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수(아버지) : 의과대학생인 네가 앞으로 환자를 대할 때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지 도움이 될만한 몇 편의 영화들이 있는데, 오늘 이야기할 ‘패치 아담스’가 그 중 하나야.
고동우(아들) : 제가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의과대학이나 의사 이야기여서 재미있었어요.
고병수 : 오래 전에 처음 봤을 때는 좀 불편했단다. 주인공 헌터가 너무 튀는 행동들을 했기 때문이야. 아픈 이들을 위해서 관심 가져주고 흥을 북돋워주는 것은 좋지만, 꼭 그것만이 환자들을 위하는 것인가, 전체 환경을 바꿔야지 자기만 튄다고 바뀔 것인가, 하는 의문 때문이었어.
고동우 : 맞는 말씀이지만 딱딱하고 권위적인 병원 사회에서 그런 모습은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요?
고병수 : 그럴 필요가 있었고, 환자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남은 것은 이해하지만, 과연 그래서 그가 사는 곳의 고루한 의료 환경이 바뀌었을까? 아직도 내가 풀지 못한 과제야. 혼자 잘하는 게 나은가, 전체가 잘하도록 해야 하는가.....

 

자살 시도를 하고 자신을 억제하지 못해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헌터 아담스(로빈 윌리엄스). 그곳에서 정신질환으로 있게 된 어느 물리학자를 만나서 무언가 깨닫는다. 그것은 생각을 달리하면 보이는 게 달라진다는 것..... 그 물리학자는 헌터에게 패치라는 이름을 붙여주는데, ‘패치(patch)’는 ‘헝겊 조각 또는 헝겊 따위를 덧대서 수선한다’는 뜻이다. 정신병원을 나온 헌터는 의과대학에 입학하게 되고 학교가 가르치려는 권위적이고 판에 박힌 방식과 다른 공부를 하고자 한다.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호감을 사고 기분을 북돋워주는 것. 헌터, 아니 새로운 이름인 패치가 동료에게 묻는다.
“의사와 보통 과학자가 다른 점이 뭔지 알아?”
“그것은 의사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만들어진다는 거지.”
‘패치 아담스(Patch Adams, 1998)’는 이렇게 시작한다.

튀면 안 되는 의과대학과 병원

규율과 권위로 움직이는 학교는 병동에서 환자들을 위해 너무 나대는 패치를 퇴학시키려고 하는 위기까지 모면하면서 의과대학 3학년까지 진급한다. 이제는 환자들을 볼 자격이 주어진 것이다. 학교에서 활동이 제한되자 널직한 산 속 들판에 허름한 집을 구해서 환자진료소를 만들어 다른 학생들과 함께 환자들을 돌본다. 이름하여 무료진료소(Free hospital). 패치의 활동은 계속 어려운 일이 닥친다. 사실은 그가 다 자초한 일이다. 병원에서 약을 훔치는 일, 의사면허증 없이 환자를 진료하는 일 등..... 그러나 진정한 시련은 연인 사이가 될 수도 있었던 캐린(모니카 포터)이 무료진료소에서 돌보던 정신질환 환자에게 살해되면서 닥친다. 다시 벼랑에 선 패치.....

영화는 실존 인물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패치 아담스는 실제로 광대 복장을 하고 환자를 진료했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던져주면서 대화를 하는 의사였다. 이 영화는 그의 삶 일부분을 조명하면서 관람객들에게 답답함을 풀어주려고 한 작품이다. 영화를 감동적으로 본 사람들에게는 병원에서 무엇이 답답했던 걸까? 병원은 치료가 목적이지 환자들과 소통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권위를 앞세워서 환자들이 숨쉬기가 힘들다, 의사나 간호사는 웃기면 안 되나? 이런 거였다. 그래서 영화가 주는 감동이나 공감이 컸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 개봉 당시 이런 분위기를 싫어했던 의사들도 있었다고 한다. 의사가 꼭 광대처럼 해야만 소통하는 건가, 자신은 환자들과 얼마든지 진료도 하지만 많은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영화가 주는 잘못된 인식으로 수많은 의료인들을 매도할 수도 있다. 물론 이유가 되는 말이지만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이거다. ‘의사는 환자에게 필요한 모습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

팬들이 그리워하는 로빈 윌리암스

영화는 이야기의 실제 인물인 패치 아담스 본인 말대로 로빈 윌리엄스 아니면 그 배역을 소화해내지 못했을 거라고 할 정도로 영화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보여줬다. 로빈은 원래 그런 연기자였다. 우리가 그를 처음 알았던 것은 아마도 패치 아담스 영화가 만들어지기 10년전 쯤인 1989년 제작한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가 아닐까? 이 영화에서도 선생님으로 나오는 로빈 윌리엄스는 학생들에게 책을 찢어버리라고 하고, 책상 위에 올라가 마음껏 소리 지르라고 한다. 항상 권위와 싸우거나 웃음을 선사하는 역을 주로 맡았던 그는 후반에 다소 영화 제작이 뜸했다. 그러다가 관심이 시들해질 때쯤인 2014년 8월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전 세계 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의 나이 63세였다. 항상 남에게 웃음을 주고 불의라고는 모르는 그에게 의롭지 않은 문제가 있었던 걸까? 도대체 왜!

우리는 그 이유를 ‘로빈의 소원(Robin's Wish, 2020)’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서야 이해를 하게 된다. 이 다큐멘터리는 로빈 윌리엄스가 늦은 사랑을 하면서 반려자가 된 부인 수잔이 평소에 써둔 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친구들, 이웃, 동료 코미디언들, 영화 제작자들을 두루 인터뷰하면서 만들었다. 그가 자살했을 때 많은 언론들은 알코올 중독이니, 우울증이니 추측성 보도를 하게 된다. 심지어는 재정 상태가 나빠지자 파산이 두려워 목숨을 끊었다고도 했다.

로빈은 죽기 얼마 전부터 대사를 잘 까먹거나 팔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마지막 영화를 찍은 것이 ‘박물관이 살아있다: 비밀의 무덤(Night at the Museum: Secret of the Tomb), 2014’이었는데, 그때도 힘들게 영화를 찍었다. 하지만 스텝들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밖에서 활동을 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집에서는 불안증, 우울증, 실망감, 불면증에 시달렸고, 남을 의심하면서 사고가 비정상으로 되는 편집성 인격장애나 밤마다 반복되는 헛소리(망상), 환각 증세에 부인 수잔도 너무 힘들어했다. 병원에서는 이러저러한 병명을 붙여서 치료를 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그가 사후에 부검을 통해 밝혀진 것은 ‘루이 소체(Lewy body)에 의한 치매’였다.

치매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생길 수 있고, 흔히 알츠하이머 치매나 뇌졸중 등으로 인해 생기는 혈관성 치매가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앓았던 루이 소체에 의한 치매는 다소 드문데,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뇌 손상을 일으키면서 인지 기능과 그 외 여러 가지 뇌 이상 증상을 보이게 된다. 다른 경우보다 그의 루이 소체는 뇌에 너무 빨리 퍼졌고, 700억 개의 뇌 신경의 손상과 급속한 악화는 그를 그답지 않게 만들었다. 로빈은 정신이 조금 들었을 때 그런 모습의 자신이 너무 싫었고 괴로웠다. 젊어서 스텐드 코미디부터 시작해서 영화에 발을 들여놓은 후 출연한 영화 수십 편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웃음 바이러스를 전파시키는 게 사명이었던 로빈. 다큐멘터리에서 모두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아직 로빈은 떠날 준비를 하지 못했어요.”

["고병수 의사의 ‘영화 속 의학의 세계’" 연재기사]

고병수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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