여줬다. 트랜스젠더의 고통이나 우울감 등에 대해 의학적 진단과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명시한다.

세계보건기구도 국제질병분류 10판(2018년)에서 트랜스젠더 관련 항목을 전부 삭제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더불어 더 나은 의료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고병수 의사

["고병수 의사의 ‘영화 속 의학의 세계’"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