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다주택자는 감세, 공공요금은 줄줄이 인상 … 경제정책 국민불신 커져

우려했던 부자감세-서민증세가 현실이 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세제개편안과 최근 후속 시행령 개정조치를 통해 대기업과 다주택자 등 부자감세를 단행했다.

집부자에 대한 중과세와 규제를 대폭 완화했고 반도체산업 지원을 명목으로 재벌기업의 세금을 수조원씩 깎았다.

하지만 최악의 경기침체를 맞은 서민들은 난방비에 이어 '공공요금 폭탄'을 고스란히 맞고 있다. 가스·전기요금 대폭 인상과 시민들의 발인 교통요금까지 인상을 예고하고 있어서다. 대기업과 부자 감세 여파로 정부재정이 여의치 않으니 취약계층 지원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부자·대기업 감세→서민 증세'가 현실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국민 불신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취약계층 지원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최악의 경기침체기 경제정책의 앞뒤가 바뀌었다는 지적이다.


◆법인과 자본소득 세금은 줄이고 = 국회는 지난 연말 법인소득세율 구간별 1%P 인하와 금융투자소득세 2년 유예, 종합부동산세 공제 한도 조정 등 내년도 예산안 중재안에 합의했다.

가장 논란이 되었던 법인소득세는 최고소득 구간에 한해 최고세율 25%를 22%로 인하하려던 정부안이 축소되긴 했지만, 여야 합의의 핵심에는 자본과 법인소득세 감세가 있었다. 법인세·종부세 등 부자감세로 줄어드는 세수는 적어도 5년간 2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됐다.

여기에 정부는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에 대한 세액공제를 추가로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 방침대로 법이 개정되면 반도체 대기업들이 약 5조8000억원의 세액감면을 받게 된다.

25일 나라살림연구소 추산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4조7000억원, SK하이닉스는 1조1000억원의 감면을 받는 것으로 분석됐다. 올해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투자 증가분(직전 3년 평균치 대비)에 대한 10% 추가 세액공제율이 더해지면, 최대 삼성전자는 7조9000억원, SK하이닉스는 1조8000억원까지 감면 폭이 확대된다.

부동산 정책은 다주택자 규제 완화와 세금 감면으로 이어졌다. 집을 살 때도, 팔 때도 세금을 깎아주고, 대출한도도 늘려준다. 추가 규제 완화까지 예고돼 있다. 지난해 부동산 세제 개편으로 2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내년 보유세 부담이 올해보다 절반 이상 큰 폭으로 줄어든다. 공제금액이 9억원으로 올해보다 3억원 이상 늘어났고 세율도 줄어서다.

◆난방비폭탄에 허리 휘는 서민 = 반면 가계, 특히 취약계층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공공요금 인상에 허리가 휘고 있다.

도시가스 요금 인상에 한파까지 겹쳐 곳곳에서 '난방비 폭탄'을 맞았다는 비명이 나온다. 여기에 교통요금과 전기·가스요금 등 공공요금이 추가로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도시가스 요금은 지난해 4차례에 걸쳐 38% 올랐다. 2분기 이후 도시가스·전기요금의 추가 인상도 예상되고 있다.

이어 서울시는 다음 달 지하철·버스 요금 인상 공청회를 열고 300원과 400원 등 두 가지 인상안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초에는 300원씩 올리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했는데, 400원 인상안을 추가한 것이다. 지하철 기준으로 요금이 300원 오르면 24%, 400원 오르면 한꺼번에 32%나 오르게 된다.

다음 달 1일부터는 서울 중형택시 기본요금이 1000원 오른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비슷한 수준으로 교통요금 인상을 준비하고 있다.

◆경제정책 국민불신 확산 = 물론 원자재 가격 폭등과 구조적인 손실 누적 등으로 공공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공공요금이 한꺼번에 오르는데다, 대기업과 부자 감세와 대비되는 상대적 박탈감이 문제다.

김대규 변호사(법무법인 티와이로이어스)는 "경기침체기에는 가장 먼저 고통을 겪을 취약계층 지원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데, 정부 정책기조가 대기업 감세에 기울어져 있어 (서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면서 "대기업과 부자들 세금을 깎다보니 재정여력이 없어 서민들의 간접세금을 올리는 것 아니냐는 항변도 그래서 일리가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는 경고다. 김 변호사는 "경제정책 기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확산되면, 경기침체기를 헤처나가야 할 국정운영의 동력 자체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공요금의 급격한 인상은 물가인상→내수악화→경기침체 장기화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고물가와 고금리 여파로 체감 경기가 악화한 상황에서 공공요금 인상까지 더해지면 경제의 한 축인 소비는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부자감세-서민증세 기조는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소지도 있다. 이미 경제적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정부가 이를 부채질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서다. 김 변호사는 "서민과 중산층이 흔들리면 경제적 문제를 넘어 정치, 사회적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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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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