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수(아버지) : 지난 이야기에 이어서 돌봄이라는 주제로 영화를 실펴보자. 요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
고동우(아들) : 이번에는 두 편의 영화를 봤어요. 둘 다 장애를 겪은 사람들의 안타까운 상황이 전개되지만, 그 가족들의 어려움 또한 심각하게 다가왔어요.
고병수 : 그래, 앞 이야기는 프랑스에서 만들어졌지만 선진국이어도 힘든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아직 돌봄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더 심한 갈등과 고난을 갖고 있음을 알게 돼지.
고동우 : 둘 다 뇌졸중을 겪는 장애인으로서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사이사이에 의학의 내용으로 들여다볼 것들이 들어있어서 설명도 해주세요.


신고를 받고 온 소방관과 경찰들이 파리의 아파트로 들어가 누군가의 집 문을 강제로 열어젖힌다. 집에서는 뭔가 썩는 듯한 냄새가 나고, 방 하나에는 못을 박아 놓아 열리지 않자 부수며 들어간다. 침대에는 돌아가신지 꽤 시간이 지나 보이는 할머니가 얌전히 누워있다. 손은 꽃을 쥐고 있고 침대 주변으로는 둘러 가며 꽃이 놓였고.....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2012년 작품 ‘아무르(Love [Amour])’는 이렇게 어리둥절하게 만들며 시작한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뇌졸중으로 아픈 몸과 마음

아무르는 프랑스어로 ‘사랑’이란 뜻이다. 80대 노부부 조르주(장 루이 트렝티냥)와 안느(엠마누엘 리바)는 둘 다 음악가이다. 은퇴하고 둘이 오붓하게 노년의 삶을 살고 있던 중, 안느는 제자의 피아노 연주회에 남편과 함께 다녀와서는 여느 때처럼 평온한 아침 식사 준비를 한다. 식탁에 앉아 얘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안느가 조용해진다. 잠시 후 정신이 돌아오지만 안느는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것은 약하게 뇌졸중이 왔다는 신호이다. 병원에서 의사는 오른쪽 목동맥이 막혔고, 뇌로 공급하는 혈류가 약해져서 생긴 뇌경색이며 그것은 수술로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뇌졸중은 흔히 두 가지 원인으로 생긴다. 뇌혈관이 터지는 뇌출혈(출혈성 뇌졸중)과 뇌혈관이 막히는 뇌경색(경색성 뇌졸중)이 있는데, 안느는 후자의 경우이다. 영화에서 말하는 수술은 막힌 혈관을 뚫는 치료를 말하며, 엄밀히는 뇌를 절개해서 하는 수술이 아니다. 하지만 이 치료는 시간이 가장 중요해서 3~6시간 안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다지 효과가 없다. 치료 방법은 혈관을 막고 있는 혈전을 녹이는 약제를 투여하는 것인데, 잘못하면 반대로 뇌출혈을 일으키게 되는 큰 단점을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는 결국 그 치료가 실패해서 마비가 더 심하게 와버린다. 상태가 더 나빠졌지만, 책도 읽고 대화도 편하게 나눌 수 있었던 안느는 교양 있는 음악가로서 부자유스러운 몸뚱아리가 버겁게 느껴지고 자존심이 상했다.

“이렇게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게 뻔하잖아.”

“우리가 같이 힘들어야 할 이유가 없잖아?”

안느는 은근히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암시를 주지만 남편 조르주는 자기가 잘 보살피겠으니 걱정 말라고 달랜다.

대화도 곧잘 나누고, 책도 읽던 안느의 얼굴은 점점 여위어가고, 말도 어눌해진다. 병세가 악화되기보다는 반복해서 뇌경색이 온 탓이다. 치매가 와서 감정도 급변하고 우울증도 왔다. 뇌손상이 오래되거나 반복될 때 뇌 위축이 오면서 생기는 혈관성 치매의 모습이다. 사랑과 헌신으로 간병하는 남편도 서서히 지쳐간다. 먹여주는 물을 뱉어버리자 홧김에 안느의 뺨을 때리고는 조르주는 애원한다. “안느, 이러지마. 나도 힘들어.” 조용히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침대 옆에 앉아있던 그는 베개로 안느의 얼굴을 덮어 누른다.

전에는 집안에 들어온 비둘기를 내쫓았는데, 두 번째 들어온 비둘기는 잡아서 쓰다듬다가 조용히 날려 보낸다. 조르주의 꿈 속에서는 건강하던 모습의 안느와 함께 외출도 하고.....

영화가 끝나면서 끝 자막(End credit)이 오르지만 음악도 없다. 음악을 넣어서 여운을 느끼려고 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사고하라고 강요하는 감독의 눈빛이 느껴진다. 영화는 이처럼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사실주의적 묘사와 조용한 철학을 담고자 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이전 작품들처럼.....

남편인 조르주 역으로 나온 장 루이 트렝티냥은 나이가 들어서 얼굴을 몰라보겠지만 1966년 첫 영화가 만들어진 후 두 차례에 걸쳐 후속편이 만들어진 ‘남과 여(A Man And A Woman [Un Homme Et Une Femme])’에서 안느(‘아무르’에서 상대역도 이름이 안느이다) 역의 아누크 에메와 함께 열연한 주인공 ‘장’이다.

뇌졸중과 가족

이와 비슷하게 뇌졸중을 앓고 있는 환자 이야기로 한국 영화 ‘욕창(A Bedsore, 2019)’을 소개한다. 퇴직 공무원으로 재산이라고는 딱 집 한 채를 가지고 다소 안정되게 사는 강창식(김종구)씨는 뇌출혈로 지체장애와 언어장애를 가지고 누워 지내는 부인 나길순(전국향)씨를 집에 데리고 있다. 불법체류자로 중국교포인 입주간병인 수옥(강애심)을 집에 두게 되는데, 어느 날 부인의 허리에 욕창이 생긴다. 걱정이 되는 창식씨는 자식들을 부르지만 하나같이 잔소리만 하지, 누구 하나 부인 곁에 있으면서 힘든 자기나 간병인 길순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다. 은근히 길순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을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 결혼하겠다고 하자 가족들은 난리를 피운다. 아직 어머니가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무슨 소리냐, 하면서 극구 반대를 하는 자식들. 실은 아버지가 새로 결혼을 해버리면 하나 있는 집이라는 재산이 넘어간다는 게 더 큰 걱정이다.

이 영화는 뇌졸중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아픈 부인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족사를 다룬다. 영화를 연출한 심혜정 감독은 켜켜이 쌓인 가족 내 갈등을 욕창이라는 소재로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욕창은 영어 제목처럼 ‘Bed sore’라고 한다. 오래 누워있으면 생기는 염증을 얘기한다. 눌려 있는 부위에 혈액 순환이 안 될 때 피부 조직이 괴사하는 질환이므로 자주 자세를 바꿔줘야 한다. 처음에는 피부가 빨갛다가 약간 짓무르는 단계까지 진행하고, 이 정도에서 잘 치료하지 않으면 점점 피부 깊숙이 진행되면서 지방층, 근육층이 궤양으로 손상되어 뼈까지도 드러날 정도로 진행할 수 있다. 그렇게 손상된 부위가 심해지고 넓어지면 세균 감염이 되기 쉽고, 영화에서 딸 지수(김도영)가 말하는 것처럼 패혈증으로 가서 생명이 위험해진다. 그래서 뇌병변 환자들이 누워 지내게 될 때, 욕창은 그 환자의 남은 삶을 평가하는 지표가 된다.

가정간호사(강말금)가 와서 욕창을 치료하며 조언하듯이 말하는 것은 사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려는 내용을 암시한다.

“욕창은 겉에서 보면 몰라요. 속이 얼마나 깊나가 문제거든요.”

그 다음의 대사는 없지만 아마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욕창도 자주 자세를 바꿔줘야 하듯이 가족도 자주 소통이 필요해요. 강창식씨가 뭘 원하는지, 자식들은 또 뭐가 고민인지 서로들 모르잖아요?”

["고병수 의사의 ‘영화 속 의학의 세계’" 연재기사]

고병수 의사

김규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