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우(아들) : 이번에 본 영화는 '보살핌의 정석(The fundamentals of caring, 2016)'이예요. 사지마비 소년과 돌보는 사람 관계를 다룬 건데, 비슷한 영화들은 여러 편 봤어요.
고병수(아버지) : 이 영화는 상당히 잘 만들었고, 연기도 훌륭한데 제목을 잘 못 지은 작품으로 꼽을 수 있겠어. 원어 그대로 번역하다 보니 그랬을 것이고, 고민을 덜했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다소 아쉬운 점이야. 내용을 함축하고 상징성을 띄면서 "트레버의 소원", "먼 길", "떠나며 얻은 것" 등 직관적으로 만들어도 좋은 제목들이 있을 텐데…
고동우 : 맞아요. 제목이 무슨 학습 교재 같은 느낌이예요.
고병수 : 네 말대로 비슷한 류의 영화들이 많은데 이 영화만의 특징이 있지. 이야기를 하면서 찾아보자.

'보살핌의 정석' 영화 포스터

영화는 자신의 부주의로 어린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어버린 후 부인에게 이혼까지 요구받는 벤(폴 러드)으로부터 시작한다. 사고 후 그는 작가로서의 활동을 접고 놈팽이처럼 살다가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간병인 교육을 받아 처음으로 환자를 배정받고 어느 집을 방문한다. 거기에는 걷지를 못해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는 트레버(크레이그 로버츠)라는 소년이 있다.

그의 병은 다소 희귀병인 'DMD(두쉔형 근디스트로피)'라고 하는 근육병이다. 하지 마비는 물론 조금씩 팔도 힘을 잃어가고 호흡곤란도 온다. 엄마는 은행 일로 바쁘게 바깥일을 해야 하고, 아버지는 트레버가 3살 때 이 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이혼하고 도망가버렸다. 간병인을 맡게 되면서 먹을 것도 챙기고, 대소변 보는 것도 도와야 하고, 옷도 일일이 입혀야 한다.

골격근이 쇠약해지며 힘을 못 쓰게 되는 병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 '근디스트로피(근이영양증)'는 유전성 원인으로 근육 자체에 병이 생기고 점점 나쁘게 진행해 가면서 최악의 결과로 가게 되는 근육병을 말한다. 소아마비처럼 신경에 문제가 생겨서 근육이 약화되는 경우와 좀 다른 병이다. 지금은 유전형과 발병 나이, 쇠약한 근육 위치에 따라 복잡하게 분류하기도 하지만 전통적으로 두쉔형 근디스트로피, 벡커형 근디스트로피, 지대형 근디스트로피, 안면견갑상완형 근디스트로피 등으로 말한다. 주인공 벤자민이 앓는 질환은 신생아 10만명당 30명 정도로 비교적 많이 생기고 진행도 빠른 형태인 두쉔형 근디스트로피(DMD)이다.

까칠한 비관론자 소년 트레버에게 조금씩 적응을 하게 되자 벤이 묻는다.
"정상으로 돌아간다면 제일 하고 싶은 게 뭐니?" "서서 오줌 누고 싶어요."
비장애인에게는 황당한 소원일 수 있겠지만 자기 기억으로는 서서 오줌을 눠본 적이 없는 트레버에게는 절실한 문제였다.


처음 떠나는 여행

시간만 나면 여행하고픈 곳을 기록해놓는 트레버를 보고 벤은 가장 가고픈 곳 하나를 선택해서 가보자고 권하고 둘은 차를 타고 떠난다. 그것은 오래 전 구리 광산(빙햄 캐년 광산)이었지만 지금은 파다 만 구멍이 워낙 크고 깊어서 '세상에서 가장 깊은 구덩이'라고 불리는 곳. 그곳으로 가는 과정은 일종의 로드 무비 형식으로 이어지면서 트레버와 친구가 되는 도트(셀레나 고메즈)도 만나고, 자동차가 고장나서 태우게 된 만삭의 여인도 동승자가 된다.

벤은 갑자기 광산 옆에 서 있는 구급차에서 운반용 침대를 얻은 다음 트레버를 묶어 세운다. 트레버의 소원인 '서서 오줌누기를 실현'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광산 구덩이에 포물선을 그으며 세상에서 제일 긴 오줌발을 보이는 트레버…

이 영화에 나오는 근육병의 이름을 지은 사람은 프랑스의 신경학자이며 전기생리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두쉔(프랑스 발음으로는 뒤쉔)박사이다. 1868년 경 질병의 특이점을 정리해서 이름을 붙인 근육병인 두쉔형 근디스트로피(또는 '두쉔형 근이영양증'이라고도 함)는 트레버처럼 아기 때 걷기 시작하면서야 이상이 있음을 알게 되고, 3~4살이 되어 잘 뛰어놀 나이가 되어도 힘들게 무엇인가에 지탱해야 경우 일어설 수 있거나 아예 걸을 수가 없기도 한다. 이나마 점점 근력이 약해져서 대개 20대 초반에 심장 이상이나 호흡마비로 사망하게 된다. 결국 루게릭병의 경과를 밟는다.

몇년이 지나서 둘은 헤어지게 되었고, 마음의 안정을 찾고 다시 글을 쓰게 된 벤. 그가 평안한 마음으로 쓴 글은 바로 트레버와의 이야기이다.

트레버는 21살이 되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안 나오지만 의학적으로 호흡이 힘들어지는 상황이고, 삶이 마지막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영화의 결말은 상당히 슬펐을 것이다.

고병수 의사

["고병수 의사의 ‘영화 속 의학의 세계’"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